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비아 지방의 수도원들

2003. 6. 1 일요일. 비 흐림(여행 29일째날)

수체비차-보로네츠,  주행거리 87㎞

 6월이다. 어느덧 한달 가까이 떠돌고 있다. 서울을 떠날 때 98일간의 여행이 얼마나 부담이 됐던지 여행의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었다. 우리부부의 나이도 나이지만 부부의 건강도 좋은 편은 아니어서 심리적으로 더욱 그랬다. 우리의 여행경력은 올해로 만 20년이 된다. 그러나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처럼 점점 자신 없어지는 마음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고 떠나기로 했을 땐 물고가 확 트인 고인 물처럼 새로운 활력이 솟기도 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여행 준비를 하면서 점점 일정도 늘어나고 여건도 여의치 않은 현실 앞에서 새로운 활력은 서서히 불안과 걱정으로 바뀌어 갔다. 여행지가 제약과 걸림돌이 많은 발칸지역이고 렌트카 문제도 수월치 않았고 주위의 걱정도 부담이 됐으며 석 달이 넘는 여행기간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루마니아 북부 몰다비아 지방까지 왔고 벌써 6월이다.

  6월을 맞은 새로운 마음으로 서울에 전화를 했다.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내가 일하고 있는 교육원에도. 반가운 목소리들이 끝까지 파이팅 하라고 힘을 준다.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캠핑장에 꽉 찬 네덜란드 캠핑카들은 아침준비를 하고 우린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사이트의 오솔길은 한바퀴 휘∼ 돌면서 상쾌한 아침공기를 깊이 들여 마신다. 호텔도 있는 이 캠핑사이트 내의 호텔은 우리가 왔을 땐 이미 full이었다. 여기서 4km만 가면 루마니아 최대 관광지인 수체비차 수도원이 있다. 지금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주목받는 관광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몰다비아 지방 최대의 수체비차 수도원

수체비차 수도원 내의 성당

 오늘은 부코비나 지방에 있는 5개의 수도원을 다 둘러 볼 예정이다. 먼저 수체비차 수도원으로 갔다. 다섯개의 수도원 중에서 제일 큰 수체비차 수도원은 요새와 같은 외관으로 1582∼1584년에 건립되었으며 6m 높이에 3m 두께의 외벽이 둘러싸고 있고 가운데 프레스코화에 뒤덮인 교회가 있다. 두꺼운 외벽엔 망루가 있고 망루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있다. 넓은 마당엔 풀들이 자라있고 작은 교회와 박물관과 식당이 있는 부속건물과 우물이 있다. 중앙에 있는 교회는 루마니아 전통가옥을 닮은 외형이 커다란 버섯 같다. 지금은 수녀원으로 되어있는데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집전한다.

  11시, 종을 한참 치더니 미사가 시작됐다. 차림새로 봐서 수수한 농민들인 루마니아 정교회 신자들이 가족과 함께 왔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도 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3대, 4대가 같이 온 가족들이 더 많다. 정교회 내부의 구조는 우리의 성당과는 달리 의자가 없고 입구에서부터 신부님이 집전하는 제단까지 세 단계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희미한 불빛과 프레스코화가 뒤덮인 성당안을 꽉 메운 신자들이 서서 미사를 드린다. 수녀님들이 부르는 성가와 신부님의 제사의식이 번갈아 가며 이어지고 이 성스러운 의식은 마이크를 통해 수도원 울담을 넘어 마을까지 퍼지는 듯 했다.

  그 동안 많은 수도원을 보면서 박물관의 소장품처럼 역사의 흔적으로 인식됐던 수도원이 오늘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 속에서 깊이 숨쉬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본다. 미사는 경건했고 신자들은 진지했고 수녀님들이 부르는 성가는 천상의 소리처럼 맑았다. 나도 그들 뒤에 서서 머리를 숙였다. 나는 종교인은 아니다. 그러나 수체비차 수도원의 분위기는 종교를 뛰어넘는 경건한 삶 그 자체였다. 박제가 아닌 생명이 돌아 온 수도원의 영원성에 큰 감명을 받는다.

