삶은 만남이고 사랑이고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카운슬러협회 부설 청소년인성지도교육원에서는 서울특별시교육청 위탁으로 대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1년에 약 1000명이 넘는 중.고등학생들이 위탁되어 오는 대안교실에는 7개의 교육과정이 있다. 가출 및 무단결석, 금품갈취나 도벽 등으로 징계 받은 학생, 흡연과 약물 등에 중독 된 학생, 성 비행에 연루 된 학생, 집단따돌림 및 학교폭력가해학생과 피해학생, 학업중단 후 복교를 희망하는 학생,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로 가는 고등학생 등이 짧게는 5일, 길게는 20일간 인성교육을 받고 학교로 돌아간다. 나는 이곳 대안교실에서 풀꽃이라는 별칭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이다.

 

다음은 대안교실 학생들 이야기이다.

 

 

 

11개피어싱과 왕귓밥구멍의 팽팽한 심리전


피어싱이 유행이다. 눈썹에. 코에, 귀에, 혓바닥에 피어싱한 아이들이 심심찮게 온다. 얼굴에 11개 피어싱한 중3학년 여학생이 찢어질 듯 꽉 끼는 교복재킷과 아슬아슬하게 줄여 입은 초미니 교복스커트를 입고 풀꽃마을에 나타났다. 양쪽 귀에 3개씩 6개, 눈썹 위, 뺨, 코, 혀, 아랫입술 바로 밑에 하나씩 모두 11개, 배꼽에도 피어싱을 했단다. 그 여학생을 보고 있으려니 눈에 거슬려 피어싱 몇 개만 빼라고 했더니 교장선생님이 빼라고 해도 안 뺐는데 대안교실선생님이 무슨 권리로 빼라고 하냐며 눈을 똑바로 뜨고 째려본다. 11개 피어싱을 한 여학생 맞은쪽에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있는 중3학년 남학생은 왼쪽 귓밥구멍을 크게 뚫고 볼펜을 그 구멍에 끼고 보란 듯이 당당하게 앉아있다. 교재 「나를 찾는 즐거움」에 학교와 이름을 쓰라고 했더니 호기 있게 왼쪽 귓밥구멍에 끼워두었던 볼펜을 확 빼서 이름을 휘갈겨 쓰고는 정확하게 제 구멍에 다시 끼워 넣는다.‘아뿔사! 이번 주는 만만치 않겠구나’ 각오를 단단히 한다.

풀꽃마을의 남녀 두 짱인 11개피어싱과 왕귓밥구멍은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를 견제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게 보인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도 두 짱은 은근히 자신이 저지른 폭력사건을 드러내며 나나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때때로 두 짱은 합세하여 풀꽃에게 딴지를걸며 풀꽃의 심리를 슬슬 긁는다. 우리가 초딩이냐, 유치하다, 왜 자꾸 말을 시키느냐. 지루하다, 이런 수업을 왜하냐, 아무도움이 안 된다. 그런다고 우리가 반성할 줄 아냐는 등 풀꽃의 비위를 건들며 풀꽃의 인내심을 저울질 한다. 모른척하고 진행하는 수업에 11개피어싱과 왕귓밥구멍은 짜증을 부리다, 묻는 말에 동문서답하다, 엎드려 있다 벌떡 일어나 물먹고 오겠다며 분임실을 들락날락거린다. 풀꽃마을의 다른 학생들은 두 짱과 풀꽃의 힘겨루기를 은근히 즐기며 구경하고 있었다.


오후시간 들어서 두 짱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풀꽃과 맞짱뜨기에 흥미를 잃었는지 아니면 귀찮아서 대접해주기로 했는지 풀꽃에게 겨눴던 화살을 거둬들여 본격적으로 서로를 향해 조준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11개피어싱의 기가 왕귓밥구멍 기를 누르고 있는 게 보였다.  왕귓밥구멍이 크레파스를 엉망으로 어질러놓으면 11개피어싱이 책상 위가 그게 뭐냐고 인상을 쓴다. 그러면 왕귓밥구멍 옆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얼른 정리해놓는다. 또 왕귓밥구멍과 아이들이 떠들면 11개피어싱이 아이들보고 시끄럽다고 호통을 치면 왕귓밥구멍은 모른 척 한다. 조폭 여두목 같은 무게감 있는 거구의 11개피어싱은 할 말만 하고 수업에는 관심 없다는 듯 숫 많은 긴 머리카락을 한 가닥으로 묶었다 풀었다 가닥가닥 땋았다 빗질하다가 거울을 꺼내어 피어싱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이들은 흘끔흘끔 11개피어싱의 눈치를 본다.

중키에 단단한 몸매, 꽃미남 사촌은 될 듯한 외모의 왕귓밥구멍에게 글을 읽고 느낌을 발표하라고 하면 할 말 없다며 이런 거 왜하라고 하냐면 성질을 부리다 크레파스를 잘라 던져버린다. 그러다가도 11개피어싱과 눈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수그러든다. 주제를 주고 두 모둠으로 나누어 모둠토의를 하는 시간이다. 왕귓밥구멍 조와 11개피어싱 조가 서로의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을 조율 할 때도 왕귓밥구멍은 11개피어싱이 내놓은 의견에 맞서다가 결국 꼬리를 내린다. 동작활동을 할 때도 처음엔  뒷심 없는 왕귓밥구멍이 주도하는 듯하다가 11개피어싱이 마무리하여 끝을 낸다. 힘으로나 머리로나 왕귓밥구멍이 11개피어싱에게 밀린다. 점심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두 짱은 서로 어울리지 않고 두 마리의 사자처럼 각각 행동하며 주위를 빙빙 돈다.

학교폭력으로 2주간 대안교실에 온 두 학생 중 왕귓밥구멍은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전학 간다며 풀꽃마을을 떠났고 11개피어싱도 자퇴하겠다며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두 거물이 사라진 풀꽃마을이 힘없이 주저앉는다. 불꽃놀이 같은 찰나의 대결이 사라진 볼거리도, 팽팽한 긴장감도 없는 풀꽃마을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존재감마저 상실했는지 절인배추처럼 축 늘어져있다. 무력해진 마을분위기를 아무리 띄워보려 해도 기 빠진 풀꽃마을은 소생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교재의 글을 읽자며 풀꽃이 먼저 소리를 내어 크게 읽는다.


나를 만들자

   나는 불꽃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를 불덩이로 만들자.

   나는 물방울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를 샘으로 만들자.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를 날개로 만들자.

   나는 고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를 사슬로 만들자.

   나는 하찮은 모래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를 고급유리로 만들자.』  


아이들은 때때로 영역보존을 위해 으르렁거리는 맹수처럼 저희들끼리 힘겨루기를 한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색다른 경험이나 색다른 행위를 앞세워 우쭐대려는 심리가 있어서 나이로, 카리스마로, 힘으로, 때로는 강도 높게 저지른 비행을 은근히 내세우며 파워게임을 한다. 또한 친구들을 통해서 자기의 정체를 확인하고 자존감과 관계지향적 욕구를 성취하려하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소외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한다. 아이들은 때와 상황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 태도를 180도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의 마음에 선생님의 진심과 정성이 스며들면서 서서히 삐뚤어진 생각들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려고 나름대로 애쓴다.


