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라 마을에서 대박 터지다

2003. 5. 30 금요일. 맑음(여행 27일째날)

쿨루지 나포카, 주행거리 94㎞

 클루지 나포카는 인구의 절반 정도가 헝가리인이 살고있는 도시로 인근엔 지금도 헝가리 전통대로 살고 있는 루마니아 안의 작은 헝가리라고 하는 마을들이 있다. 우린 그 작은 마을 메라, 비슈티아, 마쿠우를 보려고 클루지 나포카까지 왔는데 어제 호텔 리셉션에 있는 총각은 이 마을들을 모른다고 하며 내일 아침에 알려주겠다고 했었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데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리셉션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얘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다다'를 연발한다. 리셉션의 총각은 우리가 내민 지도에 메라 마을 가는 길을 표시해 주었다. 메라 마을은 호텔에서 1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덜컹거리며 마차가 지나가는 비포장 진흙길엔 말똥이 징검다리처럼 떨어져 있고 온 마을에 말똥냄새가 향기처럼 퍼져 있는 메라마을은 옛날 농경시대를 그대로 살고 있는 21세기의 건강한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생존의 다양함이여. 키 작고 뚱뚱한 할머니들이 퍼진 짧은치마에 앞치마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지나간다. 모자만 쓰면 안데스 산맥의 인디오와 다를 바 없는 실루엣이다. 들에서 일하는 부인들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메라 마을의 에리자벳 집 대문 앞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옛날에 머물러있는 이 마을에서 특별한 기행거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마차가 지나다니는 흙길을 보며 막막해 했다. 멜라 마을이 있는 칼라타 지방은 헝가리풍의 화려한 민속의상과 독특한 지붕의 목조가옥과 꽃무늬가 그려진 방과 가구 등 옛부터의 풍습 등을 간직하고 있는 민속학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린 클루지 나포카를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마차와 말똥뿐인 이 마을에서 나는 뭘 보고 뭘 느끼겠다는 것인지.

  나무대문을 열고 할머니 한 분이 나오다가 집 앞에 서있는 동양인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나는 웃으며 할머니에게 다가가 들고있던 태극선 부채와 선물을 드렸다. 내마음을 금새 알아차린 할머니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란다. 할머니의 키는 150cm나 될까. 마당 넓은 집의 검둥이가 낯선이를 보고 짓다가 할머니의 야단에 조용해진다. 아래층 할머니 집은 원룸 같은 공간에 침실과 무쇠난로와 부엌과 의자가 요기조기 있었다. 밭에 나간 할아버지의 장화가 한켠에 놓여 있고. 할머니는 집안살림 얘기를 하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로 의사소통을 한다. 말이 필요 없는 현장이니깐.. 마당으로 나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 있던 여인이 우릴 보고 올라오란다. 할머니도 손짓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우린 젊은 여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엘리자벳이라는 여인은 불어를 조금 한다고 했다. 그녀의 집은 마루겸 부엌이 있고 그 옆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작은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난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감탄이여!!! 황홀함이여!!! 엘리자벳의 할머니가 손수 그렸다는 꽃무늬가 화려하게 그려진 가구에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현란한 꽃무늬가 빽빽하게 그려진 작은 찬장, 나무침대, 옷장, 의자를 겸한 나무함, 방석, 인형 등 서너평도 안 될 작은방은 오색찬란한 무지개색 꽃무늬들로 휘황찬란하다. 화려함의 극치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뉴욕 맨해튼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보다도 더 휘황찬란한 화려함이다.

  초등학생인 딸은 학교엘 가고 남편을 부쿠레슈티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화도 없는 소박한 마을이기에 가구에 그려진 화려한 꽃무늬들이 더욱 영롱하다. 헝가리 전통을 그대로 지키며 루마니아 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 국가라는 울타리가 민족의 뿌리 깊은 정신 앞에 무력해 보인다.

  엘리자벳이 민속의상을 입고 찍은 결혼사진과 가족사진을 보여준다. 화려하고 우아한 민속의상은 온통 모조진주로 장식됐고 자수와 구슬로 수놓은 앞치마나 리본이 달린 머리장식 모자가 말 할 수 없이 아름답다. 넉 잃은 듯 놀라워하는 나에게 엘리자벳은 나무함에서 민속의상을 꺼내며 입어보란다. 의자를 겸한 나무함 속엔 접을 수 없어 길이대로 차곡차곡 넣어둔 화려한 의상이 들어 있었다. 90세가 넘어 돌아가셨다는 할머니가 평생 만들었다는 작품들이다. 나는 그 아름다운 옷들을 입고 앞치마도 들렀다. 그리고 리본 달린 흰 진주로 장식한 모자도 썼다. 그리고 빨강, 노랑, 검정, 파랑 색으로 꽃그림을 그린 작은 옷장 앞에 섰다. 루마니아와 헝가리와 코리아가 어우러져 황홀한 감동이 되고 그리고 감동은 파문이 되어 끝없이 퍼진다. 이 감동을 어찌 잊으리….

