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 홀린 올림피아 가는 길

2003. 5. 19 월요일. 맑음(여행 16일째날)

미스트라-크레스테나,  주행거리 190㎞, 주유량 24.13ℓ, 금액 EUR18.00-

  미스트라 유적은 중세 비잔틴 시대의 유적으로 유네스코 지정 인류문화유산이다. 이 유적은 해발 600m정도의 산 경사면에 만들어진 교회마을로 정상엔 성터, 중간엔 궁전터와 교회, 아래는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249년에 프랑크족이 이 일대를 정복하여 마을과 성채가 건설된 이래 비잔틴 제국의 미하일 파레올로고스 황제 땐 제국의 중심이되어 문화와 교회의 도시로 발전했고 그 후 터키의 지배와 1687년에 베네치아의 지배를 거쳐 1770년 알바니아의 침공으로 페허가 된 도시다. 그래서 '비잔틴의 페허'라 부른다.

  유적의 입장은 6월엔 7시, 5월은 아침 8시부터다. 우린 8시에 입장해서 12시 30분쯤에 나왔으니 4시간이상을 보낼 만큼 이 유적은 방대하고 흥미로웠다. 유적 입구에서 꼭대기의 성채까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곳곳에 건축된 비잔틴 양식의 교회와 교회내부에 그려진 성서이야기나 성인의 프레스코화나 이콘 성화들을 볼 수 있다. 몇 백년의 세월을 견뎌오면서도 그 강렬한 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프레스코화는 중세의 삶이 얼마나 절대적인 신에 대한 찬미와 지향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미스트라의 비잔틴 유적

미스트라 유적인 성 소피아 교회

  오르다 보면 교회가 있고 다시 오르면 또 다른 양식의 교회가 우뚝하다. 납작한 붉은 벽돌을 켜켜이 넣고 쌓은 벽과 오랜지색 둥근 지붕과 의 조화가 햇빛에 고색창연하다. 오랜 세월동안 축조된 각기 다른 양식의 교회들은 각각 독특한 특색과 분위기가 있어서 어느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우리가 잔 캠핑사이트가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궁전터까지 올라왔으나 궁전을 지금 복원 중이어서 내부를 볼 수 없었다. 꼭대기 정상의 성채까진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데 뙤약볕에 지친 몸이 갈증으로 자꾸 물을 마신다. 내리쫴는 태양 빛에 녹초가 되었고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샌들 신은 발은 부르트고 새까맣게 탄 피부가 이젠 허물을 벗는다.

미스트라의 성채 위에서

 

  독일 남녀 고등학생들 수십 명이 단체로 왔다. 그들도 덥고 힘들었는지 겉옷을 벗고 속옷(?)바람으로 꼭대기 낭떠러지 성벽 위에 죽 둘러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 저 싱싱한 젊은 육체. 페허에 생명이 돌아온 듯 싱그럽고 발랄하다. 지치고 땀 범벅이 된 몸이 학생들의 기를 받아 원기를 회복한다. 조금 남은 물을 다 마셔버렸다. 정상까지 올라온 우리가 대견했다. 특히 캡틴 정은 더위 속에서도 모든 유적들을 비디오에 담는다. 그 철저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아니 존경스럽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맨몸으로 유적을 보며 올라오는데도 힘이 드는데…. 이제는 유적을 보는 안목이 조금씩 떠지고 고고학자라도 된 듯 고대 유적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익혀간다.

  올림피아로 떠났다. 올림피아가는 길은 무서울 정도로 험준한 산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산맥을 넘는다. 60˚정도로 확 꺾이는 길에선 진땀이 나고 거미줄 같이 이어진 벼랑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갈 땐 짜릿한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눈을 감고 기도했다. 방정맞은 생각을 지우고 또 지운다. 맨살을 드러낸 회색산이 덮칠 듯 확 다가서는 섬뜩한 험한 자연이 너무나 위협적이다. 농담과 여유는 숨은지 오래고 스틱을 잡은 남편의 손이 긴장한다. 얼마를 올라 왔을까. 길이 넓어진다 싶더니 파킹 장소가 보인다. 휴우∼!!! 살았다.

