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얘기와 브란 성

2003. 5. 28 수요일. 맑음(여행 25일째날)

부쿠레슈티-브란-시기슈아라, 주행거리 325㎞, 주유량 19.31ℓ, 금액 LEI480,000-

 아침 9시에 브란 성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브란 성을 보고 시기슈아라까지 갈 예정이다. 브란 성은 드라큘라와 인연이 있는 성으로 루마니아의 볼거리하면 제일 먼저 들먹거려지는 곳이다. 캡틴 정도 꼭 봐야 한다는 브란 성. 그러나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브란 성은 별로다'가 압도적이다. 여하튼 루마니아=브란 성이란 이미지 때문에 이래저래 루마니아 볼거리에서 브란 성은 뺄 수는 없었다. 브란 성으로 가는 ?60번 도로를 탔다. 브란 성은 루마니아의 고도 브란쇼프 남서쪽으로 30km 쯤 떨어진 카르파티아 산기슭에 있다.

  E60번 고속도로는 불가리아 도로보다는 훨씬 좋아서 우리의 오픈카가 모처럼 신나게 달린다. 브라쇼프 못미처 브란 성으로 가는 바이패스에서 고속도로는 끝나고 산길로 들어섰다. 브란 성으로 가는 길엔 모텔, 호텔, 캠핑사이트가 많이 들어서고 있어서 카르파티아 산과 브란 성이 관광지로 각광 받으면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루마니아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드라큐라 성이라는 이름의 브란 성

브란 성의 중정

  브란 성은 유명세만큼 인파가 몰려 있었고 소문대로 별로였다. 성의 규모도, 외형도, 내부구조도, 주위 경관도 별 특색이 없다. 지극히 평범한 성에 불과했다. 괜히 영화 드라큘라 이미지에 덧입힌 호기심만 자극하고 있었다. 성 내부의 방을 지키고 있는 중년 부인이 한국을 잘 안다며 은근히 접근해온다. 보여줄 것이 있다며 출입이 금지된 방으로 날 데려간다. 스웨터를 보여주며 사란다. 다른 방에서도 그랬다. 뒷거래가 성행되는 루마니아의 현실을 조금 알 것 같다. 성밖 넓은 초지에 루마니아 전통가옥을 모아 논 야외 전시장이 있었다. 오히려 성보다도 전통가옥을 둘러보는게 더 흥미로웠다. 성 아래 마을로 내려오니 마침 교회에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장지로 가는 장례행렬이 있었다. 일명 드라큘라 성이라 부르는 브란 성 동네의 장례행렬이라서 왠지 섬뜩했다. 여행 중 처음 보는 장례행렬이 하필 브란 성이람….

  오후 3시 시기슈아라로 떠났다. 시기슈아라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세 도시의 규모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브란 성에서 시기슈아라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루마니아의 도로변에 1km마다 작은 이정표가 있어서 초행길의 나그네는 참 편리했다. 루마니아도 카르파티아 산지를 벗어나니 불가리아처럼 푸른 구릉지대가 이어진다. 시골풍경은 한없이 넉넉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루마니아에 대한 경계의 마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시가슈아라에 도착했다.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시간. 낯선 도시에서 잠자리를 구하는 일. 그 막막함이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는 우리가 가없기까지 하다. 엄마와 둘이 산 친구가 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다가도 해질녘이면 엄마나 형제를 따라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장사 나간 엄마는 오지 않고 덩그렇게 혼자 남았을 때의 처량한 설움이 그 친구 삶의 깊은 근원이 됐다. 세 자녀를 다 출가시킨 지금도 해질녘이면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온다는 친구.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한다. 어느 도시를 가겠다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막상 도착하면 어둠과 막막함만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어딘가를 찾아가 밤을 보내야하는 절절한 설움 같은 것에 목이 메이곤 한다. 서구의 대도시라면 몰라도 발칸지역의 작은 도시들은 호텔 찾기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쉽지 않다. 더 더욱 늦게 도착한 시간이면.

  헤매고 헤맨 끝에 지은지 7개월 된 작은 호텔을 찾아왔다. 호텔은 우리 나라 평창동이나 성북동 같은 산기슭 주택가에 있었다. 싸고, 깔끔하고, 분위기가 좋으면 금새 마음이 편해지는 떠돌이 기질이 힘든 숙소 찾기에서 보약이 된다. 집 떠난 지 25일 만에 처음 집 같은 편안한 방에서 자게 됐다. 고생 끝에 낙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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