  엘리자벳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다. 그녀는 잔잔한 검은 구슬로 만든 목거리를 보여준다. 나는 목거리를 목에 걸고 오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목거리 값은 4레이. 우리 돈 천원 정도다. 아래층에 세든 할머니도 엘리자벳도 우리가 그 진흙길을 다 빠져 나올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잠시 꿈을 꾼 듯 하다. 복권에 당첨된 듯, 대박이 터진 듯 오랫동안 차 속에서도 몽롱했다.

목조 지붕이 인상적인 비슈티아 마을

조용한 마쿠우 마을

 비슈티아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의 여인들이 가구에 꽃그림을 그리며 사는 마을로 마을 중앙에 있는 칼비니스트 교회도 붉은 색 자수로 꾸민 설교단과 테이블이 있다는 화려한 정보의 낌새는 찾을 길 없고 마을은 메라 마을처럼 조용했다. 개울가 근처에서 초등학생들이 선생님과 같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마을 청소의 날인가 보다. 건초를 싸두는 창고 건물 뒤에 차를 세우는 우릴 보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몰려왔다. 여인들이 가구에 꽃그림을 그리고 있는 현장을 볼 수 있겠냐고 손짓발짓으로 물었더니 씩씩해 보이는 소녀가 앞장서며 따오란다. 오륙명의 소녀들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을 돌아 어느 작은 집에 우릴 안내하곤 소녀들은 돌아갔다. 집주인 남자가 우릴 언덕 꼭대기 숲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열쇠로 문을 열고 보여주는 곳은 가구에 꽃그림을 그리고 있는 곳이 아니라 칼비니스트 교회였다.

  1487년과 1760년에 만들어진 종과 종루가 있는 작은 교회는 붉은색 자수 벽걸이들로 장식한 내부와 설교단과 테이블, 천장을 가득 메운 색 바랜 프레스코화 등이 화려하다기 보다 단청이 벗겨진 산사처럼 어수선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의 오래된 목조교회였다. 3레이를 주고 헝겊엽서를 한 장 샀다. 친절히 웃어주는 교회지기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교회를 떠났다. 아무리 마을을 돌아봐도 마을은 잠자듯 조용했고 번호판을 단 마차만이 간간이 지나갈 뿐이다. 그래도 메라 마을에서의 기분 좋은 대박으로 소득 없이 비슈티아 마을을 떠나는 기분이 그리 언짢지 않았다. 마차를 탄 듯 덜컹거리며 흙길을 가는 오픈카의 흔들림이 싫지 않다.

  마쿠우 마을을 찾아간다. 마쿠우 마을은 비슈티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로 옛부터 칼라타 지방의 독특한 지붕을 가진 목조가옥들이 있어서 별세계에 온 듯 특이하며 비슈티아 마을 보다 더 작고 가난한 마을이라는 정보가 내가 알고있는 정보의 전부다. 마을에 들어서니

  언덕을 따라 들어선 마을 맨 꼭대기에 교회가 있고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내에서 오리들이 뒤뚱거리며 놀고 있었다. 개울가 나무그늘에서 두 여인이 커다란 천에 아프리케 수를 놓고 있었다.(한달 후 헝가리에서 이들이 수놓던 테이블 클로스를 관광지에서 많이 팔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만난 단 두 사람이었다. 정말 때묻지 않고 순박한 루마니아의 시골마을이다. 우리 나라 강원도 오지 산골마을에 온 듯 하다.

  그러나 특이한 목조가옥의 지붕이 있는 곳이란 정보는 맞지 않았다. 부쿠레슈티를 떠나 이곳까지 오는 동안 루마니아의 시골은 어디나 목조가옥이고 지붕의 모양도 비슷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헝가리 풍의 색다른 지붕과 이들만의 독특한 삶을 보고싶다는 기대한 무너졌지만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조용히 그리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농촌마을의 한낯은 밭으로 일나간 사람들에게 줄 새참거리와 농기구를 싣고 밭으로 오가는 마차들과 아직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은 빈집과 텅 빈 마을에서 개와 고양이와 오리들이 노는 풍경뿐인 시간. 이게 삶이 아닌가.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니깐. 여행객의 유별난 욕심이 이 마을의 소박한 삶 앞에서 무색해진다. 이쯤해서 나도 무엇을 건지겠다는 여행객의 욕심을 접고 말똥냄새와 풍향기가 뒤섞인 흙길 풀섶에 주저앉아 백조의 바쁜 발놀림을 멈춘다. 하늘에 천천히 구름이 흘러간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오늘따라 소중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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