11개피어싱과 왕귓밥구멍처럼  자신의 욕구를 심한 반항심으로 드러내고 빗나간 방법으로 패배의식을 보상받으려는 아이들의 거친 행동은 ‘나 여기 있소!’라고 외치는 처절한 몸짓이다. 친구가 필요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서 울부짖는 비명소리다. 아이들은 밥보다도 더 절실한 인정과 지지와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 누군가를 찾고 있다. 두 짱에게 무심한 듯 은근히 관심을 보이며 다가가던 풀꽃의 마음이 그들의 가슴에 스며들기도 전에 훌쩍 떠나버린 11개피어싱과 왕귓밥구멍의 잔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이 병들어있는 아이들은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는데....   

                                

                                             나의 손                                                               손과의 대화

 

 

1년, 2년, 그리고 5년 후 새봄에 찾아 온 아이「소나무」

          

학교폭력과 흡연 그리고 선생님에게까지 언어폭력을 휘두른 중학교 3학년 여학생10명이 남학생이 한명도 없는 풀꽃마을에 모여서 마음 놓고 수다를 떤다. 자기들이 저지른 일들을 봇물 터지듯 쏟아내면서 자신들도 잘한 건 없지만 무조건 우리들만 나쁘다는 선생님들 때문에 더 삐딱한 짓을 한다며 선생님 욕을 실컷 하고 선 후련한지  아이들이 조금 진정을 한다. 


별칭이「소나무」인 여학생이 자기소개하기에서 혈액형:B형 키:164cm, 특기: 꾸미기와 요리 만들기, 장래희망 : 인테리어디자이너 라고 했다. 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떠오르는 단어 써보는 프로그램에 슬픔, 눈물, 좌절, 갈등, 거짓, 이중인격, 억울함, 고통, 분노, 오해, 거만, 냉정, 우울, 고민, 아픔 등 부정적인 감정단어들로 꽉 찬 한쪽 귀퉁이에 행복, 희망, 기쁨, 노력이라는 단어들이 조금보인다고 썼다. 첫날 「소나무」를 따라왔던 어머니가 공부 잘하던 딸아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지 속상하다며 눈물을 쏟던 모습이 떠올랐다.


별칭이 하얀 도화지, 일출, 빛, 느티나무, 폭포, 소나무, 우주, 시냇물, 개미, 태풍인은 10명의 여학생들은 풀꽃과 특별한 인연이 닿았던지 열심히 그리고 신바람나게 프로그램을 하면서 자신들도 평범하고 좋은 학생이 되고싶다고 했다. 「소나무」는 ‘나는 할 수 있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썼다.

 

  1, 자신 없어서 혼자 중얼거렸는데 이제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2, 난 다혈질이었는데 이젠 언제나 온화한 사람이 되겠다.

  3, 담배를 끊고 맑은 공기만 마시는 사람이 되겠다.

  4, 반드시 전문직종의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인정받으며 살 것이다.

  5, 난 현모양처가 될 것이다.

  6, 언제나 밝은 사람이 될 것이다.

  7, 지조있고 아름다운사람이 될 것이다.

  8, 긍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9,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대안교실은 비행에 연루되어 오는 학생들로 북적거렸고 오후엔 지친 선생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리는 풍경이 계속되는 가을빛이 밝은 10월 어느 토요일. 고등학생이 된 「소나무」가 초췌한 모습으로 느닷없이 찾아왔다. 일년만에 보는 「소나무」를 보고 반길 틈도 없이 「소나무」는 풀꽃을 보자마자 펑펑 운다. 무슨 일일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소나무」를 감싸 안고 한참을 기다렸다. 얼마 후 눈물을 멈춘 「소나무」가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어렵게 털어놓으며 무섭고 떨린다고 했다. 앞이 캄캄하다고도 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두려워서 찾아왔다며 말을 하면서도 굳어버린 얼굴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차근차근 풀어나가자며「소나무」를 안심시키고 진정시켰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도와줄 거라는 믿음에 조금 진정한「소나무」를 데리고 대안교실을 나왔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도「소나무」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병원으로 가다가 여약사가 있는 약국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해서 들어가 얘기했더니 도와주겠다며 들어오란다. 풀꽃이 보증을 서고 「소나무」는 필요한 처치를 받고 그리고  돌아갔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9월 중순 어느 날,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고3수능 모의고사를 봤다며 「소나무」가 파운드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소나무는 그동안 키도 컸고 얼굴도 많이 밝아졌다. 어른스러워졌다고 할까? 상처의 그늘이 사라진 의젓한 모습이 보기 좋았고 자신감도 배어있었다. 미술에도 소질이 있고 음식만들기도 좋아해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와서 풀꽃마을아이들과 맛있게 같이 먹던「소나무」 밝은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에 입학하면 꼭 찾아오겠다는「소나무」의 평범한 말이 풀꽃의 가슴에 사무치게 들렸다. 그래! 네가 대학에 들어가면 풀꽃이 한턱 쏘겠다고 「소나무」의 손을 잡고 약속을 했다. 시끌벅적한 대안교실에 햇살처럼 환한 웃음을 남기고 「소나무」돌아갔다.


다시 3년이 흘렀다.

5월이다. 싱그러운 봄기운에 가로수 잎은 윤기나는 초록색으로 풍성해지고 창 너머 북한산 산자락엔 연분홍빛 벚꽃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뜻밖에 소나무가 찾아왔다. 풀꽃의 첫마디

“너 대학 들어갔니?” “네”

“어느 대학?” “Y대학요. 재수했어요.”

“그랬구나! 장하다! 몇 학년이지?”

“대학이 지방에 있어서 시간 내기가 힘들었어요. 선생님, 저 다음 주 수요일에 미국으로 공부하러가요.”

“기특해라~ 훌륭해라~ 정말 장하구나~”

나는「소나무」를 뜨겁게 끌어 앉았다.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핑 돈다.


삶은 참 경이롭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새봄에 싹 틔우는 씨앗의 강인한 생명력처럼 청소년기의 방황을 이겨내고 꽃진 자리에 열매 맺듯 희망의 빛을 찾아 떠나는 「소나무」의 생명력이 놀랍고도 자랑스럽다. 내 앞에 서 있는 화장기 없는 소나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청바지차림의 소나무 모습이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듯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래. 우리 모두는 원석이다. 스스로 장인이 되어 깎고 또 깎으면 언젠가는 빛나는 보석이 될 우리들이 아닌가. 자신이 원석임을 “선생님 편지 할게요.” 소나무가 밝은 웃음을 남기고 돌아간 뒤에도 풀꽃은 오래도록 상기되어 있었다. 야생마 같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원석임을 열심히 일깨워주자. 각자 스스로 장인이 되도록 정성껏 동기부여를 해주자. 내일은 더 열심히 아이들과 씨름해야지. 진심이 통할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지. 늘어졌던 몸에서 기운이 솟는다. 세상이 환히 밝아 보인다. 