  12시 30분, 점심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친다. 뜰의 식탁에서 수도원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소박한 식사를 한다. 빵과 수프와 감자가 전부다. 감사기도를 드리고 먹는 사람들. 우린 수도원 박물관을 보고 지하에 있는 작은 교회로 갔다. 그곳에선 미사를 집전했던 신부님이 또다른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이 테이블에 빵과 술과 과일을 올려놓고 테이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느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았다. 수녀님들과 가족들은 서로 서로 앞사람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다. 나도 맨 뒤에서 할머니의 옷자락을 잡고서 그들이 하는 데로 따라했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물어볼 수도 없고 우두커니 서 있기도 민망해서다. 신부님은 또 수도원 밖에서 어제 봤던 것처럼 새로 구입한 차를 축성해준다. 일요일은 신부님에겐 바쁜 날이다. 검은 옷의 수녀님들은 여기저기 나무그늘에서 찾아온 사람들과 밝게 인사도 하고 어린아이를 두둥실 하늘높이 치켜 올려주기도 하고 아이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삶과 종교가 만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수녀님의 수도생활은 이렇게 삶의 냄새를 묻혀오는 동네사람들의 끈끈한 정이 원동력이 되나보다. 얽히고 설킨 삶의 진액에서 정제되는 것이 깨달음이니깐. 사람들이 빠져나간 수도원은 세월의 무게만큼 빛 바랜 프레스코화와 검은 제복 속에 가려진 수녀님들의 내면뿐인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가 깊고 그윽하게 가라앉는다. 수도원 뜰에 무성히 자란 들풀들과 우물의 청청한 물이 수도원의 생명의 샘인 듯 싱싱하다. 나는 이파리가 우리 것 보다 훨씬 큰 토끼풀 속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으려고 수도원 뜰에서 열심히 클로버 무리 속을 헤집고 다닌다. 넓은 수도원은 고요가 잔잔한 물결처럼 퍼진다.

  1503년에 세워진 아르보레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장례행렬을 만났다. 신부님과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많은 사람들이 마차 뒤를 따르는 긴 행렬을 나는 마을의 종교행산 줄 알았다. 우리 차의 전진 방향이었고 수체비차 수도원의 미사를 보면서 루마니아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린 종교에 대한 강한 인상이 남아있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했었다. 망인은 할머니. 마차가 멈춰서고 신부님은 의식을 행한다. 나는 골목에 차를 세우고 구경하는 부인들 사이에서 신부님이 행하는 의식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다. 부인들이 바실리카, 바실리카 라고 내게 말했을 때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했었다. 멀리 마을 끝쯤에 보이는 교회를 향해 마차가 다시 움직인다. 비디오 카메라에서 눈을 떼었을 때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저만치 나무 밑에 있는 남편의 낯빛이 질린 듯 하얗다. 남편은 망인인 할머니의 얼굴이 섬뜩했다며 쓰러질 듯 서있다. 그때서야 나는 엄숙한 행렬이 종교행사가 아님을 알았다.

1503년 귀족이 세운 아르보레 성당

 

 오늘은 수도원 순례를 하고 있어서 삶과 죽음의 과정 과정이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 닿는데 흐린 날씨에 시신의 얼굴까지 본 남편의 마음이 늦가을 바람처럼 스산해지나 보다. 비가 올 것 같이 구름이 몰려오는데 찾아간 아르보레 수도원은 온통 공동묘지에 둘러싸여 으스스했다. 아무도 없는 낡을대로 낡은 수도원을 도망치듯 떠났다. 넓디넓은 평원에 천둥번개가 내려치더니 무섭게 비가 쏟아진다.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드디어 비다. 무거운 차내 분위기를 바꾸려고 수다를 떤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일 거라고. 싸고 좋은 숙소를 쉽게 구할 거라고. 수다를 떨며 연기를 하고 있는 나도 마음이 스산하긴 마찬가지다.

후모로 수도원으로 가는 길엔 어느새 날이 개이고 무지개가 떴다. 변화무쌍한 날씨다. 비가 갠 싱그러운 초원이 딴 세상 같다. 구릉을 몇 개 넘으니 마을이 나타났고 소박한 농촌마을엔 닭, 오리, 거위들이 집 앞 풀밭에서 떼지어 새끼들과 모이를 주워먹고 있다. 루마니아 농촌은 어딜 가나 사람보다 말이나 가축을 훨씬 많이 본다. 길을 건너는 어미오리와 새끼오리들의 뒤뚱거리는 걸음에 차를 멈추고 재밌게 보기도 한다. 농촌의 한집 마당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벌어졌다.

