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토스-미케네- 에피다브로스 까지

2003. 5. 17 토요일. 맑음(여행 14일째날)

코린토스-에피다브로스, 주행거리 116㎞, 주유량 16.43ℓ, 금액 EUR12.00-

  에게해의 바닷물이 앞마당 끝자락에 와 찰랑이는 숙소에서 어제의 고생을 보상받고도 남을 쾌적하고 편안한 하룻밤을 보냈다. 코린토스에서 우물쭈물하지 않고 곧바로 바닷가 숙소를 찾아가기로 한 결정은 현명했으며 앞으로도 순간순간의 선택이 오늘처럼 성공적이길 소원하며 경관좋은 숙소를 떠났다.

구코린토스의 BC6세기 경의 아폴로신전

구 코린토스의 피레네 샘으로, 로마 유적이다

 지금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지만 고대의 코린토스는 무역의 거점으로 번영을 누린 곳으로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아폴론 신전과 로마시대의 화장실과 목욕탕 유적이 있는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로 시작되는 사랑의 고장이기도 하 다. 아폴론 신전이 있는 넓은 유적 터를 찾은 많은 관람객들은 목조 신전에서 석조 신전으로 바뀐 초기형태의 아폴론 신전의 6개의 돌기둥을 배경으로 햇빛 좋은 아침에 사진을 찍는다. 몇 천년 세월을 견디어 온 6개의 돌기둥이 노인의 기름기 없는 얼굴처럼 건조해 보이고 주위에 흩어져있는 돌더미로 돌아간 신전의 잔해들이 잡풀사이에서 허망하다. 나도 아폴론 신전 돌기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로마시대의 화장실과 목욕탕, 스토아와 아고라, 사도 바울이 설교하던 연단이 있던 넓은 로마 광장 유적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늘한 냉기가 찌는 더위 속에서 에어컨 바람처럼 시원하다. 로마시대 석조건물의 일부로 남아있는 피레네의 샘이라 불렸던 동굴 속 같은 자연저수장엔 지금도 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다. 넓은 유적지의 더위를 피해 그늘과 냉기로 시원한 건물 내 통로에 커다란 누렁이 한 마리가 길게 누워 자고있다. 저수장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도, 그냥 지나가려도 좁은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누렁이가 거치적거려서 발로 툭툭 건드려도 막부가내다. 개도 고양이도 무너져 내린 역사의 페허에서 예나 변함없이 이렇듯 환경에 적응하며 생명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박물관엔 신석기 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코린토스 유적터에서 발굴·발견된 것과 이 지방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명한 코린토스 항아리와 토기와 그리스 조각 등 소장품 하나 하나가 흥미롭다. 특히 그리스 조각을 보며 감탄을 넘어 감동하게 된다. 조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아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우리말을 들었을 때의 놀람이란…. 터키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첫 번째 만난 한국인이다. 가족을 만난 듯 반갑다. 홍삼사탕 한 봉지를 주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젊은 부부를 만날 때의 기쁨이란 비 갠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것 같다. 아이의 건강한 미래가 싹트는 것 같아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귀중한 보물창고'란 릴케의 말처럼 어렸을 때의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은 두고두고 보약이 된다. 앞으로도 어린 자녀와 함께 여행하는 한국의 젊은 부부를 많이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이들 부부와 헤어졌다.

  오후 2시, 다음 목적지는 미케네다. 기원전 13세기에 번영한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 미케네는 코린토스에서 남서쪽으로 80여km떨어진 곳이다. E65번 고속도로를 타고 아르고스 쪽으로 가다가 미케네로 진입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언제나 고속도로를 탈 때까지 힘든 길 찾기를 한다. 아폴론 신전 기둥을 뒤로하고 우회전해서 골목을 돌아 직진을 했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아르고스 방향표시가 나온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한참을 더 가야하는데…. 급한 마음에 오른손에 들고있던 확대경을 차 앞창에 들이댔다. 쨍그렁 유리창에 부딪히는 예리한 소리에 남편이 급정거를 했다. 나도 놀라 손에 든 확대경을 봤다.

