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감동

2003. 5. 20 화요일. 맑음(여행 17일째날)

크레스테나-올림피아-델피, 주행거리 275㎞, 주유량 26.72ℓ, 금액 EUR20.30-

  아침 8시. 기분 나쁜 호텔을 나왔다. 아침의 상쾌함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의 발상지 고대 올림피아 유적을 찾아가는 마음이 갬이다. 너무나 시골스럽고 한가한 쪼그만 마을 올림피아. 유적까지는 13km라는 사인이 보인다. 신비한 분위기의 그리스 미녀들이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장면과 불붙인 성화봉을 들고 올림피아 경기장 입구를 뛰어나오는 첫 주자의 역동성이 어른거린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무너진 돌기둥

그리스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헤라 신전

  유적지마다 관광객들로 넘치는 그리스는 이미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시작된 듯 했다. 올림피아도 곳곳이 복원공사 중이고 예상대로 박물관은 휴관이다. 제우스신에 대한 신앙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올림피아는 기원전 470∼456년에 제우스 신전이 완성되었다.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신전 주랑의 돌덩이들을 보며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우스 신전이 얼마나 거대했던지 켜켜이 쓰러져 있는 주랑 돌기둥의 지름이 3m는 족히 될 듯 싶다. 무엇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신전을 만들게 했을까. 몇 천년 전 사람들의 건축기술이 놀랍다.

  기원전 7세기경의 것으로 그리스에 남아있는 신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헤라신전이나 기원전 4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는 올림픽 경기장 스타디온도 과학문명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눈으로도 놀라울 뿐이다. 스타디온 트랙은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올림픽 탄생의 땅 올림피아의 유적 하나 하나가 깊이 그리고 감동으로 와 닿는다. 그리스의 위대한 땅 고대 문명의 고향 펠로폰네소스 반도 여러 곳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삶은 예나 지금이나 정점은 기원과 염원에 닿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무너져 내린 페허에 서린 그때 그 사람들의 기원이 우리에게 깊이 와 닿아 감동이 된다. 그 감동은 후대인들에게도 이어지겠지.

  올림피아 유적에서도 많은 독일 고등학생들을 본다. 준비한 자료로 설명도하고 질문도하며 선생님과 함께 답사를 하고 있다. 우리 고등학생들은 언제쯤 이런 산 역사공부를 하게 될까. 현장을 찾아가는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의 세계사 시간을 꿈꿔본다. 포장된 희망일지라도 희망은 기쁨이고 미래니깐.

  햇빛 가리개가 등허리까지 내려온 재미있는 모자를 쓴 이이를 무등태우고 지나가는 아버지, 유적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는 젊은 엄마, 저만치 앞서간 아이를 불러 설명문을 읽어주는 젊은 부모들, 아이를 데리고 온 서양사람의 답사모습이 철저하다. 휙 들러보고 나가는 사람은 없다. 마라톤 스타디온으로 갔다. 길이 192m 트랙엔 출발선이 표시되어있었고 학생들이 선생님의 호루라기에 맞춰 10명씩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한다. 북을 치며 응원하는 학생들의 즐거운 함성이 스타디온에 퍼진다. 트랙은 아이들, 학생들, 어른들까지 모두들 뛰기를 하느라 웃음소리가 끝이질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기원전 776년이고 그 후 기원전 676년부턴 전 그리스로 규모가 확대되었고

 

올림피아의 트렉과 출발점이 있는경기장 입구

기원전 5∼6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고 한다. 트랙에 퍼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북소리가 옛날의 함성을 되살리는 듯 했다.

  넓은 유적 사이사이에 올리브 나무숲이 우거져있다. 나는 올리브 나뭇가지를 꺾어 월계관을 만들어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 파란 하늘 밑에서 손을 들고 선서를 했다. "항법사 손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90여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가 건강하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곳 블레프테리온은 그 옛날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전원이 선서를 했던 곳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보고 웃는다. 나처럼 호기심 많은 사내아이가 내게 다가와 재밌다는 듯이 월계관을 본다. 나는 사내아이 머리에 올리브 월계관을 씌워줬다.