  한 숨을 돌리며 차에서 내리는데 온 산에 방울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양떼들이 바위산 여지저기에서 뛰어내려 계곡 밑으로 줄줄이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백여 마리는 넘을 듯 싶다. 저만치 바위 꼭대기에 양치기가 앉아서 휘파람을 불고 그 휘파람소리에 양떼들이 움직인다. 산에서 내려온 양치기는 의외로 잘 생긴 젊은이였다. 누더기 옷에 헐렁한 모자, 어깨에서 옆구리로 길게 흘러내린 헝겊 주머니에 삐죽이 튀어나온 물통 그리고 긴 지팡이. 초롱초롱한 까만 눈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양치기는 여름 내내 이곳에서 양을 방목하고 있나보다. 양떼와 젊은 양치기와 회색의 거칠고 삭막한 바위산이 어울린 풍경은 막 촬영을 끝낸 영화 장면 같다. 자연을 닮은 듯 순백한 표정의 양치기가 나를 꿈꾸게 한다. 낭만적인 영화 속 세상으로. 양치기의 맑은 영상을 줌 인하여 내 안에 간직한다. 파란 하늘에 치솟은 바위산이 하늘에 맞닿아 있다.

  올림피아 코앞까지 왔을 땐 7시가 넘었다. 5시간 이상을 달렸는데 산길이라서 거리(km)에 비해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작은 마을 올림피아는 관광객이 넘칠 것 같아서 호텔보다 캠핑사이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렌트카 여행에서 캠핑사이트가 좋은 것은 차를 오두막 앞에 세울 수 있어서 짐을 들고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답답한 호텔보다 전망이 좋아서다. '올림피아 캠프' 라는 사인과 →화살표시가 눈에 뜨였다. 이곳은 산지여서 캠핑사이트도 산 속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화살표 방향을 따라갔다. 사인은 산 속으로 계속 이어지고 산길만 달려온 우린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왠지 꺼림칙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감이라는게 있다. 특히 이정표가 아리까리한 경운 감으로 찾아가고 감이 빗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성적 판단을 앞지르는 동물적 감각이 더 정확하다. 순간적인 순발력과 함께.

  산 속 깊숙이 들어왔다. 또 올라가라는 사인이 나온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 또 따라간다. 계속 고개를 갸웃둥거리며 따라간다. 마을 몇을 지났다. 다시 화살표에 올림피아 캠프라는 사인이 나온다. 하늘에 닿을 듯 산꼭대기까지 올라왔다. 비포장길이 덜컹된다. 긴 작대기로 오리새끼 몇 마리를 몰고 가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흔들며 돌라가라는 시늉을 한다. 이상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조금 더 갔다. 다시 화살표가 나온다. 그러기를 몇 번 되풀이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는 원시림 속에서 드디어 차를 세웠다. 뭐에 홀린 듯 제정신이 아니다. 산속엔 정적과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캠핑사이트라는 사인이 아니고 단지 올림피아 캠프라고 써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착각이었나 보다. 오싹 소름이 돋는다.

  반사적으로 차를 돌려 악셀을 힘껏 밟았다. 비포장도로의 덜컹거림에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다. 얼마를 돌아 나왔을까. 우리처럼 화살표를 보고 찾아가는 캠핑카를 만났다. 그들도 우리가 했던 것처럼 올림피아 캠프를 묻는다. 할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우리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돌아가라고. 그들도 우리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처음 화살표를 보고 따라가기 시작했던 곳까지 돌아 나오는데 50여분을 허비했다. 허둥대며 찾은 호텔은 70유로에 방도 별로고 카드지불도 안됐다. 동양인인 우리에게 구석방과 현찰지불을 요구하는 호텔주인의 속셈이 기분 나빴지만 '울며 겨자먹기' 일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하루 갬, 하루 흐림이 정확하게 반복되는 여행이 힘들고 고달파서 집 생각이 절로 났다. 집에 가고싶다. 우리도 편안한 집이 있는데….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자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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