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투에서 쫄병 전사하다

2003. 5. 21 수요일. 맑음(여행 18일째날)

델포피-칼람바카, 주행거리 346㎞, 주유량 16.92ℓ, 금액 EUR12.00-

  델포이 유적은 페르나소스 산 속에 꼭꼭 숨어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었고 세계의 중앙에 자기 나라가 있으며 그 중심은 델포이의 성지라고 생각했었다. 기원전 12세기부터 델포이는 신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였으며 기원전 6세기엔 최전성기를 맞는다. 전세계 도시국가들이 가지고 있던 태양신 아폴론에 대한 신앙과 신의 계시로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종교적 영향 때문에 델포이는 대지의 배꼽(옴파로스)으로 숭배를 받았고 성지의 중심신전인 아폴론신전에선 신탁이 이루어지곤 했었다.

  우린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델포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옴파로스가 상징하듯 세계의 중심으로서 델포이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다른 유적과는 지리적 조건이 전혀 다른 깊은 산중이다. 첩첩 산중의 옹색한 오지인 델포이가 성역중의 성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가장 중요한 것은 깊이 숨겨놓는 인간 심리 같은 것일까? 최창조 교수의 풍수지리학 강의를 들으며 이해가 갈까?

아테나 프로나이아 성역의 토로스

 

엊저녁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 제자들을 데리고 지나가던 고고학자인 듯한 노신사가 우릴 보고 석양의 아테네 신전이 기막히게 아름답다고 알려줬다. 델포이 성지에 있는 신전들 중 가장 아름다운 신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폴론 신전이 있는 유적은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 없었고 산아래 돌기둥만 남은 아테네신전은 볼 수 있었다. 작고 아담한 신전터에 산그늘이 그윽이 드리워져 있었다.

델포이 유적은 아폴론 신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보물창고와 봉납기념비, 원형극장, 올림픽 경기장 등이 있다.

  유적 입구에서부터 숨차게 가파른 언덕길을 꺾어져 올라가는 길 양쪽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신탁의 답례로 헌상한 보물창고와 기념비가 죽 늘어서 있다. 확 꺾어지는 길 안쪽에 있는 완벽하게 복원된 아테네 보물창고는 아테네가 마라톤 싸움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에 대한 감사로 아폴론 신에게 헌상한 것이라 한다.

  줄줄이 봉납고가 있는 경사면을 다 올라가면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아폴론 신전이 있다. 기원전 370년에 세운 신전은 기둥과 토대만 남아있는데 이곳은 이미 기원전 6세기경에 신전이 세워져서 태양신 아폴론의 신앙과 신탁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아폴론신전의 내실엔 아폴론 상이 놓여있었고 지하엔 대리석으로 만든 옴파로스가 있었다고 한다. 신전 내실 벽엔 고대 7인의 격언이 새겨져 있었는데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도 있었다고 한다. 전세계 도시국가들이 헌상한 수많은 봉납고가 이곳이 대지의 배꼽임을 말하고 있었다. 고대 국가들의 태양신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대지의 배꼽이 있던 아폴론 신전

  아폴론신전에서 다시 숨가쁘게 경사면을 올라가면 원형극장이 있고 더 올라가면 스타디온(경기장)이 있다. 좀더 마을 쪽으로 올라가면 체육관도 있다. 델피에서도 4년마다 델피제가 열렸는데 스포츠제전만이 아니라 연극제도 열렸다니 오늘 우리 삶의 뿌리가 몇 천년 전에 맞닿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스타디온에는 올림피아처럼 178m의 트랙과 출발선이 있었다. 독일인 젊은 부부 몇 쌍이 5,6세쯤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들은 유적입구에서부터 우리와 같이 올라와서 낯이 익었다. 출발선에서 뛰기 시작한 아이들이 트랙을 돌아서 다시 돌아왔다. 엄마들이 박수를 치고 간식을 준다. 나도 귀여운 아이들에게 캔디를 주었다. 관람석 중앙에는 로마시대 헤로드 아티코스가 기증했다는 대리석좌석이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지금까지 남아있다. 오늘날에도 산허리를 깎아가며 이런 곳에 건축물을 짓는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신앙의 힘은 위대한 자연처럼 무한했다.

  잠시 트랙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날 보며 오신다. 가까이 내 앞까지 온 할아버지는 독일어로 뭐라고 말을 한다. 내가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세요' 물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할머니가 달려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당신 팀의 가이드인줄 알고 쫓아오셨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영어로 의사소통이 된 우린 유쾌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선그라스에 챙큰 모자에 청록색 긴치마와 아이보리색 블라우스를 입은 내 실루엣이 가이드를 닮았었나보다. 살갗을 까맣게 태우는 햇빛과 더위 때문에 무조건 긴 옷에 모자를 쓰고 다닌다. 한 무리의 독일 노인들이 합창을 하듯 웃어댔다. 나도 신나게 웃었다.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 하나가 생겼으니.

