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루마니아와의 작별

2003. 6. 3 화요일. 맑음(여행 31일째날)

야시-콘스탄차, 주행거리 423㎞, 주유량 20.59ℓ, 금액 LEI500,000-

어제의 불쾌감을 말끔히 씻을 만큼 아침 뷔페가 훌륭했다. 맛있는 과일과 햄 등 든든히 아침을 먹으니 힘이 난다. 호텔은 야시의 중심에 있어서 걸어서 구경할 수 있었다. 어제 역 근처의 구질스런 인상과는 다르게 야시의 중심지중앙광장 주위는 역사의 도시답게 중후하고 도도했다. 우리가 갈곳의 방향과 거리를 가름하고 있는데 인상좋은 남자가 뭐 도와줄 게 없냐며 다가온다. 볼거리와 갈 곳을 보여주니 자기가 안내해 준다며 앞장선다. 그 남자의 도움으로 쉽게 야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트레이 예라르히 사원을 찾아갈 수 있었다. 약간의 사례금을 주었더니 고마워한다.

부조가 아름다운 야시의 트레이 예라르히 사원

야시의 공원 뒤로 국립극장이 보인다.

 트레이 예라르히 성당은 1639년에 건립된 사원인데 프레스코 화만 신물나게 보고 온 우리에겐 아주 신선했다. 인도의 사원이나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처럼 상아색 외벽을 빼곡이 조각한 형태가 친근하고 참신했다. 사원내부는 복원 중이었다. 루마니아의 특이한 사원과 시청사와 도청사, 국립극장, 성당 등 아름답고 역사 깊은 건물들이 이 근처에 다 모여있어서 천천히 걸으며 볼 수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제일 오래된 명문대학도 돌아보고 우린 약 500km 떨어진 루마니아의 남동쪽 국경도시 콘스탄차로 떠났다.

  동북쪽 야시에서 남동쪽 끝 흑해연안의 콘스탄차까지 가는 일은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산 넘고 물 건너야하는 루마니아를 종단하는 일이다. 그러나 루마니아에 익숙해진 우린 먼길의 부담보단 쾌청한 날씨와 맑고 깨끗한 공기와 길 좋고 이정표 확실한 루마니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휴식같은 시간이 될 것 같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떠났다. 오픈카도 이젠 완전히 한 몸이 되었다. 끝없는 초원인 초록의 바다를 달리며 내일이면 떠날 루마니아를 다시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한가로운 농촌이나 구릉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평원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은 정다운 풍경이다. 순진무구하고 소박한 농경사회의 평화로운 삶이 부러움을 넘어 반세기전의 내 어린 시절이 회상되어 그리움이 되기까지 한다. 두 대의 마치가 엇갈리는 길을 이쪽 저쪽의 자동차가 멈춰서서 기다려주고, 오리떼가 길을 건너는 동안 기다려주는 자동차들, 소떼, 칠면조, 거위, 고양이들, 닭과 병아리들이 제멋대로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 마을, 집집이 야트막한 나무담장 밑에 놓인 긴 의자에 그림처럼 앉아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바쁠 것 없고, 순리대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치열한 경쟁은 먼 얘기인 시골마을은 모두가 한폭의 그림같은 서정적 풍경이다.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자동차 보다 마차를 더 많이 봤다. 한 마리가 끄는 마차나 두 마리가 끄는 마차는 물론 새끼말을 어미말 옆에 매달아 부모말을 따라 달리며 길도 익히고 일도 배우는 세 식구가 다니는 마차도 흔히 본다. 신이나서 부모말을 따라 통통 튀며 뛰는 새끼말의 꼬리가 얼마나 귀여운지 절로 웃음이 난다. 루마니아의 시골풍경은 두고두고 내게 마음의 보약이 될 것이다. 구룽지대의 완만한 평원을 달린다.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넓게 퍼진 밀밭의 연초록빛이 나그네의 마음까지 풍성하게 여물어가게 한다. 루마니아를 어떻게 잊으랴… 이렇게 넉넉한 농촌풍경을… 그렇게 부담을 주던 루마니안데….

  날씨좋고 공기 달콤한 푸른 초원을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달린다. 여행의 참맛에 푹 빠질 수 있는 기분좋은 오후다. 소를 잔뜩 실은 트럭이 꾸물거리며 언덕을 올라간다. 시야를 가리는 답답함에 우린 트럭을 추월했다. 이젠 오픈카도 추월을 곧잘 한다. 차들이 다 오픈카 수준이어서 형님 아우님하기 좋을 뿐이다. 다시 탁트인 전원풍경. 루마니아의 전원이야말로 지상의 낙원 같아서 비바∼ 루마니아를 연발했다. 언덕 위에 있던 교통경찰이 우리 차를 세운다. 이 좋은 곳에서 왠 경찰?

  운전면허증을 보자는 것 같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리둥절하는 나에게 남편은 조금 전 트럭을 추월할 때 실선이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보다고 했다. 나는 얼른 차 트렁크에서 말보고 담배 4갑을 꺼내 경찰의 손에 쥐어주고 한국말로 말했다. 도나우 강을 건너서 콘스탄차까지 먼길을 가야하는 한국여행객이다. 열흘동안 돌아본 루마니아는 자연도 아름답고 몰다비아의 수도원도 아름답고 인심도 좋은 멋진 나라다. 좋은 인상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봐 달라고. 뭐라고 경찰이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고 표정으로 봐서 내 말을 이해한 듯해서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하고 우린 곧 그곳을 떠났다.

