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체아바를 거쳐 야시로

2003. 6. 2 일요일. 맑음(여행 30일째날)

보로네츠-수체아바-야시, 중행거리 214㎞, 주유량 27.78ℓ, 금액 LEI700,000-

 스위트룸의 향긋한 나무냄새가 아로마향 같아서 푹 잤다. 숲속에 묻힌 듯한 편안한 호텔을 떠나기가 아쉬웠고 사실상의 루마니아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더 아쉬웠다. 오늘은 수체아바의 성채를 보고 우리의 경주 같은 도시 야시까지 갈 예정이다. 루마니아에 대한 끈끈한 애착이 예정에도 없던 곳인 야시를 하루 더 보기로 했다. 아무리 일찍 떠나도 한 도시를 보고 나면 오후 2시가 된다. 저녁시간 전에 다른 도시에 도착하려면 바쁘고 서둘러야한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은 쫓기는 기분이다.

1388년에 페트로 무샤트 1세가 세운 대성채

스테판대왕의 기마상

 수체아바는 1565년 야시로 천도하기까지 14세기 몰다비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1388년 쌓은 거대한 요새유적과 왕궁유적과 스테판 대왕 기마상, 박물관 등이 남아있는 곳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80km 내에 우리가 본 5대 수도원들이 다 모여있어서 중세 루마니아의 역사적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의 동쪽 언덕에 있는 성채에 찾아갔을 때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나와있었다. 유적지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까지 이뻐 보인다. 페허가 된 넓은 성채유적을 뒤로하고 스테판 대왕의 기마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최근에 만들어 졌는지 혼이 들어가 있지 않는 실없이 크기만 한 동상이 흉물스러웠다.

  맥도널드에서 빅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도시에서 맥도널드가 있으면 여기가 바로 번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체아바의 맥도널드도 예외없이 눈길을 끌만한 좋은 시설로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물론이고 옥외 의자도 빈자리가 없다. 미국 자본주의 상술이 루마니아 사람들 삶속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현실은 어딜가나 맥도널드와 코카콜라가 성업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오랜 전통을 잘 지켜 온 발칸의 나라들이 빠르게 서구화되고 있는 게 왠지 씁쓸했다.

  야시(Lasi)로 떠날 때는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루마니아의 좋은 도로사정과 싼 물가와 친절한 인심 등이 좋아 우리 나라 경주나 부여 같은 곳인 야시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그러나 네 시간을 달려 6시 30분쯤에 야시에 도착했을 땐 우중충하고 구질스러운 도시의 첫인상에 실망하고 괜히 왔다는 후회도 됐다. 어찌어찌 돌다보니 중앙역까지 왔으나 호텔도 눈에 띄지 않고 더럽고 낡아빠진 골목들에 진저리가 쳐졌다. 센트름쪽으로 가기로하고 다운타운을 빙빙돌며 도시의 중심광장을 찾았다.

  별2짜리 큰 호텔이 있었다. 주차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결국 남편과 싸우고 말았다. 구석방에 짐을 푼 나는 방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 OK했다고 남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늦은 시간, 개인적으로 호텔을 찾은 동양인인 우리에겐 늘 사용하지 않은 비어있던 맨 구석방을 주었었다. 한번 순환시키는 의미인 것 같다.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복도 끝에 있는 방을 준다. 낼 돈 다 내고 이용당하는 느낌이 기분 나빴다. 오늘은 더 그렇다. 기억 자 복도를 꺾어 들어가 있는 맨 끝방이다.

  차를 세우고 남편이 호텔을 찾아 나서면 나는 도난의 염려 때문에 차에 남아 차에 둘 것과 가지고 들어갈 짐을 정리한다. 저녁밥을 해야 할 땐 쌀과 전기 불판 등 가지고 들어갈 짐이 많다. 호텔이 정해지면 정리한 짐을 들고 정해진 몇호실을 찾아가는데 긴 복도를 지나 맨 끝에 있는 방을 들어갈 때 기분이 상당히 언짢다. 미스트라에서도, 부쿠레슈티에서도 내가 나서서 방을 바꿨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심했다. 방이 텅텅 비어있는데도 구석방을 준다.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도 동양인이라고 차별을 받는 기분이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98일을 매일 치뤄야 할 일 아닌가. 호텔은 일류지만 내 기분은 최하류다. 저녁이 되면 작은 일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집이 그리워지며 울컥 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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