  출발한 땐 언제나 긴장과 기대가 교차한다. 장애물이나 예기치 못한 돌발사건에 대한 염려는 물론 이정표를 잘못 봐 다른 길로 갈까봐 긴장하지만 곧 낯선 것,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기운을 솟게 한다. 무엇보다도 못 말리는 떠돌이 기질의 우리가 아닌가. 그러나 어제 코린토스를 찾느라고 3시간이나 헤맨 일은 항법사인 나에겐 큰 부담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준비 과정에서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역할을 했다. 코스를 정하고 일정을 짜고 숙소를 정하는 하드웨어는 남편의 몫이었고 볼거리와 내용, 자료수집 등 소프트웨어는 내 담당이었다. 남편은 지명이나 도로번호, 지명의 위치(동,서,남,북) 코스 중간 중간의 도시와 거리(km) 등에 대해 꿰뚫고 있다. 그래서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입력된 감으로 잘 잘못의 낌새를 금새 알아챈다. 남편은 자기 전엔 항상 지도를 보며 내일 코스를 재점검한다. 나는 남편의 브리핑을 듣고 메모한 노트와 큰 지도와 일정표 등을 무릎에 놓고 항법사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아직은 낯선 그리스 문자가 얼른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아 순발력 있는 대처가 어렵고 무엇보다도 97년 북유럽여행 때와는 달리 나빠진 시력 때문에 돋보기만으로는 안돼서 오늘은 확대경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정표에 당황한 난 무의식중에 확대경을 차 전면 유리창에 갔다댔다. 기가 막혀서…. 이러고도 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 오픈카의 소음과 지독한 더위 그리고 버터나 빵, 햄 같은 기름진 음식이 맞지 않아 속도 편치않는데 이 황당함이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구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자연은 삭막하고 척박하다. 건조한 기후에 지형 자체가 구릉과 산지로 되어있어서 빽빽한 나무숲이나 울창한 수림보다는 완만하고 완곡한 구릉이나 산길을 오르거나 내릴 때가 많다. 그래서 뙤약볕에 지쳐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좀 쉬려해도 마땅히 쉴 그늘이 없어서 휴게소까지 가야할 때가 많다. 푸석한 석회암 산들의 희끗희끗한 바위표면이 잡목덤불 속에서 강하게 햇빛을 반사한다. 지루한 돌산 길을 달리며 더위와 눈부심에 오픈카의 속도를 줄이고 산길을 오르는데 바로 앞에서 축구공 만한 것이 느릿느릿 길을 건넌다. 급히 핸들을 꺾어 피했다. 뒤돌아보니 거북이다. 이런 산지에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미케네로 가는 동안 황량한 자연이 계속된다. 이런 삭막한 환경이 어떻게 찬란한 문명을 키워냈을까? 어딜봐도 물 흐르는 계곡이 없는 석회암 돌산뿐인데. 3, 4천년 전엔 이 땅이 기름졌을까?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다. 자전거로 산길을 오르는 부부인 듯 한 두 사람을 추월해서 우리 오픈카가 달린다. 미케네 궁전터 유적은 기원전 1600∼1400년경에 번영했던 미케네 문명의 유적으로 1876년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의 발굴로 세상에 알려졌다. 유네스코는 1999년에 이곳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1876년에 발견된 아트레우스의 보물 창고

미케네 아트레우스 성채의 사자문

  유적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르골리스 평야의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유적입구에 있는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 어마어마하게 큰 원추형 돔형식의 창고로 돌을 정교하게 쌓아 만들었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입구에 삼각형의 돌을 사용한 고도의 기술에 '우와!!!' 감탄이다. 이 창고는 슐리만이 발견할 당시에는 텅 비어 있어서 묘지가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단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창고가 발견됐지만 완전한 형태로 남은 것은 이곳뿐이라고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못지 않게 놀랍고 경이롭다.

  '사자의 문'으로 상징되는 미케네 성은 아크로폴리스의 원형이다.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성벽을 올라가면 커다란 삼각형 돌에 두 마리의 사자가 부조되어 있는 '사자의 문'이 나온다. 그 문을 나서면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와 도자기와 무기가 발견된 넓은 묘지터가 있고 상당히 급한 경사면 돌길을 한참 올라가면 정상의 궁전터가 있다. 벽의 일부와 토대로 사용한 돌등이 남아있는 넓은 정상에서 멀리 아르고스 평야를 바라보며 미케네까지 온 우리가 잠시 가쁜 숨을 내쉰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돌덩이로 남아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수많은 도시국가들의 생성과 소멸 속에 남겨진 아크로폴리스의 흔적인 돌덩이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도, 에게해 섬들도, 코린토스도, 미케네도 무너져 내려 아무렇게 나뒹구는 돌덩이들을 보며 몇 천년의 체취와 돌에 생명 넣기와 돌과의 대화를 통해 그 옛날을 느껴보는 맛이 그리스여행의 참 맛이 아닐까? 그래서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과 함께 보아야 좀더 명확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올림픽 준비로 모든 박물관은 지금 휴관 중이어서 저 아래 묘지터에서 발견된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와 도자기, 무기 등이 있는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묘지터만 보고 돌아가는 마음이 많이 섭섭하다. 물통을 메고 책을 들고 유적지를 찾은 서양의 젊은이들을 본다. 그들도 물통을 메고 책을 들고 다니는 동양인 노부부인 우릴 본다.

