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마을을 찾아 떠나다

2003. 5. 16 금요일. 맑음(여행 13일째날)

산토리니-아테네-마라톤-코린토스, 주행거리 211㎞, 주유량 21.92ℓ, 금액 EUR16.00-

  새벽 3시 조금 넘어서 유람선이 피레우스항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 설레이며 떠났던 바로 그 자리다. 아침 6시, 메인 다이닝룸에 조찬이 준비되어 있었고 하얀 제복을 입은 어제의 호스트가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어 다시 오고 싶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유종의 미'는 모든 삶의 철학임을. 귀족이 됐던 좋은 추억을 배낭 속에 꼭꼭 싸 깊숙이 넣고 피레우스항에 내려섰다.

  치열한 현실로 다시 돌아온 우리다. 택시로 주차하우스까지 왔다. 오랜만에 본 오픈카가 어찌나 반가운지 똥차라고 홀대하던 마음이 사라진다. 짐 정리를 마친 우린 7일간의 주차료를 지불하고 크루즈 여행으로 풀어 졌던 마음을 단단히 묶고 7시 40분에 작은 마을 마라톤으로 출발했다. 지금부터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돌아 다시 불가리아 소피아로 돌아가는 한 달간의 여행이 시작됐다. 마라톤. 그곳은 왠지 꼭 가야할 것 같은 끌림이 있는 곳이었다. 어쩜 손기정옹서부터 황영조, 이봉주에 이르는 마라톤에 대한 잠재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속도로에서 마라톤으로 가는 일반도로로 들어섰다. 실수 없이 여기까지 왔으니 일반도로를 따라 마라톤 마을을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봄이 한참인 들녘엔 초록의 윤기가 풍성하고 조용하고 한가한 농촌 풍경이 구릉을 따라 풍요롭다. 구릉을 몇 개 넘었다. 마라톤 마을이 가까워 졌는지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 입구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노는 모습을 보고 차를 세우고 학교로 들어갔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낯선 사람을 보고 우르르 몰려온다. 누룽지 사탕 한 봉지를 뜯어 아이들에게 주었다. 코리안 캔디를 오물오물 먹는 아이들이 예쁘다. 선생님껜 목거리 볼펜 몇 자루와 태극선 부채를 드리며 우릴 소개했다. 교실을 보고싶다고 했더니 5, 6학년교실을 보여주신다.

  20여명이 앉을만한 교실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벽에 붙어있고 작은 수납장이 얌전하다. 흰색의 책상과 걸상이 있는 깨끗한 교실은 밝고 환했다. 우중충한 우리의 교실과는 다르게 산뜻하고 정갈하다. 교무실도 교실과 다름없이 수수하고 깔끔하다. 풍금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학교. 호기심 많은 아이들과 친절한 선생님 그리고 훈훈한 시골마을이 마라톤 마을의 첫인상이 되었다. 슈퍼마켓이 있었다. 이곳에선 카드결재가 가능하단다. 며칠 먹을 것을 잔뜩 샀다. 토마토, 오렌지, 오이, 양상추, 요구르트, 햄, 소시지, 바켓트 빵, 올리브, 고추절임, 마스터스소스, 오렌지주스, 물 등. 사은품으로 예쁜 양념 그릇까지 준다.

마라톤 전투의 승리 기념비

마라톤 전투에서 사망한 전사들의 무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마라톤 Tomb이다. 기원전 490년 페르샤 대군을 물리친 마라톤 전투의 전장으로 당시의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높이 10m정도의 커다란 무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곳은 역사적으로나 스포츠 면에서나 상징적의미가 있는 곳이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는 마라톤 전투에서 강국 페르시아를 물리침으로서 도시국가로서의 위상이 높아졌고 주위의 도시국가들의 결속인 댈로스 동맹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파르테논 신전을 건립하는 최전성기를 맞게 되고 스포츠 면에서도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2Km를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숨진 병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189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마라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시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5월은 습도가 적어서 맑고 산뜻하다. 그러나 11시가 지나면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는 다닐 수 없을 만큼 덥고 햇볕이 강하다. 이곳도 2004년 올림픽 때문에 거리 공사가 많아서 나그네를 더욱 덥고 힘들게 한다. 그리스는 온 나라가 올림픽 준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마라톤 지도가 없어서 가다 묻다를 반복하며 막연하게 찾아간다. 작은 마을이라 쉽게 찾을 거라는 생각이 고생을 자초했다. 땀을 흘릴 만큼 흘린 후에야 얕은 철책이 죽 쳐져있는 마라톤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거저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커다란 동산 같은 Tomb엔 풀이 무성하고 주위엔 올리브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텅 빈곳에서 우리만이 무언가를 느껴보려고 Tomb 주위를 맴돌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된 학생 20여명이 선생님의 인솔로 무덤을 한바퀴 돌고 나간다.

  둘씩 손을 꼭 잡은 아이들의 파란 눈망울이 파란 하늘을 닮았다. 그들이 나가고 난 경내는 다시 고요와 적막만 남았고 올리브나무 그늘 밑에 앉은 우리는 못다 한 숙제를 풀 듯 2500년 전의 전투 장면과 병사들의 함성과 아테네를 향해 달리는 병사의 건강한 다리를 상상해본다. 올리브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잠시 멎는다. 새들도 더위에 잠시 쉬려나 보다. 시에스타 시간인가?