        
소나무의 취미는 컴퓨터하기였는데 그 취미가 화근이 되어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강인함이 되어 소나무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풀꽃마을에서「소나무」는 유혹을 뿌리치는 뚜렷한 주관과 인내심과 끈기가 부족하다고 말했었다. 소나무는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아픈 상처가 다 나아 아물었을 때, 그때에 비로소 상처는 추억이 된다. 추억을 곱씹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소나무를 풀꽃은 멀리서 따뜻한 시선으로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있다.

                                 

                       소나무의 20년 후의 꿈                                        소나무의 내면

 

 

선생님~ 우리 마을도 인사동 가요


대안교실이 위치한 안국동은 서울의 올드타운 중심지여서 주변에 경복궁, 창덕궁, 운현궁, 청와대, 삼청동, 인사동, 북촌한옥마을, 서울광장, 청계천 등 걸어서 갈만한 곳이 많다. 특히 인사동은 우리의 전통공예품과 다양한 미술전시회뿐만 아니라 3.1운동과 관련된 유적지가 여러 곳 있어서 아이들에게 우리 근대사를 알릴기회가 되기도 한다.


풀꽃마을 아이들이 오후에 인사동 거리로 나왔다. 인사동 탐방코스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 재판소뒤뜰에 있는 600년 된 천연기념물 「재동백송」을 보고 운현궁에서 대원군과 고종 그리고 한일합방에 대한 우리 근대사를 간단히 설명하고 공립 정신지체특수학교 경운학교와 100년 역사의 교동초등학교를 둘러본다. 그리고 길 건너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호 천도교 본당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헌장을 선포한곳,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배부하던 배부터를 돌아 음식점이 된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5호 민익두가를 보고 골목을 빠져나와 박영효의 집이었던 경인미술관을 거쳐 민영환 선생 자결터, 3.1운동 때 33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선포한 태화관터,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본거지였던 숭동교회 등을 둘러 풀꽃마을로 돌아오면서 가나아트센터의 미술전시회와 쌈지길을 돌아본다.


몇 년 전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인사동 거리로 나왔을 때 손버릇 나쁜 아이들이 상점들이 거리에 내놓은 작은 매듭, 부채, 반달모양의 얼개빗 등 예쁘고 재미있는 물건들을 슬쩍 뽀려 들고 있었고 엿, 강정, 약과 등도 샀다며 먹고 있었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 후론 한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동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싶어서 아이들과 단단히 약속을 하고 인사동 탐방을 다시 시작했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되는 탐방코스를 따라 한 곳 한곳 돌며 풀꽃은 열심히 설명하는데 풀어 논 망아지들 같은 아이들은 천방지축 놀기 바쁘다. 치고 박고 장난치는 중학생들이나 끼리끼리 소곤대는 고등학생들이나 풀꽃의 얘기는 관심 밖이고 수업시간에 하지 못했던 저희들 얘기하느라 풀꽃 따로, 아이들 따로의 탐방이 계속된다. 민익두가 골목을 빠져나와 경인미술관으로 가는 길의 갤러리쇼윈도 앞에서 갑자기 아이들이 순간강력접착제에 쫘악~ 붙은 듯 꼼짝하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쇼윈도에는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대형나체그림이 걸려있었고 그 앞에서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나체의 실루엣을 따라 손가락과 눈길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럴 땐 모른척할 수밖에... 낄낄거리는 그림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아이들을 저만치서 한참 기다렸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 민영환선생 자곁터까지 가는 동안 아이들은 힘들다고 투덜댄다. 뭐볼게 있냐? 이것 보러왔냐?  아이들을 데리고 숭동교회까지 갖다가 풀꽃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가나아트센터로 들어갔다. 6층  에서 1층까지 그림이나 사진 또는 조각전을 감상하면서 내려온다. 작품에  손대지 말고 조용히 감상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그림에 손대지 못하게 아이들 뒤를 따라다니는 동안 몇 놈이 어느새 방명록에 장난질을 했나보다. ‘얼짱 OO 다녀가시다’ ‘좆나 뽀대 난다’ ‘별로다’ ‘이 정도는 나도 그린다. 내가 더 잘 그린다.’

작가의 소중한 방명록에 아이들이 쓰는 비속어에 그림까지 그리며 장난질을 쳐놨으니 이를 어쩐담.... 이미 아래층으로 도망쳐버린 망나니들을 향해 작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진심어린 사과로도 만회할 수 없는 실례에 민망해서 쩔쩔매는 풀꽃이다.


다음날. 다른 마을 아이들이 우리도 인사동에 가자고 담임선생님들을 조른다. 풀꽃마을아이들이 자기들이 한 짓은 뚝 잘라먹고 어제 본 갤러리쇼윈도의 나체그림에 살을 붙여 신나게 떠들었나보다. 옛말에 제사에는 맘 없고 잿밥에만 눈이 어둡다는 말처럼... 선생님마음 따로, 아이들마음 따로의 대안교실은 매일매일 아이들과 선생님의 살얼음판 같은 기 싸움이 계속된다.      

            

대안교실에 오는 학생들은 몸은 학교에, 마음은 학교 밖 자기들만의 은밀한 세계에 가있어서 중. 고등학생 가릴 것 없이 일반적인 상식은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기초적인 지식도 모를 때가 허다하다. 그러니 학교에서 보내는 그 많은 시간들이 얼마나 지루할까 싶다. 한 학생은 자기보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전학을 가서 자기가 반에서 꼴찌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고등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동을 돌며 우리나라 근대사를 설명하는 풀꽃도 아이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아이들 마음속에 한 줄기 새바람이 일기를 기대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인사동엘 나가 우리근대사를 말해주고 미술전시회를 보면서 아이들 마음의 정화를 꿈꾼다.


☞어느 날 가나아트센터에서 수녀님이 그린 크레파스 수채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환성을 질렀다. 너무나 아름다워 아이들이 정말 크레파스로 그리셨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시던 수녀님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대안교실을 마치는 소감문에서 수녀님이 그린 수채화를 본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썼다.

한눈에 봐도 흐트러진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팸플릿과 엽서를 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해주던 화가가 있었다. 풀꽃마을로 돌아와 팸플릿의 작가소개를 보니 깊고 그윽한 인상의 그 화가는 「소년의 집」 출신이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투덜대며 따라다녀도 인사동 다녀온 소감문을 쓰면서 진짜 우리나라를 체험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전시회를 봤는데 우리인간들의 찌든 삶을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2년간 그렸다는 화가가 존경스럽다 그리고 부럽다 등 수업시간에 보이지 않은 또 다른 면을 드러내 보인다. 애들아~ 너희들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희망의 선물들이란다.       