  유적지를 나왔다. 주차장에 오니 캠핑카 족들이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있었다. 남편은 도미 두 마리를 가스불에 굽고 아내는 포도주를 곁들인 식탁을 준비한다. 식탁엔 꺾어온 노란 들꽃도 꽂아놓았다. 우리의 점심은 기껏해야 햄버거나 샌드위치 아니면 찬밥에 올리브 절임이 고작인데 생선 굽는 냄새와 붉은 포도주가 끝내주게 군침돌게 한다. 캡틴 정은 부러워서 다음 여행 땐 꼭 캠핑카를 빌리자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못 말리는 우리다. 팔자도 사납지. 편한 집 두고 낯선 곳 떠돌며 매일 숙소와의 전쟁을 치러야하다니. 그러나 편한 집에 오면 또 다시 짐을 꾸리고 싶어 안달하는 우리의 역마살. 우린 델포이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스 여행도 종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어느덧 오후 1시다.

  델포이가 있는 중북부 그리스 땅은 코린시아코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마주보고 있다. 그래서 델포이로 가려면 반도 동북단 빠뜨라에서 페리로 해협을 건너야한다. 빠뜨라로 가는 Pig-Patra 고속도로를 달리며 중북부 그리스는 또 어떤 땅일까 궁금했다. 그리스 여행도 이제 델포이, 마테오라만 남았다. 빠뜨라까지 2시간 이상을 달렸다. 페리 선착장이 있는 빠뜨라 외곽도로 5번 진입로를 찾는데 몇 번 실수를 했지만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고 15분만에 해협을 건넜다.

  중부 그리스 첫 도시 안트리오(Antrio)에서 이테아(Itea)까지 해안을 따라 달리며 이오니아 해를 보는 여유와 즐김이 메마른 석회암 돌산을 달리며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일 저런 일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가는 여행이다. 이오니아 해 너머로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닿을 듯 가깝다. 푸른 바다는 이어지고 이제 16km만 더 가면 델포이다. 느낌이 좋다.

  이테아에 도착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델포이를 물으니 주인여자는 저 만치 병풍을 둘러친 듯 깎아지른 절벽 산 중턱을 가리킨다. 델포이는 공중도시 인가? 저 산중에 대지의 배꼽(옴파로스) 델포이 유적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델포이 코앞까지 왔다. 저녁준비를 해야했다. 슈퍼마켓을 물으니 주인 여자는 자기를 따라오란다. 그녀의 차는 우리의 황금색 마티스였다. 그리스 본토는 물론 에게해 섬에서도 솔찮히 본 우리 차. 현대, 대우, 기아, 쌍용 등 반가운 우리의 얼굴들이다.

  가파른 산길로 꺾어들 때까지 주위는 온통 올리브 밭뿐이다. 절벽 위에 캠핑사이트가 있었다. 우린 이곳을 숙소로 정했다. 낭떠러지 절벽 밑으로 청회색 올리브 밭이 무지무지하게 펼쳐져 있다. 이렇듯 끝없는 올리브 밭은 스페인에서도 포르투갈에서도 본적이 없다. 가늠할 길 없는 그리스 자연이여… 캠핑사이트는 한산했고 주인은 멀리서 왔는데 최소한 3일은 머물라고 했다. 끝없는 올리브 밭과 산 속의 적막이 마음을 가라앉힌다. 포도주를 마시며 일기를 쓴다. 지는 석양에 겹겹이 겹친 산마루들이 산불이 난 듯 벌겋게 타오른다. 회색빛 구름 밑으로 새빨간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산불같은 산마루의 석양이 신탁의 성지 델포이의 신비를 상징처럼 예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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