  비가 그치고 피로연이 막 시작된 듯 악사들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에 흰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마당 한가운데서 아버지와 춤을 춘다. 축하객들도 끼리끼리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신부님이 축하객들에게 술과 안주거리를 권하며 마당을 돌고 있다. 아이들은 손에 꽃을 들고 신부주위에서 춤을 춘다. 우리도 길가에 차를 세우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방문객에 하객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낯선 동양인이 신부에게 축하한다며 태극선 부채와 복주머니, 장식용 매듭과 메모지 붙이는 신랑신부 인형 등을 선물을 주니 박수와 환호가 떠진다. 신부님이 술과 안주를 가져다 주신다. 귀한 손님이라고 신부 아버지가 나와 춤을 추잔다. 신부가 양보한 신부의 아버지와 내가 마당을 빙빙 돌며 춤을 춘다. 잔치는 흥이 났고 20살의 신부와 22살의 신랑은 춤을 추며 한국을 안다며 환하게 웃는다. 저녁까지 같이 있자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열댓 명의 아이들이 뛰어와 들고 있던 꽃을 내게 준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줬다. 활짝 갠 파란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후모로 수도원에 도착했을 땐 오후 5시였다. 내벽은 물론 외벽까지 프레스코화로 뒤덮인 성당의 외형은 모든 수도원이 비슷했다. 작고 아담한 후모로 수도원은 지금은 수녀님들의 수도원으로 되어 있는데 저녁 5시 성가를 부르며 드리는 미사가 막 시작됐다. 일요일의 수도원 순례로 얻는 덤치고는 너무 큰 덤이다. 관람객이 없는 고요한 수도원 뜰에서 정물화가 된 듯 수녀님들이 부르는 성가소리를 듣는다. 깊은 동굴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소리 같이 청아하고, 맑고, 성스러운 소리. 수녀님들이 부르는 천상의 소리는 한시간 동안 계속됐다. 6시가 되니 수녀님 한 분이 종탑에 올라가 종 옆에 있는 북을 친다. 우리의 북춤에서 북 가장자리를 두드리는 것과 똑같이 북을 친다. .

 

1530년에 세워진 후모르 성당

그리곤 종을 친다. 미사가 끝났다. 후모로 사원의 수녀님들의 성가미사와 북소리와 종소리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다. 죽은 듯 옛날에 묻혀있던 수도원들이 모두 깨어나 현재를 숨쉬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고 신비했다. 감사함에 절로 무릎이 끓어졌다.

1488년에 스테판 대왕이 세운 보로네츠 성당

보로네츠 서당 외벽의 아름다운 프레스코 화

 마지막 수도원 보르네츠로 떠났다. 한참 보수 중이었다. 물론 이곳도 유네스코 지정 종교문화 유산이다. 루마니아 북부 몰도비아 지방의 부코비나에 흩어져 있는 5개 수도원 순례를 마쳤다. 무엇보다도 오늘이 일요일 이어서 루마니아 사람들의 삶과 종교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다. 보탬도 뺌도 없이 있어 그대로 평화와 안식의 기점이 되는 종교가 깊은 공명을 준다. 순박한 삶의 중심에서 순박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하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이들의 종교가 왜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을까. 너무 소박해서 일까, 너무 요란스럽지 않아서 일까, 너무 비대하지 않아서 일까, 너무 목소리가 크지 않아서 일까, 있는 듯 없는 듯 삶이 곧 종교임을 알 수 있어서 일까, 너무 앞서가지 않아서 일까. 너무 편협하지 않아서 일까. 하여튼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종교가 큰 울림이 된다. 루마니아 수도원 순례를 마치며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하며 평안하게 연주하는 대가의 음악회를 다녀오는 기분이다.

  2km쯤 마을 쪽으로 나오니 호텔이 있었다. 이곳도 새로 호텔이 들어서고 있었다. 벽지로 도배하듯 온통 나무로 도배한 이 호텔도 지은지 6개월밖에 안됐다고 한다. 나무 향이 향긋한 스위트룸이 32유로다. 시즌전이어서 호텔은 한산했고 실제로 루마니아 여행을 끝낸 것같은 오늘 우린 호텔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빳빳이 풀먹인 냅킨과 식탁 위 장미꽃다발, 잘생긴 청년의 유창한 영어 구사력, 적포도주 한 병과 풀 코스의 요리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받은 저녁식사 값은 우리 돈 2만8천원이다.

  그렇게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루마니아에서 가장 편하고, 순수한 인간미를 느끼게 되다니. 白聞이不如一見이라 했지만 백문이 주는 오해와 편견이 이렇게 엄청날 줄이야. 이제 루마니아를 떠난다는 게 섭섭하기까지 하다. 대도시의 혼잡과 혼란과 범죄와 무원칙과 무질서와 삭막함과 지독한 이기주의는 어딘들 없으랴. 탐나는 목재들, 탐나는 훈훈한 인심들, 탐나는 순수함, 탐나는 유적들, 탐나는 자연, 탐나는 싼 물가, 탐나는 건강한 아이들, 탐나는 전통까지 끝이 없다. 비바 루마니아다. 루마니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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