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정과 항법사 손

2003. 5. 7 수요일. 맑음(여행 4일째날)

 

소피아-멜닉, 주행거리 247㎞, 주유량 19.57ℓ, 금액 LEV27-

  소피아는 서울보다 위도 상 북쪽이어 선지 아침 6시가 되어서야 훤해졌다. 나는 밤새 렌트카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떠날 채비를 했다.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하니깐. 시작이 결과를 낳는 것 아닌가. 오늘일정은 소피아→릴라수도원(Rila Monastery)→멜닉(Melnik)마을 숙박이다. 다행히 날씨는 끝내주게 좋다. 아침저녁은 시원하지만 한낮은 찐다. 그러나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선 견딜만했다.

그렇게 그리던 릴라 수도원의 정문이다.

 

  민사장이 미비했던 서류인 국경통과 허가서를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급하면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핸드폰 번호까지 적어준다. 정비소에서 먹통인 깜박이등과 브레이크등을 고치고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었다. 그리고 우린 민사장과 헤어졌다. 격전지로 향하는 병사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출근시간의 복잡한 차량물결 속에 끼어 우리는 길고 험한 발칸유럽 여행을 시작했다.

  차선도 없고 포장이 벗겨져 울퉁불퉁 엉망인 도로에서 몇 번의 갈등을 겪었으나 실수 없이 시내를 빠져 나와 E79번인 1번 국도를 탈 수 있었다. .

  스포츠카처럼 부릉부릉 숨찬 엔진소리를 내며 로바가 달린다. 중앙선도 없는 좁고 패인 도로가 그렇찮아도 낡은 차를 더욱 덜컹거리게 한다. 경직된 남편의 얼굴은 결의에 차 있고 숨이 막힐 듯 긴장한 난 앞만 주시하고 있다. 차의 컨디션도, 엉망인 도로도, 표지판의 생소한 키릴문자도 모두가 첩첩산중이다무엇보다도 낡은 차가 제일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차들도 대부분 낡아서 우리의 로바와 도낀개낀이다. "로바야! 잘 부탁한다. 이제 한가족이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다오." 진지하고 간곡하게 말하는 나. 이젠 둘이 아닌 셋이서의 여행이다. 남편은 치열한 전투를 지휘하는 사령관처럼 결의에 차 열심히 기아변속을 한다. "당신을 캡틴 정으로 임명함. 항법사 손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이며 캡틴 정을 존경과 믿음으로 따를 것을 서약함." 우리는 전우처럼 손을 꽉 잡았다. "화이팅∼" "잘 할 수 있어!!!" 코끝이 시큰해지며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온다. 열악한 상황들이 우리 셋을 강하게 묶어준다.

  불가리아 농촌풍경은 낯설고도 새롭다. 쓸어질듯 쇠잔해 보이는 농가의 무겁고 우중충한 가옥들은 오랜 사회주의 국가였던 흔적인 듯 구차스럽고 말과 당나귀를 끌고 들녘으로 나가는 농부의 그을린 얼굴은 바쁠 것 없이 느긋하다. 농경사회로의 회귀인 듯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푸른 곡선이 드넓은 구릉지대의 황토빛 기름진 평야를 풍요로 덮고있다. 우리에겐 미지의 곳으로 닫혀져 있던 불가리아. 풍부한 자연과 비옥한 평원 그리고 촌스러운 듯 예스럽게 살아가는 검박한 사람들. 불가리아는 그렇게 멀리 동양에서 온 나그네에게 자신의 속살을 조금씩 내보이고 있었다.

  빠진 상처에 새살 돋듯 용기와 자신감이 돌아온다. 부드러운 연두색 지평선이 희망처럼 다가온다. 한낮이 되면서 날씨는 찌는 듯이 덥고 바람소리, 덜컹대는 차 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고작 시속 60Km에 100Km이상을 달리 듯 요란하다. 혹시 불심검문이나 재수 없는 돌발사고에 대비해 준비한 말보로 담배를 손가방에서 확인하고 이정표를 놓칠세라 키릴문자를 열심히 본다. 릴라수도원까진 130Km정도여서 3시간쯤 걸릴 것이다.

언땅에서 숨죽였던 잡초의 강인한 생명력처럼 이제서야 짜릿한 여행의 설레임이 불안과 움츠러듦을 비집고 꿈틀대며 올라온다.

 

릴라 수도원의 성당과 종탑이다.

