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아빠 재미있고 신나는 여행하세요. 부부싸움 하지 말구요

2003. 5. 4 일요일. 맑음(여행 1일째날)

서울-프랑크푸르트

 오월이다. 어린이날이 낀 3일간의 연휴로 서울이 이 텅 빈 듯한 아침,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3시간밖에 못 잔 눈이 자꾸 감긴다. 7년 전 33일간의 북유럽 렌트카 여행 이후 오랜만에 떠나는 98일간의 여행이 부담이 되어서 며칠째 잠을 설쳤다. 세상도 이라크전쟁이다, 괴질 사스다해서 어수선한 때가 아닌가.

  일찍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오후 1시 15분 출발하는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 출국수속을 마친 시간은 11시 30분. 어수선한 정세로 비행기는 텅 빌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승객은 Full이어서 맨 뒷좌석 66번 F, G를 배정 받았다. 배웅 나온 가족들과 한식당에서 냉면을 먹으며 시원한 냉면국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긴 여행에 몸조심하라는 가족들의 말에 마음이 찡해진다. 심호흡을 한다.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위하여….

  비행기는 정비관계로 한시간 연발했다. 긴 쉼표 같은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98일 예정으로 떠나는 이번 여행은 1차, 2차, 3차의 일정으로 짜여졌다. 1차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발칸유럽 36일, 2차는 동부와 중부유럽 46일 그리고 3차는 독일 16일 등 98일간의 렌트카 여행이다. 여행이 이렇게 복잡해진 것은 현재로선 서유럽에서 발칸유럽으로 렌트카 여행이 불가능하고 친지의 베를린 개인전 일정에 맞춰 독일에 도착해야한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두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방법으로 1차로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현지 차를 빌려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를 여행하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다시 차를 빌려 동부와 중부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을 택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곳이다. 안전상의 문제로 여행에 많은 걸림돌과 위험부담이 있는 나라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그들만의 보석 같은 깊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나라여서 호기심과 기대가 많은 나라였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 비행이다. 기내의 꽉 찬 승객 중 외국인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다. 물론 호흡기 질환 사스 때문이다. 우리도 10개의 마스크와 체온계를 준비했다. 그리스 에게해 크루즈 투어를 예약했는데 동양인인 우리에겐 마스크를 꼭 해야한다는 단서를 붙였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여행이 될 것 같은데 사스가 부담 하나를 더 주고 있다.

  기내의 늦은 식사를 끝내고 딸아이가 공항에서 내게 준 제법 두툼한 편지를 꺼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로 시작되는 편지는 '신나고 재미있게 다녀오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 힘들면 곧 돌아오세요. 그리고 부부싸움하지 마세요.' 웃음이 나왔다. 집에서도 옥신각신 잘하는 우리 부부에게 긴 여행에 힘 빠지게 싸우지 말라는 딸아이의 당부가 애교스럽다. 딸아이의 편지와 붉은 포도주 한잔이 필터가 되어 긴 여행의 불안과 걱정의 찌꺼기를 걸러준다. 건강한 여행의 피돌기가 시작된 듯 굳었던 몸이 풀어진다.

  현지 시간 오후 6시. 꼭 20년만에 다시 온 프랑크푸르트다. 20년 전, 첫 세계여행의 흥분으로 들떴던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의 영상이 짧게 스친다. 무서울 게 없던 그때가 어제 같다. 아∼ 세월이여. 사람 좋아 보이는 Kim 호텔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녹음이 한창인 이곳,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Kim 호텔에서 여행의 첫 밤을 맞았다. 초승달이 긴 여행을 시작하는 아슬아슬한 내 마음을 아는지 파리∼하게 밤하늘에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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