  만일을 위해 준비한 담배를 요긴하게 쓴 첫 번째 작은 사건이었다. 옥의 티가 되었던 97년 북유럽 여행 때의 일이 생각났다. 핀란드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로 들어와 얼마 가지 않아서 속도위반이라고 경찰이 우릴 잡았다. 원시림뿐인 산길을 열흘 넘게 빗속에 힘들게 달려온 우린 최종 목적지인 노르웨이의 노르카프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노르웨이 입국에 들떠 있던 우리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경찰이 50km로 달려야하는 산길을 74km로 달렸다고 벌금 18만원을 부과했다. 다 된 밥에 제뿌리는 어이없음과 황당함에 내내 속이 부글거리던 그때가 다시 생각났다.

  루마니아 남자들은 반듯하게 잘 생겼으면서도 선해 보인다. 아까 그 경찰도 그랬다. 그래서 아차하는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한가로운 시골길은 교통 위반할 일도 없고 단속 경찰도 없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아마 마을이 멀지 않은가 보다. 하여튼 끝까지 조심하자며 우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저만치 마을이 보인다. 마을이 나타나면 50km로 달려야한다.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마을로 진입하는데 경찰이 다시 우릴 세운다. 이번엔 잘못한 것이 없는데….

  경찰이 서류를 보자고 한다 그린카드를 보여줬다. 길 건너 파출소까지 가자고 한다. 잘못한게 없는데 재수 없이 트집이다 싶어서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파출소까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파출소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시가지에선 정속도 50km를 지키라는 계도장을 써준다. 일종의 경고장이다. 종이 한 장에 알 수 없는 말을 잔뜩 쓴 경고장을 들고 파출소를 나왔다.

  남편을 우리 차가 불가리아 차니까 주의하라고 계도장을 줬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찰이 우릴 세울 때 무전기를 들고 코리아 운운하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언덕 위에서 우리에게 말보로 담배를 받은 경찰이 마을 파출소 경찰에게 연락해서 불가리아 차를 타고 가는 코리안에게 경고장을 발부하라고 연락을 한 것 같았다. 하여튼 별 문제없이 끝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휴∼ 언제나 기분 좋을 때 마가 낀다니깐….

  벌써 오후 2시가 다 되어간다.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도나우델타 지역인 갈라치를 향해 출발했다. 도나우 지류를 끼고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드넓은 구릉지대의 풍경과는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도나우 강은 2880km나 되는 긴 강으로 루마니아와 러시아를 거쳐 흑해에서 그 긴 여정을 끝내는 강으로 갈대와 버드나무가 무성한 풀숲이 이어지는 도나우 델타지역엔 새의 종류와 어류가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도나우 델타의 갈대밭을 따라 달리며 고원도 평야도 강도 다 보며 루마니아를 종단하는 우리는 점점 더 루마니아가 좋아졌다.

  도나우강 지류까지 왔다. 그러나 강을 건너는 다리는 없고 도강용 작은 쪽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 10대를 실은 쪽배가 10분만에 강을 건넌다. 벌써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어쩌다 마을이 나타나는 시골길을 외롭게 달린다. 그러나 이런 시골길에서 도 심심찮게 우리 차를 만난다. 티코택시라 우릴 추월한다. 시에로가 다시 우릴 추월한다. 다마스까지…. 나는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에스페로를 몰고가는 젊은 여인은 멋을 한껏 냈다. 마티스도. 큰형, 작은형, 막내까지 모두 모두 제몫을 다하고 있는 우리 차들이다. 더욱 반가운 것은 기아, 대우, 현대. LG, 현대 등 우리기업의 선전간판을 보거나 번화가에 있는 가게들이 대우, 현대 등 우리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루마니아에선 대형차를 제외한 우리 차의 전 차종을 쉽게 그리고 많이 볼 수 있다. 농축산물은 도저히 경쟁력이 없는 우리로선 수출만이 살길이다. 기특한 우리 차들이 힘이 되고 용기가 되어 콘스탄차를 향해 달린다.

  콘스탄차는 도브로쟈 지방 최대의 도시고 국제무역항으로 그리스, 로마,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큰 도시다. 우린 복잡할 콘스탄차까지 가지않고 못미쳐에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콘스탄차 9km전에 캠핑사이트가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오두막에 있던 중년부인이 방이 있다며 따라오란다. 낡을대로 낡은 캠핑사이트는 꼭 패가(敗家) 같아서 달동네 판자집 같은 오두막이 몇 개있는데 바람에 날린 낙엽들이 수북히 쌓인 오두막과 오두막 사이 거미줄에 아카시아 꽃잎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다. 자지러질 듯 스산해서 그냥 나오고 싶었지만 7시가 넘은 시간에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 보다 포도주나 마시고 취해 자는 것이 훨씬 낳을 것 같아서 숙소로 정했다. 어제의 호화판 호텔과 오늘의 마구간 같은 오두막. 칠락팔락하는 여행이지만 이젠 잠자리 구하는 일에 신물이 났다. 하룻밤에 10유로라니 우리 돈 만사천원이다. 그러니 오죽하랴. 그래도 낡아빠진 오두막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이 붙어있는 오두막은 처음이다. 북유럽의 캠핑사이트에도 화장실이 있는 오두막은 없었는데. 루마니아의 마지막 밤을 어쩜 나그네 환상이 아닌 가장 루마니아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곳에서 보내게 된 지도 모른다. 체제의 변화 속에서 아직도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루마니아가 아닌가. 내일 콘스탄차를 끝으로 9박10일간의 루마니아 여행을 마친다. 포도주를 마셨는데도 잠은 오지 않고 푹 꺼진 침대 매트리스에 허리가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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