  박물관 입구에 모조품인 옴파로스와 유명한 청동관리상만 볼 수 있게 가 전시실을 만들어 놓았고 박물관은 공사중이다. 델포이 유적을 끝으로 그리스 유적 답사도 끝나고 우린 기묘한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이 있는 메테오라로 간다. 그리스 여행에서 캡틴 정의 가장 관심거리는 메테오라 수도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 유적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고대 유적들을 보면서 인류역사와 문화에 대해 조금씩 눈떠가고, 알아가고, 확인하고, 이해되고, 느껴는 재미가 좋았는데 졸업이라니 서운했다. 난 유적들을 눈에, 마음에 담으며 그리스 고대 유적과 작별을 했다.

  차안으로 돌아 온 우린 메테오라 수도원을 보기 위한 숙박지 칼람바카로 떠나기 전에 코스를 점검했다. 그리스 본토를 척추처럼 남북으로 관통하는 핀토스 산맥 동남쪽에 델포이가 있고 산맥의 북서쪽에 칼람바카가 있어서 북쪽으로 가면서 계속 산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코스와 거리를 다시 확인하고 우린 출발했다. 하얗게 눈 덮인 산을 넘고, 돌아가고 또 넘는다. 캡틴 정이 스틱 잡은 손에 쥐가 날 것 같다며 차를 세웠다. 예상할 수 없는 낯선 곳, 낯선 길, 낯선 지형이 나그네를 지치게 한다. 그래서 모험과 도전의 연료는 젊은 에너지다. 돌아가더라도 산길이 아닌 코스를 찾아봐야 겠다며 지도를 펴고 확대경을 찾았다. 그런데 확대경이 없다.

  델포이는 유적 답사의 클라이맥스였다. 나는 아폴론 신전으로 떠나면서 확대경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나빠진 시력으로 안내문이나 자료가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다. 잃어버린다는 남편의 핀잔을 들으며 나는 주머니 속에 확대경을 넣었었다. 아폴론 신전의 주랑을 돌 때도 확대경은 있었다. 스타디온 트랙에서 대리석 관람석을 기증한 사람의 이름을 볼 때도 확대경으로 봤었다. 그리고 독일 할아버지와의 해프닝 때도 확대경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일 아이들에게 사탕을 줄 때다. 오른손에 든 확대경을 돌 위에다 놓고 사탕을 준 후 그냥 돌아섰나 보다. 확대경 없이 잔글씨를 어찌 본담…. 앞이 캄캄했다.

  지금까지 확대경을 들고 유적을 보러 간 일은 없었다. 언제나 차 속에 놓고 봤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들고 나왔다가 그만 산 속에 놓고 왔다. 남편은 "훈련받고 배치된 첫 전투에서 전사한 신병꼴이구만…" 한다. 그만 눈물이 쏟아진다. 확대경을 그리스 첩첩산중에 놓고 그냥 올 때 그놈이 얼마나 나를 불렀을까. 이 낯선 산 속에 날 두고 가면 어떡하냐고. 호랑이 나올 것 같은 델포이 산 속이 아닌가. 확대경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자식을 떼어놓고 온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소리내어 울었다. 난 확대경이 되어 서럽게 울었다. 긴 여행에 마음이 많이 약해 있었다. 델포이에서부터 계속된 산속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린 큰 도시 라미아에서 라리사를 경유해 칼람바카로 가는 고속도로로 돌아가기로 했다. 메테오라도 깊은 산 속에 있을테니 시간이 배로 더 걸리더라도 편안한 길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은 가라앉고 잃어버린 확대경이 날 신산하게 한다.

  메테오라는 깊은 산 속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칼람바카까지 오는 길은 산길이 아니라 넓고 기름진 평야가 이어지는 그리스의 곡창지대였다. 비옥하고 기름진 땅엔 푸른 채소가 청청하고 스프링쿨러가 힘차게 돌아가며 물을 주고있었다. 드넓은 밀밭은 끝이 안 보인다. 넓은 평원 끄트머리에 메테오라가 있었고 그 못미쳐에 숙박지 칼람바카 마을이 있었다. 캠핑사이트 아주머니는 델포이에서 놀며 놀며와도 4시간이면 충분한데 5시간 반이나 걸렸다니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칼람바카 캠핑사이트는 메테오라 기암들이 빤히 보이는 곳으로 시설이 깨끗했다. 처음으로 서울서 가져온 임금님표 이천 쌀로 저녁밥을 지었다. 여행 중 처음 먹는 쌀밥이다. 기막히게 꿀맛이다. 볶은 고추장에, 불고기에, 돌김에, 상추쌈에, 맥주한잔이 끝내준다. 확대경 때문에 서럽던 마음도 가라앉고 칼람바카의 저녁놀이 맥주한잔에 취한 얼굴에 홍조를 더해준다. 뺨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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