  발아래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들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린다. 잠자는 돌들을 깨우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돌들의 대답을 들은 듯 내가 말한다. 나 한국에서 왔어. 미케네 문명에 대해 오래 전서부터 호기심이 많았지. 학교 다닐 때 세계사를 좋아했거든. 이 아크로폴리스 언덕 정상에 와 있는 내 마음 너희들 알지 모르겠다. 감개무량이란 말이 있어. 이럴 때 쓰는 말이야. 성대한 환영잔치라도 열어 줘야해. 여기까지 오는데 60년이 걸렸거든. 환영의 헹가래를 치듯 언덕 아래에서 확 불어온 바람이 빨간 랩 스커트가 훌쩍 들어올린다. 새까맣게 탄 얼굴과 팔뚝에 비해 하얀 속살 그대로인 허벅지가 석회암 돌산의 희끗희끗한 바위표면의 빛의 반사처럼 햇빛에 눈부시다.

  늦은 시간 우린 에피다브로스의 고대 원형극장으로 떠났다. 유적 입장이 7시까지여서 마음이 급했다. 그리스를 여행하다보면 도로변에 갈색바탕에 노란색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입간판을 볼 수 있다. 유적표시다. 그림이 그려져 있어 쉽게 무슨 유적인지 알 수 있는 유적이 돌뿌리 채이듯이 많다. 코린토스와 미케네 유적을 돌아보고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남쪽 끝에 있는 에피다브로스 원형극장까지 가는 오늘하루가 바쁘고 길게 느껴진다.

에피다브로스의 극장 유적으로 완전한 형태다

음향효과가 탁월한 14,000명을 수용하는 객석

  에피다브로스 고대 원형극장은 페허나 돌무덤으로 남은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적이다. 에피다브로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역으로 번성했던 곳으로 기원전 4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원형극장은 기원전 4세기 말엽에서 기원전 2세기 중반에 걸쳐 두 단계로 나뉘어 지어졌는데 1881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1954∼1963년 대규모 복원 작업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말끔히 복원되어 고대 그리스 극장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에피다브로스 원형극장에선 매년 6월 중순∼9월 중순에 걸쳐서 3개월 동안 고대 그리스 극이 상연된다. 극장의 수용인원은 14000명이다.

  우린 저녁 6시가 훨씬 넘어 도착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주위를 꽉 둘러싸고 있어서 메마르고 삭막한 산지만 보아온 우리에게 시원함을 준다. 더욱이 무성한 소나무가 반가웠다. 관광객들이 빠져나가고 몇 사람 남지 않은 원형극장은 연극이 끝난 텅 빈 무대의 공허 같이 휑하니 적막하다. 자연의 비탈진 경사면을 그대로 살려 만든 극장은 음향효과가 뛰어나 원형의 중앙에 있는 중심점인 동그란 돌 위에 서서 동전을 떨어뜨리면 그 소리가 맨 위의 객석까지 들린다는 얘기가 있다.

  세 아이와 함께 온 부부는 아빠가 중심점인 돌 위에 서있고 두 아이가 객석의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아이들과 눈을 맞춘 아빠가 동전을 떨어뜨렸다. 꼭대기에 가만히 서있던 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소리 친다. 부드러운 공명이 그곳까지 울렸나보다. 이번엔 막내가 엄마와 같이 객석을 오른다. 아빠는 그 자리에 서있다. 연극을 감상하듯 그들의 행위를 본다. 가족의 유대가 따스한 공명이 되어 내게 전해온다.

  나는 계단을 천천히 세며 올라갔다. 108계단의 57단의 관람석 맨 꼭대기에서 원형극장을 휘∼둘러본다. 한 여름밤 연극제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몇 년 전 연극인 김지숙이 에피다브로스의 연극제에서 그리스 고대 비극 오이디푸스왕을 관람하고 '연극은 끝나고 불이 꺼진 깜깜한 밤, 관객들의 끝없는 박수소리와 별이 쏟아질 것 같던 밤하늘을 나는 잊을 수 없다'라고 썼던 글이 떠오른다. 나는 연극을 좋아한다. 에피다브로스의 원형극장에서 긴 여행의 바쁜 걸음과 마음을 잠시 멈춘다. 소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몇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도 살아 숨쉬는 그리스 비극과 희극의 생명력은 무엇일까. 그리고 김지숙이 본 만 여명이 꽉 들어찬 객석의 열기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내 상상력이 꽂힌 반원형무대 위에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한 사람씩 한사람씩 나타나고 있었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아가멤논과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가… 나는 그들의 비극 속으로 빠져든다.

  극장 앞에 있는 박물관이 막 문을 닫으려한다. 급히 들어가 번갯불에 콩 꿔먹듯 휙 들러보고 나왔다. 너무 늦은 시간, 우린 호텔을 찾아 에피다브로스 시내로 달렸다. 에피다브로스는 시골마을이어서 마땅한 호텔이 있을지 걱정됐다. 다운타운에 명색이 호텔이라고 쓰여진 곳에 빈방이 있었다. 30유로다. 무조건이다. 그러나 에어컨도 없는 좁고 엉성한 방은 고단한 몸도 쉽게 잠들지 못 할 만큼 불편했다. 날 새기만을 기다리며 뒤척이는 밤이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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