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피 산맥을 넘어 스몰얀으로 가는 길

2003. 5. 24 토요일. 비(여행 21일째날)

멜닉-데빈, 중행거리 188㎞, 주유량 16.90ℓ, 금액 LEV24.00-

   비가 내린다. 멜릭마을은 불가리아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라는 것과 특이한 지형과 포도주상인의 저택인 박물관과 집에서 만든 포도주와 로젠스키 수도원 등 제법 볼거리가 있는 마을이다. 그러나 이런 볼거리보다도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옛날을 그대로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의 삶의 온기이다. 그래서 이 마을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작은 마을 멜릭은 불가리아에서 유일하게 풍화작용에 의해 깎인 사암들이 피라미드처럼 뾰죽뾰죽하게 솟아 있어서 병풍을 둘러친 듯 사암사이에 폭 파묻힌 마을이다. 특이한 지형 맨 위쪽에 지금은 박물관이 된 포도주 상인의 저택이 있다. 저택은 이 지형을 잘 이용하여 지은 3층 목조가옥으로 1층과 연결된 지하엔 포도주 저장 동굴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어마어마한 동굴의 크기로 봐서 이 상인의 사업규모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햇빛 좋고 땅이 기름져 질좋은 포도를 수확하는 불가리아는 어딜 가나 포도밭을 볼 수 있다. 집집의 마당이나 담에도 수도원 마당에도 포도넝쿨이 있다. 이 상인은 주위에서 수확한 포도를 거둬들여 포도주를 제조해 부를 쌓았나보다. 지금도 지하동굴에선 옛날 상표 그대로 포도주를 판매도 하고 있었다. 시음를 해봤다. 가볍고 은근한 풍미가 산뜻하다. 4레바를 주고 한병 샀다. 우리 나라도 질이 좋은 불가리아 산 포도주를 수입하고 있다.

지하에 포도주 공장이 있는 개인박물관

박 공예품을 파는 멜닉의 기념품 가게

  민속 박물관이 된 저택은 500여년 간의 터키 지배로 이슬람화 된 불가리아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1층은 우리의 사랑방처럼 남자들이 물담배를 피며 담소하는 곳이고 2층은 거실과 안살림을 하는 여인들의 공간으로 부엌과 베틀이 있고 3층은 침실이다. 생활소품과 여인들이 짠 직물과 레이스 등이 그때처럼 제자리에서 세월을 바래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지금 이 마을 사람들의 차림새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옷들이 벽에 걸려있다. 세월이 정지 된 듯한 공간이다. 기념품가게의 상품들도 주둥이가 긴 박에다 멜릭풍경을 그린 박공예와 포도주와 와인색을 주로 쓴 공예품들이 많았다. 우린 멜릭 전통음악 테이프를 하나 샀다. 그리고 12시 20분 마을을 떠나 국경근처 환전소로 갔다. 100유로를 레바로 바꾸고 기름도 넣고 점심식사하고 스몰얀으로 출발했다. 오후 2시다.

  스몰얀까진 약 220km된다. 불가리아 고산지대로 들어가는 모험이 시작됐다. 우리에게 불가리아 하면 떠오르는 자장 대중적 이미지는 요구르트와 장수마을이다. 그러나 불가리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할 때 스몰얀이 장수마을이란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코 투어 민사장에게 물었더니 장수마을이라면 스몰얀이 아니라 고산지대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멜릭처럼 작은 마을 시로카루카로 가보라고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스몰얀은 장수마을이라기보다 목재산업이 발달한 큰 도시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스몰얀 가는 길의 시로카루카 마을을 찾아가기로 했다. 스몰얀 가는 길은 지도상으로 볼 때 릴라산맥을 넘는 험한 산길이어서 너무 늦게 출발한 게 부담이 되었다.