 

                                

                                     연상 그림 그리기                                               장점 30가지


 

 

민호(가명)의 4주간 일기   


민호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으로 폭력과 금품갈취로 친구 준규와 같이 4주간 풀꽃마을에서 인성교육을 받았다. 민호가 쓴 4주간의 일기이다 


10월 13일(월요일)

  오늘 처음 대안교실에 왔다. 멀어서 오는데 짜증이 났다. 여길 한 달 동안 다닌 다는게 힘들 것 같다. 수업도 재미없다. 그리구 아이들도 모두 낯선데 자꾸 말을 시킨다. 할말도 없는데. 별칭을 지으라고 해서 태양이라고 지었다. 오후에 십지수를 처음 해 봤는데 재미있었다. 여긴 밥 사먹을 데도 없다. 라면은 이제 질려서 보기도 싫다. 그래두 할 수 없어서 사 먹었다.


10월 14일(화요일)

  오늘은 같은 반 친구들과 조금씩 친해져서 말두 하고 같이 놀고 조금씩 풀꽃마을이 재미있어진다. 교재를 읽고 느낀 점도 적고 발표도 하는게 힘들고 귀찮지만 그래도 조금 재미있다. 학교서는 하기 싫으면 엎드려있는데 여기선 그렇게 못해서 할 수 없이 한다. 하루한번 자기반성이란 글을 읽었다. 나는 하루에 몇십번 잘못을 하지만 그게 내일상이니깐 나쁜짓인지 못느끼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쁜짓을 고쳐 나의 좋은점만 보여줄 것이다.  


10월 15일(수요일)

  오늘은 늦잠을 잤다. 어제 일찍 잤는데 나는 아침잠이 많은가 보다. 이제부터 늦잠 안 자도록 노력해야겠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목소리 좋고 발음이 똑똑하다고 칭찬을 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써봤는데 해야 될 일은 하지 않고 안 되는 일만 많이 했다. 써보니깐 이래선 안 되겠다. 공부 못해도 노력해야겠다. 내일은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


10월 16일(목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두 늦으면 안되니깐 일찍 일어났다. 자신감이란 글을 읽고 발표를 했다. 자신감은 운명을 변경시키는 힘이라는 말과 자신감은 목표수립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참 좋았다. 나는 자심감은 없지만 목표는 있다. 지금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요리사가 되려고 노력해야 겠다.학교 가면 공부 열심히 할거다.


10월 17일(금요일)

  오늘은 금요일이어서 3교시만 하고 학교로 갔다. CA를 할 줄 알았는데 하지도 않고 고등학교 어디 갈껀지 하는 설명만 해서 실망했다. 별로 재미없었다. 그래두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보니 좋았다. 빨리 학교 갔으면 좋겠다.


10월 20일 (월요일)

   오늘은 일주일 지나고 휴일도 있었고 해서 일찍 일어나려고 했는데 일요일날 늦게까지 컴퓨터를 해서 그런지 늦잠을 잤다. 그래두 늦지 않게 8시 50분에 도착했다. 그래서 안 혼났다. 그런데 하루종일 피곤했다. 오늘 너무 산만하다고 선생님께 혼났다. 이제부터는 조용해야겠다. 오늘 공부는 ?알찬 삶?이 재미있었다. 얌채같은 과수원주인이 놀고먹으면서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그러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10월 21일 (화요일)

  아직도 갈 날이 많이 남아 막막하지만 끝까지 잘 다녀야겠다. 오늘은 ?악어가 살고있는 강?을 했다. 우리 조와 준규네 조는 선녀가 제일 좋다고 해서 서로 비슷했는데 다른 조에서는 선녀가 나쁘다고 했다. 깝죽되고 설치서 나쁘다는 얘기를 들으니깐 그런 것도 같다. 잘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 그리고 준이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10월 22일 (수요일)

  오늘은 사복을 입고 ?소년의 집?에 갔었다. 가보니 불쌍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날 잘 따르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커서 좋은 사람이 되었음 좋겠다. 이쁜 아이들을 버린 부모들이 나쁘다. 나는 부모님이 있어서 좋다. 나는 아이를 버리는 나쁜 부모가 돼지 말아야겠다.


10월 23일 (목요일)

  요즘 게임을 맨날하고 늦게자니깐 늦잠자는 일이 많아졌다. 이제는 게임을 하더라도 일찍 자야겠다. ?사슬플기?를 했는데 안풀어져서 짜증나고 하기도 싫었다. 그런데 ?석호?가 종이를 갖다 그림을 그리고 어떻게 풀면 되나 연구를 하자고 했다. 땅바닥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연구를 해서 다시 했다. 그랬더니 풀렸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10월 24일 (금요일)

  오늘은 3교시만 하고 끝났다. 이걸로 2주 수업이 끝난 것이다. 지금까지 같이 하던 친구들과 동생들이랑 수업을 못하니 아쉬웠다. 걔네들은 이제 끝났다. 학교가면 착한 학생이 됐음 좋겠다. 걔네들도 속마음은 착하다. 그런데 공부하기 싫고 화가 나서 자꾸 나쁜 짓을 한다. 앞으론 안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2주가 남았으니 더 잘해야겠다.


10월 27일 (월요일)

  오늘 늦잠도 자고 버스도 막혀 지각했다. 누가 오나 기대도 하고 설레는 마음에 갔다. 그런데 여자들만 있어서 너무 쪽팔렸다. 그래도 같은 반이 되었으니 2주 동안 잘 지내야겠다. 별칭을 나는 다시 지었다. 이번에는 하늘이라 지었다. 저번하고 생각이 다르다. 이름표에 파란색을 칠했다. 하늘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크게 보고 싶어서 지었다. 기분도 좋고 꼭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   


10월 28일 (화요일)

   오늘은 아침부터 떠들어서 선생님에게 혼났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다. 「나를 소개합니다」를 했는데 나는 다른 얘들보다 너무 간단하게 쓴 것 같다. 나는 요리사가 꿈인데 「준범 」이도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모든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쑥스럽지만 해보니깐 괜찮다. 


10월 29일 (수요일)

  오늘은 경북궁에 갔다. 나는 솔직히 일본을 싫어하긴 했지만 명성황후를 그렇게 죽인 것을 보고 화가 났다. 불태우고 너무 싫었다. 거기 도우미아저씨가 일본관광객이 많이 있으니 자존심세우라고 했다. 나는 여태까지 나만 생각했지 나라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경복궁에 와 설명을 들으니 나라를 생각하게 된다. 나도 노력해서 우리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10월 30일(목요일)

  오늘은 ?젊은 여인과 선원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여자가 잘못한 것 같다. 약혼자를 기다리면 알아서 잘 찾아올 텐데 그것을 못 기다리고 선원과 하룻밤을 잔거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여자와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다. 그리구 여자를 꼬신 선원은 나쁜 놈이다. 나는 이 글은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기다릴 줄 아는 것과 인내심을 길러야겠다.