  세상의 좋은 면을 알기 전에 세상의 나쁜 면을 먼저 알아버린 아이처럼 사회주의 국가였던 나라들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들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나보다. 응어리가 고속도로변 작은 가게에 차를세웠다. 고속도로라 해도 왕복2차선이고 길가 조그만 집에 '커피'라고 쓴 종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서였다. 젊은 여인이 커피와 꿀과 잼을, 그리고 치즈를 만드는 절구 비슷한 나무통을 도로변에서 팔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니 작은 잔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설탕과 함께 가져다준다. 커피를 마시며 릴라수도원은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더 가란다. 그리고 릴스키동상이 나오면 좌회전해서 들어가라고 표정과 손짓으로 말한다. 말은 안 통해도 의사소통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오후 1시쯤에 릴라수도원에 도착했다. 소중한 보물처럼 릴라수도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감격이란…. 아득히 먼 발칸지역 여행을 꿈꾸며 불가리아를 생각할 때면 제일 먼저 릴라수도원이 떠올랐다. 불가리아〓릴라수도원이란 공식이 내 안에 입력 된 후 파도처럼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이색적인 둥근 지붕과 불가리아 정신과 혼의 상징으로 500여 년 동안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종교와 정신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릴라수도원을 동경했었다.

수도사의 숙소인 4층 회랑

 

  릴라수도원은 성인 이반 릴스키(876∼846)가 릴라산에서 수도생활을 할 때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은신처 주변에 촌락을 이루며 살기 시작 한 이후, 14C 초엔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다시 지었고, 1833년에는 화재로 불에 탄 수도원을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몇 번의 개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수사들의 방 300개, 예배실 4개, 도서관, 손님용 방, 22m나 되는 굴뚝이 있는 수도원관리실 등이 있으며 수도원 중앙의 성모성당은 십자모양의 평면에 둥근 지붕 24개를 얹은 3랑식(三廊式) 성당으로 회랑의 벽면과 천장엔 19세기 프레스코화 1200점이 장식되어 있어서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삶에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감동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2002년 월드컵에서 '꿈은★이루어진다'를 경험했었다. 흥분일까 아니면 경이로움일까 알 수 없는 떨림은 수도원을 몇 바퀴 돌고 나서야 조금 진정됐다. 거대하기도하고 화려하기도하고 신비하기도하고 조순한 느낌까지 주는 오묘한 분위기의 수도원이 해발 1,200m 깊은 산 속에 숨은 듯 다소곳이 정적에 묻혀있었다. 관광시즌이 아니어서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수도원을 젊은 수도사가 사원을 돌기도 하고 회랑을 쓸기도한다. 중앙의 성모성당 안과 밖은 온통 프레스코 화로 덮어있다. 1층부터 4층까지 성당을 중심으로 말굽형으로 수사들의 방이 배열되어있고 한쪽 끝에 있는 박물관엔 수도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소장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금은 장식의 성경, 석판인쇄기, 제의와 제기, 프레스코화, 석판에 기록한 성경구절 등. 특히 1790∼1802년에 제작된 정교하고 섬세하게 성서이야기가 세겨진 나무십자가는 신앙의 힘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 감탄하게된다. 색다른 환경이 주는 색다른 자극은 강한 흡인력이 있다. 불가리아 정신의 발원지 릴라수도원은 크되 위압적이지 않고, 엄격하되 친근하고, 멀지만 가깝게 느껴지고, 낯설되 익숙한 것 같은 편안함과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가족과 같이 온 정교도들은 가느다란 초를 사서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성당 정면의 제단에서 젊은 수사의 도움으로 그들의 기원을 경건하게 간구한다. 이들의 기도도, 정교회 의식도, 말도, 분위기도 모두가 낯설어서 젊은 수도사의 검고 긴 제의자락만큼이나 멀리 그리고 아득히 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후 4시가 지났다. 산 속의 햇살은 이미 그 눈부심을 감추기 시작했고 3시간 넘게 수도원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내 마음을 릴라수도원은 이제야 슬며시 놓아준다. 멜릭마을로 떠나면서 그래도 아쉬워 수도원의 원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트레킹코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으나 둥근 지붕만

 

수도원 넘어로 릴라 산이 보인다

조금 보일 뿐 웅장한 전경은 수림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멜릭마을로 가는 길에 우린 늦은 점심으로 계곡에서 송어요리를 먹었다.빙하 녹아 내린 맑은 계곡물에서 잡은 송어의 단백한 맛이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거라는 민사장의 추천이있어서 우린 송어튀김과 사라다 그리고 커피를 시켰다. 팔뚝만큼 큰 송어튀김과 식초와 올리브유를 듬뿍 친 사라다 맛의 어울림이 절묘하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차갑고 투명한 계곡물, 시원하게 부는 부드러운 바람, 한가롭기만 한 시골풍경, 나귀를 몰고 가는 늙은 농부와 나귀방울소리, 오염 없는 천연의 자연 속에서 시장기와 송어 맛이 어울려 나그네의 건조한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우린 크게 웃었다. 행복이랄까, 기쁨이랄까. 그보다는 릴라수도원까지 왔다는 뿌듯한 성취감의 웃음일 것이다. 우린 멜릭마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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