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에서 본 다양한 지구모습

2003. 5. 5 월요일. 맑음(여행 2일째날)

프랑크푸르트-소피아

  녹음 짙은 깨끗한 거리, 풋풋한 공기, 푸른 공원과 녹지, 풀빛 가득한 밀밭의 청정함, 부드러운 초록 물결이 일렁이는 프랑크푸르트 풍경이 제멋대로 치솟은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는 복잡하고 조합한 서울의 영상을 덮어버린다. 초록빛 자연만큼 부러운 게 또 있을까.

소피아까지 타고온 발칸에어 항공기

 

  아침 9시 30분, 마임공항 발칸에어에서 일찌감치 체크인하고 1층 B51 Gate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소피아로 가는 사람들의 허름하고 칙칙한 분위기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를 더 가라앉힌다. 어렵고 힘든 여행이라고 각오는 했지만 좀처럼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와 체제가 달랐던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안과 경제상황이 여의치 곳의 안전문제 때문인가 보다. 여행준비를 하면서 얻은 정보는 대체로 불가리아나 루마니아는 범죄 등 사고의 위험이 높고 안전성에 문제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 특히 차는 도난의 우려가 있으니 주차에 신경을 써라, 돈이 들더라도 꼭 경비원이

있는 곳에 주차하라. 절대로 차안에 물건을 두지 마라, 루마니아는 더욱 문제가 많은 나라다. 경찰을 사칭한 사기에 주의하라, 집시들을 경계하라. 담배는 1달러의 가치가 있으니 비상용으로 준비하는 게 좋다. 주유소를 보면 기름을 채워라, 숙소문제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등 끝없는경계사항이었다. 입력된 부정적인 정보들이 머리 속에서 와글거린다. 얼른 마음으로 신경안정제를 한 움큼 삼키고 움츠려드는 마음을 단단히 잡는다. 할 수 있어. 그 동안 쌓은 여행의 노하우가 있잖아. 그러나 여의치 않으면 연의 말대로 돌아오면 되지 뭐∼. 아랫배에 힘을 준다. 공항 대합실 TV에선 이라크전쟁 소식을 전한다. 당당한 럼스펠드 국무장관의 얼굴이 비취더니 뒤이어 이라크 아이의 눈물 고인 까만 눈동자가 클로즈업된다. 천진한 어린아이의 눈물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된다. 빌어먹을 전쟁…. 우린 6.25를 겪은 세대다. 독일어발음이 아직 귀에 낯설지만 곧 탑승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11시 20분. 60년대 김포공항 풍경처럼 버스로 승객을 실어 나른 737 발칸에어 비행기는 이륙했고 승객은 많지 않았다. 기내는 깔끔했고 점심식사로 나온 치즈와 햄도 맛이 좋았다. 유명한 불가리아산 포도주도 잔이 넘치게 따라준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하늘이 동그란 창 밖으로 무한하다. 이제 2시간 30분 후면 우린 소피아에 도착하고 제1차 발칸유럽 여행이 시작된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체험이 여행의 매력 아닌가? 걱정했던 것 보다 훨씬 수월한 여행이 될 수도 있지. 불가리아의 예스럽고 소박한 농촌풍경에 푹 빠질 수도 있고∼. 포도주 한잔에 마음이 이∼만큼 넓어진다.

"여보! 저길 봐"

  창가에 앉았던 남편의 탄성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창밖엔 장대한 알프스가 첩첩의 봉우리에 만년설을 이고 숨막힐 듯 솟아있다. 고도를 낮게 나르는 비행기는 알프스 산맥을 스칠 듯 아슬아슬하고 손내밀면 닿을 듯 정상의 빙하가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낸다. 초월이란 말이 떠오르는 무한함이다.

  비행기가 한참을 날랐다. 건너편 뒷좌석에서 여행자료를 보던 남편이 오라고 손짓한다. 이번엔 알프스의 위용과는 너무도 다른 평평한 헝가리 대평원이 한도없고 끝도없이 펼쳐져 있다. 바다같이 넓은 발라톤 호수도 한눈에 보인다. 다양하고 경이로운 자연이다. 누런 색과 연두색 그리고 짙은 황토색으로 반듯반듯하게 칠해놓은 것 같은 단조로운 대평원은 마치 비행기가 정지하고 있는 듯 착각하게 한다. 질리도록 인내심이 요구될 것 같은 저 끝없는 헝가리 대평원을 사십여 일 후면 우리는 일주일 이상 달려야한다. 알프스의 험준함도, 헝가리 대평원의 단조로움도 몸으로 부대끼며 그렇게 세상 속으로, 삶 속으로, 사람

 

소피아의 식품점에서 주인과 같이

속으로 가야 할 긴 여정이 아닌가. 직격탄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발칸지역 나라들에 대한 불안과 걱정의 마음이 추락하며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 선입견을 버리자.옹졸한 마음도 버리자. 그곳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아닌가.내맡기자. 흐르는 대로…. 그래도 안되면 포기할 수도 있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걸. 여행 초입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나를 자연은 의연하게 깨우쳐준다.

  오후 3시 15분. 소피아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나온 지코투어(www.jikotour.com)의 민지홍 사장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선교활동을 하면서 여행사 일도 하는 잘 생긴 젊은이가 미더워 우린 민사장을 믿고 불가리아를 발칸지역 여행의 기점으로 삼았고 그에게 렌트카까지 부탁했다. 민사장의 구형 그랜저 승용차로 호텔까지 왔다. 민사장은 연휴가 끝나는 내일 오후에 렌트카를 가져오겠다며 돌아갔고 우린 생각보다 더운 불가리아 5월의 날씨에 땀을 줄줄 흘렸다.

[목 차]  [전날 2003년 5월 4일]  [다음날 2003년 5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