10월 31일(금요일)

  오늘은 담배가 우리 몸에 안 좋은 것에 대하여 배웠다. 나는 담배가 안좋은 것은 알았지만 정말 안 좋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지금도 담배는 안피니 앞으로도 안 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온 아이들도 다 담배를 안피웠으면 좋겠다. 간접흡연도 나쁜데 매일 같이 다니는 ?준규?도 안펴서 좋다. 세상에서 담배란 것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11월 3일(월요일)

  오늘은 ?자기성격검사?를 했다. 나는 오늘한 것과 지난번에 한 것과 다르게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 한 것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선생님 설명을 잘 듣고 했다. 나는 산만하고 싫증은 잘내는 성격이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상상력이 좋다고 나왔다. 너무 맞다. 똑같다. 끝까지 못하고 포기하는데 요리사기 되려면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서 내 성격을 좋은 쪽으로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1월 4일(화요일)

  오늘 ?소년의 집? 봉사를 갔다. 나는 태어나서 이런 곳은 두 번째 갔다. 지난번에 갔을 때 놀아주었던 아이도 나를 아는 척해서 반가웠다. 오늘은 장애아이들이 있는 반에 들어갔는데 장애인 아이들 부모가 정말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정상적인 아이로 낳아주시고 지금도 잘 키워주니깐 지금부터라도 말 잘 듣고 커서는 꼭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1월 5일(목요일)

  오늘은 말없이 다 같이 그림그리기를 했다. 처음에는 커다란 전지에 내가 동그라미하나 그려 놓았을 때는 뭐가 나올까 했지만 다 만들고 나니 우리 조가 제일 이뻤다. 다 같이 하니 재미있고 잘 됐다. 이제 곧 대안교실 공부가 끝나니 학교에 가서도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1월 6일 (금요일)  

   4주 풀꽃마을 공부가 끝났다. 생각보다 빨리지나갔다. 마음이 이상하다. 선생님께 야단도 많이 맞고 칭찬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에 가서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다니면서 많은 것은 배우고 느꼈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나로 바껴서 친구들과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변한 나를 보여줘야겠다. 나도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성공해서 꼭 다시 찾아오고 싶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대안교실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한다. 학교와는 달리 10명 내외의 소그룹 수업이어서 9시까지 꼭 입실을 해야 하고 교재 ‘나를 찾는 즐거움’ 이나 ‘함께하는 즐거움’을 하면서 생각하고, 느낌 쓰고, 발표하고, 색칠하고, 외우고, 토론하는 과정을 다해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엉망인 아이들이 9시까지 와야 하는 일은 아이들 말대로 죽을 지경이란다. 더욱이 결손가정의 아이들 중에는 깨워줄 사람이 없어서 선생님이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서 깨우는 경우도 있다.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도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학교는 다녀야 한다는 것을, 전학은 죽어도 가기 싫다는 사실을. 그래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힘들어도 빠지지 않고 대안교실에 오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마음을 아는 선생님들도 자신의 생활을 관리할 의지를 갖도록 세심한 배려와 용기를 주면서 정성을 다한다.

   

                                                 


                                  성공한 미래를 그리며                                                      나에게 쓴 편지


 

 

♥  할머니와 손주녀석 그리고 커피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초등학생 같은 중학교 1학년 손주녀석이 무단결석과 근태불량으로 처벌을 받고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대안교실에 왔다. 월요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온 학부모들이 부모교육이 끝나고 모두 돌아간 시간, 혼자 남은 할머니는 손주녀석의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 30분까지 기다리겠다며 덩그러니 빈 Hall에 혼자 앉아계신다. 손주녀석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에 풀꽃마을이 한가닥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할머니의 손주녀석은 다음날 10시가 넘어서 대안교실에 왔다. 어디서 놀다왔는지 새벽에 들어온 손주녀석을 데리고 왔다며 할머니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신다. 할머니의 손주녀석은 철들려면 아직도 먼 나이어서 할머니의 마음만 지옥이지 손주녀석은 노는데만 정신이 팔려 천방지축 대책이 없다. 수업이 한창인데 풀꽃마을 문이 빼꼼히 열리며 할머니의 축 처진 세모꼴 눈이 마을 안을 조용히 살핀다. 손주녀석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걸 본 할머니가 살그머니 문을 닫는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살며시 열리며 자판기에서 뺀 커피가 든 종이컵이 쭈글쭈글한 할머니 손에 들려 쑤욱~ 들어온다. 종이컵을 책상위에 놓고는 오른손 검지로 자고 있는 손주녀석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풀꽃을 보면서 커피마시는 시늉을 하신다. 그리고 다시 살그머니 문이 닫힌다. 할머니의 손주녀석을 흔들어 깨워 커피를 마시라고 했더니 잠에 취한 녀석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가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곯아떨어진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할머니의 손주녀석은 할머니의 손에 끌려왔고 할머니의 애타는 심정은 안중에도 없는 손주녀석은 어제도 PC 방에서 밤새 놀다왔는지 엎드려 잠만 잔다. 오늘도 할머니는 풀꽃마을 문을 살며시 열고 손주녀석을 살피고 할머니의 철없는 손주녀석은 아이들이 소리내어 책을 읽어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쓰고 발표를 해도 여전히 엎드려 자거나 깨면 장난치며 청개구리 짓만 한다. 오후시간은 뇌호흡교육 전문강사가 와서 아이들에게 특강을 하는 시간이다. 집중력과 자신감을 길러주고 기억력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뇌호흡교육이다. 아이들이 Hall에서 강의를 듣고 선생님을 따라 실습을 하면서 열심히 따라하고 있고 할머니와 풀꽃은 사무실에 마주앉아 이러 저런 얘기를 한다.

“저 녀석을 두고 지 에미가 집을 나간 것이 7년전이야. 지 에비는 그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어떻게든 잘 키워보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숨을 내쉰다.

“둘이 살지만 기 안 죽게 용돈도 주고 옷도 사주고 하는데 저 녀석이 왜 저러는지 몰라. 내속 터지는 거 누가 알까?”

할머니는 속내를 터놓으며 시원하신지 차를 한 모금을 들이키신다.

“내 나이가 일흔둘 인데 나 죽으면 저놈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야. 제 에미가 죽일년이지. 내가 어떡하든 오래 살아야해. 사람되는 꼴 봐야지….”    

수업이 끝나고 할머니의 손주녀석은 다시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간다.


5일간의 수업이 끝나는 날,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 외에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다. 망나니 손주녀석이 엉망진창인 글씨로 삐뚤빼뚤 듬성듬성 띄엄띄엄 할머니께 편지를 쓴다.