밖으로 나왔다. 슈퍼마켓에서 산 먹거리를 차에서 꺼내 올리브 나무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에스타   시간인지 원래 외진 곳인지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다. 올리브나무와 야트막한 언덕과 하늘뿐인 한적한 길에서 우린 점심을 먹는다. 아득한 옛날 마라톤 전투 격전지에 와 있는 우리가 새삼스럽고 놀랍다. 세계사시간에 배운 마라톤, 펠로폰네소스 반도, 올림피아, 코린토스, 미케네, 스파르타 등을 찾아가는 고된 현장학습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거의 벗은 차림으로 다닌다. 숏팬티에 브레지어 정도의 웃옷이 전부다. 덥기도 하지만 아예 햇빛을 즐기려는 의도인가보다. 그들처럼 나도 겉옷을 훌러덩 벗었다. "해수욕장에 왔다고 생각합시다" 스스로도 민망해서 하는 말에 남편은 대꾸도 않고 바켓트빵을 한입 비워 문다. 허긴 에어컨 없는 고물차를 몰고 모르는 길 물어물어 찾아오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사서하는 고생도 팔자려니'하지만 98일 예정의 사서하는 고생의 시작에서 남편이 더위에 지칠까봐 걱정이다. 나도 빵에 스트로베리 요구르트를 듬뿍 찍어 크게 한입 깨물었다. 김치 대신 커다란 절인 고추를 베어 물고 찝찔한 국물을 삼켰다.

  마라톤 박물관을 찾아갔다. 박물관 가는 길의 농촌풍경이 낯설지 않다. 푸른 밭이랑에서 내리쬐는 햇빛에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낙과 밀짚모자를 쓴 농부들이 밭일을 하다 뮤지움가는 길을 묻는 동양인이 신기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으로 쭉 가라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박물관은 마을 깊숙이 들어간 산밑 끝자락에 있었다.

  1976년 개관한 박물관은 작고 아담했다. 마라톤 부근에서 발굴한 항아리, 조각, 대리석, 등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관람객이 우리뿐인 이곳에선 리셉션에 있던 뚱뚱한 중년여자가 찡그린 인상으로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카메라와 비디오는 못 찍게 되어있어서 우린 다 접어두었는데도 못 미더운지 아니면 동양인에 대한 편견인지 의심의 눈길을 걷어들이지 못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까지 왔는데 대강 볼 수는 없어서 더 차근차근 열심히 소장품들은 보고 나왔다. 벌써 오후 4시가 되었다. 부지런히 코린토스로 떠났다.

  코린토스는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펠로폰네소스 반도 입구에 있는 도시로 1893년에 만든 코린토스 운하가 있고 기원 전 6세기경의 아폴론 신전이 있는 광대한 유적의 도시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그리스의 위대한 땅이다. 코린토스, 미케네, 올림피아, 스파르 타, 에피다브로스, 미스트라 등 빛나는 과거를 누렸던 많은 장소가 있는 고대문명의 고향이다. 그래서 우린 펠로폰네소스 반도서부터 그리스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코린토스로 가는 길은 마라톤으로 올 때 고속도로에서 코린도스로 빠지는 Exit을 봤기 때문에 아테네방향으로 가다 그곳에서 빠져 E24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조금 돌아가는 듯했지만 아는 길로 가는 게 수월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올 때의 이정표와는 달리 가는 방향의 고속도로 이정표엔 코린토스 사인이 모두 붉은 글씨로 지워져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아테네까지 진입할 것 같아서 지워논 Exit으로 빠졌다. 그러나 역시 길은 공사 중이었다. 유적이 있는 곳은 모두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다. 일년 앞둔 올림픽 때문에 또 골탕을 먹은 우리는 천신만고란 말이 실감났다.

  코린토스로 가는 고속도로 E24번을 어떻게 찾는담. 막막했다. 나는 더 이상 항법사가 아니었다. 그래도 남편은 새벽녘에 지도를 보며 공부를 한 덕에 운전을 하면서도 감으로 코린토스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교통혼잡은 서울보다 더 했고 일방통행인 도로엔 무단횡단이 많아 사고위험까지 높았다. 가다 통행료를 내고 다시 돌아오고 방향을 바꿔 반대쪽으로 가다 다시 통행료를 내고 돌아오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무작정 코린토스 E24번 이정표를 찾아 헤맸다. 더위타령이 쏙 들어간 지독한 긴장에 물만 마신다. 오픈카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3시간 이상을 헤맨 보상으로 코린토스 운하가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70m, 폭 23m의 수직의 절벽 아래로 녹색의 가느다란 운하의 물길을 가르고 올라오는 배의 통과가 힘겹고 아슬아슬하다. 그리스와 이오니아 해를 이어주는 운하를 통과하는 배의 아슬아슬함이 여기까지 온 우리의 헤맴만큼이나 아슬아슬하고 힘겨워 보인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첫발을 디딘 우린 그러나 호텔 찾는 일이 급했다. 내일 코린토스 유적을 보기 위해 다시 오기로 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해변가에 있는 깨끗한 식당엔 방이 있었고 저녁을 해먹을 수 있는 시설이 있었지만 우린 컵라면에 누룽지를 말아먹고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목 차]  [전날 2003년 5월 15일]  [다음날 2003년 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