  이정표도 없는 시골길을 물어물어 간다. 비상용 작은 확대경으론 지도의 전반적인 방향이 한눈에 들어오지 안아 답답했지만 그러나 더 큰 난관은 엉망인 불가리아 도로 사정이다. 흥부네 애들 누더기 옷 같은 길은 차라리 낳다. 누더기를 깁지 않아 움푹움푹 패인 길은 엉덩이에 불이 날 정도로 덜컹거린다. 비까지 오는 좁은 시골길은 대부분 비포장도로여서 시속 20km로 달리기도 힘들다. 어쩌다 차나 사람을 만나면 스몰얀 방향에 있는 큰 도시이름을 외친다. "다다" 하면 맞다는 뜻이니 안심하고 간다. 가다 또 묻는다. 반세기동안의 사회주의 체제가 모든 것을 정지시켰나보다. 우리 나라 50년대 같은 시골길을 감으로 간다. 그러나 우린 흉내도 낼 수 없는 때묻지 않은 불가리아 사람들의 표정은 부러울 만큼 넉넉하고 편안했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말처럼.

  바쁜 길을 막는 건 사람이나 차가 아니라 개들이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개들이 길에 앉아서 차를 보고도 피하질 않는다. 양, 말, 소, 당나귀 등이 풀을 뜯고 흙갈색 기름진 들녘엔 푸른 채소가 풍성히 자라는 아름다운 농촌풍경을 보면서도 갈 길이 먼 우린 털털거리는 도로사정만큼 속이 탄다. 산맥을 넘어 동서를 관통하는 이 코스는 1차 여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될 것 같다.

  빗속에 진흙을 뒤집어 쓴 차가 산길을 오른다. 산림은 검푸르고 안개구름에 시계가 5m도 안되는 비포장산길은 올라갈수록 점점 더 안개가 짙어져 앞이 안 보인다. 안개구름이 걷히는 사이사이로 사행길이 아득하다. 피가 마를 것 같은 공포. 아무도 없는 홀로만의 주행이라 진땀이 흐른다. 무서웠다. 북유럽 여행 때 노르웨이 골든루트에서 차가 고장을 일으켜 쩔쩔 맸던 공포의 그 밤 이후 최악이다. 계기판을 봤다. 20km를 달리는데 한시간이 걸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산림지대를 관통하는 산속은 이 시간 지나가는 차도 없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위협적이다. 그래도 감으로 산 정상을 넘은 것 같았다. 마을이 나타나길 바랐다.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작은 마을이 보였고 한 노인이 집앞에 서 있다. 차를 세운 남편이 뛰어가 두 손으로 잠자는 시늉을 한다. 노인은 검지손가락을 가로 젖는다. "니에"라고. 그리고 직진방향을 가리킨다. 여긴 호텔이 없나보다.

  한참을 가도 마을이 나타나지 않아 또 속이 탄다. 지금시간이 6시 30분인데 빗속의 산간지대는 밤 8시가 넘은 듯 어둡다.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토요일 오후에 마을에 무슨 일 있는지 경찰차가 마을입구에 정차하고 있었다. 경찰은 데빈(Devin)에 가야 호텔이 있다고 했다. 낯선곳은 끝까지 진을 뺀다. 스몰얀 가는길에 베빈(Bevin)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경찰이 말한 곳이 베빈인지 데빈인지 헷갈렸다. 지도를 보면 되는데… 잔글씨가 보이질 않으니 전사한 쫄병 생각이 간절했다. 주유소가 있어서 다시 물었다. 데빈이라 했다. 데빈을 스몰얀 가는 반대방향에 있는 곳이었다. 데빈엔 목재공장이 있어서 호텔이 딱 하나 있었다. 3층 다락방이 있었다. 산기슭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마다 불을 지폈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처마 밑 빨래줄엔 두꺼운 옷을 빨아 빨래집게로 가지런히 널어 났다. 산간지대여서 밤엔 꽤 기온이 떨어지나 보다. 호텔의 이불도 두툼하다. 멜릭마을에서 산 포도주 한 잔에 골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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