“할머니~ 공부는 하기 싫지만 앞으로 할머니께 잘하고 속 안 썩혀드릴게요. 그리구 학교도 잘 다닐게요.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편지를 다 쓴 손주녀석은 쑥스러운지 얼른 봉투에 넣고 풀을 붙인다. 주소를 몰라서 그냥 할머니께 드리겠다며 가방 속에 꾸겨 넣는다.

할머니와 손주녀석의 단칸살림에 언제나 햇볕이 들까? 가슴이 아려온다.


대안교실에는 우리의 고단한 삶의 얘기들이 흥건히 고여 있다. 학생의 가정환경을 보면 양부모가 계신 경우가 60%정도 되지만 부모가 이혼했거나 별거중인 편부나 편모가정의 아이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양부모가정이라도 가족관계가 화목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경제사정이 여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많지 않다. 또한 가족간에 대화나 의사소통이 단절되어있는 경우(특히 아버지와의 대화단절)가 많아서 가족의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청소년기의 가정불화나 부모의 이혼과 별거 등 가정적 요인은 아이들을 밖으로 내모는 원인이 되어 친구들과 어울려 긴 방황의 늪에 빠지게 된다. 청소년기는 어머니라는 버팀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를 찾아서                                             잃은 것과 얻은 것

   


 

국립중앙박물관 답사 가는 날


43명의 아이들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현장학습을 간다. 단체할인요금 500원 준비와 박물관 답사시의 주의할 점과 대표적인 소장품에 대한 안내와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이촌역에서 내린다는 것을 설명하고 출발했다. 대안교실에 오는 학생들은 중학생이 70% 고등학생이 30% 정도이고 남학생과 여학생의 비율도 3:1 정도이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갈 때는 특별히 신경을 쓰는데 오늘은 중학생들이 많아서 더욱 그렇다.


전철을 타려는데 앞서간 몇 명의 아이들이 무임승차를 하려다 걸려 30배의 요금을 내라는 역무원과 봐달라는 학생들이 실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개입하여 겨우 합의를 보고 지하철을 탔다. 승객들은 교복은 입었는데 불량해 보이는 학생들의 엉망진창인 행동을 보면서 못마땅해 하는 눈치다. 충무로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야하는데 아이들의 머릿수가 맞질 않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다음전동차를 기다린다. 이래저래 이촌역까지 가는데 만만찮게 시간을 허비했다. 박물관에 도착해서 마을별로 입장료를 모으는데 남학생 대여섯명이 입장료가 없다며 버틴다. 약속을 안 지키면 다시 대안교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풀꽃도 물러서지 않는다. 저만치서 또 다른 몇 명의 남학생들이 젊은 엄마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다. 낌새가 이상해서 그쪽으로 가는데 젊은 엄마가 핸드백에서 5천원을 꺼내 아이들에게 주려고 한다. 후다닥 뛰어가 호통을 쳤다. 놀란 젊은 엄마는 아들 같은 학생들이 돈을 잃어버려 입장료 500원이 없다고 해서 오천원을 주려고 했다며 당황한다. 못된 녀석들은 다 된 일을 선생님이 망쳐놨으니 자신들의 입장료를 대신 내라고 느물거린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협을 주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막혀하는데 녀석들은 태연하다. 서둘러 아이들을 입장시키며 박물관을 둘러보고 1시간 30분 후에 모여서 박물관답사기를 쓰고 해산한다고 했다. 선생님을 따라 아이들이 마을별로 박물관관람을 시작한다. 


풀꽃은 배회하는 아이들이 있나 없나를 살피러 박물관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편의시설이 있는 곳까지 왔다. 입장료가 없다고 젊은 엄마에게 돈을 구걸하던 녀석들이 언제 나왔는지 비취파라솔 의자에 앉아서 과자와 마실 것들을 잔뜩 사놓고 먹고 있었다. 


대안교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탈하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설마? 할 때가 많다. 대안교실 주변의 편의점주인들이, 근처 미술관사람들이, 주민들이 대안교실에 와서 항의를 겸한 불편한 심사를 말할 때도 설마? 할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결석이나 지각을 하면서 그럴듯하게 둘러대면 가정형편을 아는 선생님들은 속아 넘어가 주고 싶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밥을 먹지 못하고 다닌다는 말에 선생님들이 적은 액수의 돈이지만 용돈을 모아준적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증받은 티셔츠를 아이들 앞에 내놓으며 각자 입고 싶은 것을 골라가지라고 했더니 메이커가 아니라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아름다운가게에 보낸 적도 있다. 삐딱한 아이들을 이해해야하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갈수록 선생님들도 힘들고 헷갈린다. 


                                        

                                     나의 위치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될 일

 


 

보고 싶은 나무 ? 안개꽃 ? 별 ? 새싹


2004년 6월초, 4주간 일정으로 중학교 3학년 여학생 4명이 풀꽃마을에 왔다. 생활지도부장은 징계사유를 꼼꼼히 적은 신청서를 보내면서 4주간의 인성교육을 통해 이들이 달라지길 기대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학생들은 학교 담에 스프레이로 선생님 욕을 썼고 태도불손, 복장불량 및 화장하기, 흡연, 지각과 무단결석 등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학생들이라고 했다.    

 

나무, 안개꽃, 별, 새싹 이라고 별칭을 지은 4명의 여학생들은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이해주는 풀꽃마을 분위기에 조금씩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별력과 열정이 있는 나무, 글잘 쓰고 발표 잘하는 안개꽃, 꾸미기를 잘하고 손재주 있는 별, 상상력이 풍부하고 머리가 좋은 새싹. 4명의 아이들은 풀꽃과 함께 자신을 찾아 떠나는 4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몇 차례 힘든 고비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해갔고 교육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쑤욱  자란 모습이 대견했다. 6월 말의 햇살이 아이들 마음처럼 뜨거웠다.  

6개월이 지난 12월 중순, 4명의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궁금해서 진로상담부장에게 전화를 했고 아이들에게도 편지를 띄웠다. 아이들에게서 답장이 왔고 담임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다음은 그 편지모음이다.


