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의 수도원들

2003. 5. 22 목요일. 흐림, 가는 비(여행 19일째날)

카람바카-메테오라-테살로니키, 중행거리 275㎞, 주유량 25.23ℓ, 금액 EUR20.21-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분다. 여행 19일짼데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아침 9시부터 수도원 입장이인데 구름이 잔뜩 몰려오더니 비를 뿌린다. 기암절벽 위에 있는 수도원과 어울리는 날씨라 생각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리스는 종교국가임을 알 수 있다. 고속도로변이나 일반도로변, 샛길이나 갈림길, 집집의 정원에도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나 성모상을 세워놓고 꽃으로 장식한 것을 흔히 본다. 특히 고속도로변과 일반도로변엔 1m 안팎의 작은 구조물을 세워놓았는데 그 안엔 십자가나, 촛불이나, 꽃이나, 사진 등을 넣어두었다. 그리스에서만 볼 수 있는 저게 뭘까 궁금했었는데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이곳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가족들이 미니 교회처럼 작은 구조물을 세워놓은 것이었다. 도로변에 있는 이 구조물들은 그리스 정교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그리스인에게 종교는 삶이다. 메테오라의 수도원이 그래서 더 이방인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마테오라의 수도원이 있는 바위산

 

메테오라에는 아주 기기묘묘한 모양을 한 바위 위에 수도원이 있다. 특이한 지형도 신기하고 그 바위산 꼭대기에 어떻게 수도원을 지었을까도 궁금하다. 바위들은 평원을 배경으로 20∼30m, 높은 것은 400m 나 되는 것도 있어 메테오라의 특이한 풍경은 그리스의 가장 인상깊은 곳이 되고 있다. 11세기 이후 중세의 수도사들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메테오라의 바위산 정상에 터를 잡기 시작했고 1367년 처음 이곳에 수도원이 세워진 이후로 고립된 암벽 위에 수도원은 계속 지어졌다. 천년의 풍상을 견뎌오며 지금도 바위산 위에 우뚝한 24곳의 수도원 중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수도원은 6개뿐이다. 다섯 곳은 수도사들이 있는 수도원이고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수녀님들이 살고 있는 수녀원이다.

구름 끼고 비 뿌리는 날의 메테오라는 기이한 지형이 묘하게 성스러워 보인다. 6개의 수도원은 일주일에 하루씩 돌아가며 휴원을 하고 있어서 우린 수녀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을 먼저 찾아갔다. 수녀님들이 관리하고 있는 수도원은 정갈하고 환했다. 꽃을 아름답게 가꾼 작은 정원은 물론 수도원 내부에 있는 조그만 교회나 박물관, 벽화나 성상들도 세월을 잊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자신을 내어준 자들의 깨끗한 마음과 정성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성물을 팔고 있는 젊은 아니 어린 수녀님의 뽀얀 얼굴이 그렇게 신성해 보일 수가 없다. 웃음도 아닌, 미소도 아닌, 이콘 성화를 닮은 그 얼굴표정이 너무 마알게서 나는 수녀님을 닮은 이콘 성화를 하나 샀다.

 

주차장에서 본 아기오스 스테파노 수도원

  수녀원은 밖에서 보는 것 보다 넓었고 수녀원 발코니에선 칼람바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제 밤 캠핑사이트에서 바라본 풍경을 지금은 수도원에서 저 밑 마을풍경을 조망한다. 수녀님의 얼굴과 손에든 이콘 성화의 얼굴이 하나 되는 성스러움이 수도원 곳곳에 스며있다.

마테오라의 최고 최대인 마테오른 수도원

 

  대 메테오른 수도원으로 갔다. 14세기에 세워진 메테오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수도원으로 평원에서의 높이가 534m나 된다. 수도원 안에 있는 교회와 그 내부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설립자의 초상화, 박물관에 소장된 여러 가지 무기, 성상, 필사본, 판화, 오래된 부엌 조리 기구, 전망대 등 수도원을 돌아보는데 쾌 시간이 걸렸다. 수도사들의 해골과 뼈를 가득 모아놓은 곳도 있었다. 이 수도원은 수도사들의 은둔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으로 속세와의 차단을 위해 물자보급과 사람들의 출입을 도르래를 이용해 끌어올렸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고립된 수도원 외벽 꼭대기엔 올가미와 도르래가 그대로 걸려있다. 관람객들은 다리를 건너서 바위를 파서 만든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 수도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테오른 수도원에서 바라본 바틀람 수도원

기암 사이로 보이는 루사노스 수도원

  대 메테오른 수도원 전망대에서 바로 보이는 바를람 수도원이 기암 위에 곡예 하듯 올라앉아 있다. 관광객들이 오가는 다리는 하늘다리처럼 공중에 떠있어서 아슬아슬하다. 기이한 지형과 수도원이 있는 풍경은 고집스런 신앙의 발원지 같다. 바위산을 빙빙 돌며 또다른 수도원을 찾아간다. 칼람바카 쪽으로 내려오다 아름다운 루사노스 수도원의 외형을 감상하고. 다시 성 니콜라스 수도원으로 갔다. 가늘고 좁은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 수도원이 작고 귀엽다. 뜨리아다 수도원은 오늘이 목요일이어서 휴원이다. 6개의 수도원을 한바퀴 돌면서 다시 감상한다. 자연의 오묘함과 이를 이용한 인간의 신앙심과 지혜가 놀랍고 경이롭다. 남편은 메테오라를 떠나기가 못내 아쉽나보다. 물안개가 짙게 덮인 메테오라는 신비롭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그네의 발길은 자꾸 머뭇거린다.

  오후 2시 넘어 테살로니케를 향해 떠났다. 라리사를 바이패스하여 국도 1번 E75를 타고 그리스 대미를 장식할 테살로니케로 간다. 날씨는 흐렸다 비 뿌렸다를 반복한다.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햇빛과의 전쟁이 휴전이다. 오픈카의 문을 닫고 달리니 조용하고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남편의 노출된 팔뚝과 반팔 셔쓰 속의 피부 색깔이 빛과 그림자처럼 대비된 투톤이다. 왼팔과 오른팔도 그렇다. 무지막지한 그리스의 햇빛이었으니깐. 테살로니케까지 5시간이상 달릴 것인데 위로라도 하듯 흐린 날씨가 햇빛을 가려준다.

  우리의 일정은 테살로니케를 지나 그리스 국경근처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불가리아 멜릭 마을로 갈 예정인데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스 여행이 끝났다는 여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부 그리스의 중심 도시 테살로니케를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웠다. 그리스 입국 때 실수로 헤매면서 본 테살로니케는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였고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의 중심 도시로 이곳에 남은 역사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테살로니케에서 일박하자는 내 의견에 캡틴 정은 난색을 표했다. 늦은 시간 대도시에서 또다시 호텔 찾는 전쟁은 생각만 해도 질릴 일이고 다음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긴 하다. 일정이 늦어지면 복잡해진다. 하지만 한번 시도해보자는 나와 어렵다는 남편이 또 티격태격이다.

  결국 테살로니케 기차역 근처 호텔을 찾았고 80유로에 일박하기로 했다. 그러나 테살로니케의 지옥 같은 교통체증과 빗속에서 호텔을 찾아 헤맨 일은 끔찍했다. 외곽으로 빠져나가 호텔을 찾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시내로 돌아오기까지 진이 빠질 만큼 빠졌다. 괜한 고집을 부렸다고 후회도 했다. 메테오라를 떠난 지 6시간만 이다. 떠돌이 생활이 무엇 하나 수월한 게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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