아이들의 편지


달라진 모습 보여 드릴게요

                                               나무 :  정 o ㅇ 

대안교실에 처음 갔을 때 그냥 학교규칙에 비해 심하지 않아서 좋고 장난으로 다니고 선생님말두 제대로 새겨듣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이랑 친해지면서 선생님말씀이 하나같이 맞는다는 맘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은 고치고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들의 시선이 나를 지켜보니깐 정말 부담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1학기 중간고사를 봤는데 별루 배운 게 없어서 성적이 바닥이었다. 이렇게 하면 고등학교도 가지 못하고 풀꽃 선생님이랑 약속한 것도 못 지킬까봐 …. 수업시간에 공부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칭찬해주셨다. 하지만 성적은 평균 5점을 올렸는데 평균성적보다도 못했다. 속상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내가 변해가는 것을 내 자신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위해서 나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교무실에 가면 담당 선생님이 담임선생님한테 0난이가 잘한다고 칭찬하신다. 아직 덜 완성된 내 자신이지만 …. 그래도 고쳐나가니깐 좋다. 나는 서서울고등학교에 갈 것이다. 미용과가 있는데 65% 높아서 지금은 안 돼지만 미용학원 다니면서 자격증을 따서 2학년 때 전과를 할 것이다. 크게 성공해서 제가 커서 뭐가 될까?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꼭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고은미 선생님과의 약속도 지킬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잠시 방황했던 나

                                              안개꽃 : 류 ㅇ ㅇ

벌써 중학교 3년을 거의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전 아주 평범한 학생입니다. 하지만 대안교실을 갔다 오지 않았고, 제가 바뀌려는 마음 그리고 저의 행동과 모습을 되돌아보고 후회하지 않았더라면 전 대안교실을 갔다 오기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4주 동안 대안교실에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자신감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저는 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 아직까지 제가 잠시 방황했을 때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당당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가 당당할 수 있고 남들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제가 그때 부끄러워했던 만큼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야 제가 만족하는 삶이 될 수 있겠죠^^?   

저는 행운아예요

                                               별 : 오 ㅇ ㅇ 

2004년 6월 대안교실을 처음 갔다. 그동안 나는 학교에 적응도 못했고 사고만치는 예의 없는 학생으로만 살았다. 대안교실에 와서 풀꽃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잘못을 해서 온 아이들에게 칭찬과 자신감을 주는 모습에 너무나 놀라웠고 너무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한 달 동안의 심성수련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할 때 선생님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이 방황했던 우리들을 이해해주시고 칭찬을 많이 해주신 풀꽃님을 우리들은 존경한다. 대안교실을 다닌 후의 모습은 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생활로 바뀌게 되었다. 시험성적에 관심도 없었던 내가 다른 애들처럼 똑같이 수업 듣고 공부하니 선생님들께 칭찬도 받아 자신감도 생기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부모님과의 대화도 많아졌다. 고등학교도 정해야 하는 2학기가 되었다. 디자인과, 유아교육과, 미용과 등 내가 가고 싶은 과가 많았지만 학교는 정하기 힘들었다. 정암미용고등학교 라는 학교는 소문은 안 좋았지만 중학교 때처럼 휩쓸리지 않고 잘 생활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을 했는데 다행이도 합격이 되었다.

대안교실에 가서 풀꽃님을 만난 건 내 생애 최고 행운이었다.

                                     

                                  나의 홈페이지                                                                사랑하며 사는 삶

  

 

 

부모님의 편지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안개꽃 아버지

저희 딸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자꾸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났는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안교실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전보다는 부모님 말을 잘 듣고 자기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고등학교에 가서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남도 배려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또 사랑 받는 착한 우리 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선생님께 항상 감사하며 많은 지도 바랍니다.


자식 잘 키워보려 했는데

                                       나무 아버지

대안학교를 갔다 와서 딸아이가 처음엔 학교에 잘 다니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적응이 잘 안 되서 조금씩 또 사고를 치긴 했지만 그래도 담임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깐 공부시간에는 집중도 하고 참여를 해서 크게 달라졌고, 잘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도 저한테 피해 안 가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처음에 서서울상고를 가려고 정했는데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깐 성적이 안 되어서 상고나 공고를 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말 들었을 때, 정말 내 자식이 한심하고 혼을 내고 싶었지만 0난이가 상고나 공고 안가고 차라리 인문계학교에 가서 진심으로 사고도 안치고, 마음먹고 공부하며 정신 차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아이 말을 한번 믿어 보려고 합니다. 저의 친척에 자식 딸들은 고졸도 못해서 …. 제 자식은 정말 잘 키워보려고 저도 무척 힘들지만 애쓰고 있습니다. 끝까지 제가 죽는 날까지 ….

0난이가 하고 싶은 거 다해주고 믿어 보려고 합니다. 점점 변해가는 딸을 보고 훌륭하고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안교실에 가서 선생님을 본받고 싶고, 자랑스럽다고 하고, 마음이 통한다고 해서 ….

  이렇게 고쳐주신 점 선생님 덕분이라서 너무 감사합니다.



생활지도부장의 편지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생활지도부장 : 고 0 0

  저는 2학년 수업인 관계로 그 아이들을 가까이서는 자주 볼 수 없습니다. 제일 좋아진 아이는 0 란이입니다. 여전히 늦게 오는데 그래도 용의나 화장문제는 많이 좋아지고 얼굴표정도 좋아져서 다행스럽습니다. 2학년 때 제가 가르쳤는데 마음먹고 공부하면 잘 하는 아이입니다. 또 좋아진 이유 중 하나는  담임선생님께서 여간 챙기시는 분이 아니시고 자상하셔서 늘 대화로 풀어나가고 사랑을 주시기에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0복이는 지금 아버지의 부도로 엄마와 아버지가 따로 살고 있고 있어서 무방비 상태입니다. 요즘은 화장도 여전히 하고 또 얼마 전에는 월담을 하다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마음이 따뜻하고 자기 마음에만 맞으면 무엇이든 다 내놓는 아이입니다 엄한 아버지와 바쁜 엄마 밑에서 애정결핍인 아이입니다.

0희도 천방지축 하니 같은 아이였는데 요즘은 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각과 멋부리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그래도 선생님들께 대드는 문제가 많이 개선되고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그 역시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보듬어 안는 훌륭한 선생님으로 전교에서 제일 안정된 반입니다.   

0비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머리는 노랗게 하고 화장을 하고, 교복도 입지 않고 다닙니다. 이 아이도 부모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도 안 되어있어서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여러 가지로 저희 아이들을 맡아서 애를 쓰셨습니다. 참으로 교육이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도 24년째 교직에 있지만 어느 학교보다도 열악한 가정환경과 교육여건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 안 됐다는 생각만 듭니다. 졸업할 때까지 잘 있어주기를 바라며 그래도 이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바쁜 관계로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담임선생님의 편지


        3-1 정 ㅇ ㅇ

  위의 학생은 4주간 특별교육을 받은 후 몇 가지 좋은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첫째. 가출과 무단결석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둘째. 정서적 안정감을 찾고 급우들과 잘 지냅니다. 하지만 4주간 학습결손으로 인한 성적이 크게 저하 된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화장을 한다던지 복장에 대한 세세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총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 준 셈입니다.

                                                       담임 : 김 0 0


       3-5 오 ㅇ ㅇ

  위의 학생은 4주간의 특별교육을 받고 나서 그 이전과 별로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여전히 짙은 화장을 하고 두발과 복장이 불량합니다. 여러 차례의 지도와 조언을 했음에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화장과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여 부모님과도 면담을 하였지만 부모님도 별다른 지도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장기간의 특별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담임 : 변 0 0    


     3-8 류 ㅇ ㅇ

  0희는 4주간의 특별교육을 마친 후 달라진 점은 우선 첫째 교사에게 공손해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대들고 말대답하던 행동들이 많이 개선되어 웃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공손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욕구대로 되지 않을 때 나쁜 행동이 나오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개선된 행동변화는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있지만 많이 늦지도 않고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습니다. 세 번째는 멋부리는 문제인데요,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하고 다니는 것이 크게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이도 또한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보여 집니다. 아쉬운 점은 수업결손으로 공부를 잘 해보려는 맘을 먹었어도 학습결손이 심하여 학업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적이 아주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사항입니다.  

    

                                         담임 : 이 0 0

 

                                        

   

                           4주간의 적응교육을 마무리하며                                미래를 설계하면서


 

 

그 후 5년이 흘렀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7월이다. 미소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는 두 달이 넘게 계속되고, 기름값은 치솟고, 물가는 오르고, 17대 국회는 개원도 않고... 세상이 어지럽다. 새 대통령도 뽑고, 경제도 살아나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거라고 기대했던 국민의 희망이 무참해진다. 읽다 만 신문을 다시 펼친다. 고향에 금의환향한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청소년들에게 꿈은 크게 갖되 현실을 지시하라고 당부하는 기사를 보면서 5년전 풀꽃마을에 왔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한동안 아이들과 소식이 틈 했었다.


아이들 핸드폰번호가 모두 바뀌어 연락이 안 된다. 집으로 전화를 해도 받는 이가 없다. 마지막으로 새싹의 집 전화번호를 돌렸다 신호음이 한참 가더니 남자목소리가 ‘00소입니다’한다. 아! 틀렸구나~ 전화를 끊을까 하다 혹시나 해서 전호번호를 확인하니 맞다고 한다. 새싹네 집이었다. 흥분한 내목소리가 순식간에 한 옥타브 올라갔다. 새싹 아버지도 풀꽃을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 새싹이 대학 유아교육과 입학했고 안개꽃도 지방에 있는 스튜어디스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손재능이 좋던 별은 미용고를 졸업하고 일산에서 피부관리사로 일하고 제일 적극적이던 나무는 지금 고등하교 3학년에 편입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 밤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별이 쉬는 날 4명이 모여 찾아오겠다고 했다. 선생님 건강하시죠? 정말 뵙고 싶어요. 애들아~ 나도 너희들이 보고 싶단다. 밤새 장맛비는 내리는데 나는 아이들과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며 기분좋게 잠에 빠졌다.


4명의 여학생들은 풀꽃마을에 온 4주과정의 첫 학생들이어서 풀꽃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아이들이다. 풀꽃도 특별히 정성을 쏟았고 아이들도 4주간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특히 그림솜씨와 손재능이 특출했지만 가정형편상 미용고로 가겠다고 한 별은 풀꽃의 마음에 작은 등불처럼 남아 있는 아이다. 가장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던 나무가 아직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니 연말에 수능시험 결과가 좋다는 소식 있기를 기다려 본다.


                                  한 달 만에 학교로 돌아가는 설레고 기대되는 아이들의 마음      

                                            

                     

                                                     

                                                                 별이 쓴 20년 후의 일기




♥  한해를 마무리하며


“충성!”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힘 있고 정감 어린 목소리. 나는 대번에 우영이임을 알았다.

“휴가 나왔다 들어가요. 건강하시죠?”

“그래. 여전하지. 제대 얼마 남았니?”

“4개월 반이요. 다음 휴가 땐 시간 좀 내 볼 게요.”


  우영이 전화를 끊고 겨울햇살이 퍼진 조용한 대안교실 창 너머로 멀리 남산타워를 바라본다. 강의실은 텅 비어있는데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는 환청처럼 들리고 교복을 입은 우영이 모습과 군복을 입은 우영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어른거린다. 손가락을 꼽으며 우영이가 대안교실에 왔던 때를 헤아려본다.


  욕구불만과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서 부모님, 선생님 속을 까맣게 태우는 상처투성이의 아이들과 씨름하다보면 한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기본생활습관이 헝클어진 아이들은 함부로 침을 뱉고,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험한 말투에 거친 행동으로 대안교실은 서울의 뿌연 하늘만큼이나 답답하고 힘든 일들이 매일매일 벌어진다.


  늦게 일어나 어슬렁거리고 오는 아이들에게 지각을 하면 이수증을 줄 수 없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 애타는 어머니만 대안교실에 와서 눈물로 호소한다. 제발 사람 좀 만들어달라고 ….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부모님이 계신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더 많은 아이들이 안타깝다.


  담배에 찌든 아이들이 담배피울 궁리에 열심이고 물님 선생님은 시간마다 건물 각층을 돌며 복도와 화장실을 살피고 후미진 동네 뒷골목까지 하루 종일 고달픈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서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교실에서 솔솔 나는 담배냄새.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을 수 없어서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며 멋쩍은 고백을 하는 아이들. 생각하기 싫어하고,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 가려는 아이들. 마음은 PC방이나 교실 밖 어딘가에 가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좋은 글을 읽고, 느낌을 쓰고, 외우고, 다짐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찾아 ‘미래로 가는 기차’를 타게 할 때까지 선생님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며 보듬어 앉는다.

 

  교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는 사이사이에 십자수도 놓고, 성격검사도 하고, 영화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숲, 경복궁, 선유도공원, 청와대 주위, 청계천, 헌법재판소, 인사동 갤러리 등을 순회하면서 아이들을 밝고 건강한 세상의 활기참을 보게 한다. 웃음이 있는 따스한 세상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1주, 2주, 3주, 4주가 지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부모님을 생각한다. 후회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비행의 연결고리를 끊고 공부해야겠다고 한다. 아픔과 상처, 무모한 포기로 시간을 낭비하며 자신을 버렸던 빗나간 청소년들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그들 마음속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아름다운 자신과 비로소 만난다. 우영이도 그랬었다. 대안교실 수업을 마치고 마음에 희망의 씨앗 하나를 품고 학교로 돌아간 우영이는 흔들릴 때마다 전화를 하곤 했었다. 자기란 놈은 별 수 없다며 포기하고 싶다고 투정도 부렸었다. 그러면서 우영이는 길고 긴 청소년기의 어두운 터널 속을 빠져나왔다.


  고요가 고인 교실에서 올 한해를 되돌아본다. 한해 한해 갈수록 또 다른 우영이를 만나기 힘든 현실이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 점점 더 황폐화되어가는 아이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어둡고 그늘진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이들이 누런 떡잎으로 시들어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난다. 이미 세상의 쾌락과 유혹에 중독 된 아이들. 어찌 그들만 탓할 수 있으랴.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을. 내년에는 예전처럼 감사와 보람이 넘치는 신명나는 대안교실 풍경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감동에 겨워 또 다른 우영이를 끌어 앉고 눈시울 붉히는 뿌듯함을 맛볼 수 있을까? 한해를 마무리하며 간절히 소망해본다.

                                                200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