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가리아로 들어오다

2003. 6. 4 수요일. 맑음(여행 32일째날)

콘스탄차-바르나, 주행거리 186㎞, 주유량 14.05ℓ, 금액 LEI350,000-

  아침 컨디션이 찌뿌드둥한게 엉망이다. 불편한 잠자리로 뒤척였던 나를 위로라도 하듯 날씨가 화창하다. 흑해연안의 해안지대는 날씨가 맑고 태양이 빛나며 푸른 바다와 해변, 산림이나 호수가 있는 리조트 지대여서 다른 도시보다 훨씬 활기차고 생기가 넘친다. 콘스탄차의 산뜻한 아침이 루마니아와의 이별을 앞둔 섭섭한 마음을 껴앉아 준다. 해안가를 끼고 있는 다운타운을 빙빙 돌면서 주차장을 찾았다. 주차원이 있는 주차장을 찾느라고 시간이 걸렸다. 고고학 박물관 근처에 차를 세웠다. 루마니아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휴관인데 오늘은 수요일이어서 문을 열었다.

콘스탄차의 고고학 박물관

 

 콘스탄차 고고학 박물관은 유럽에서도 톱크래스의 박물관이다. 10시에 입장해서 2시간동안 각 시대별로 전시되어있는 출토품들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이 자랑하는 토미스 (Tomis) 유물들은 일층 보물관에 전시하고 있었는데 2∼3세기에 만든 머리는 양, 몸은 뱀, 꼬리는 사자인 "그리코의 큰뱀"은 보존상태가 완벽해서 생생한 생동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토미스 도시의 수호신인 '운명의 여신'상도 정교하고 육감적이어서 토미스 유물의 대표라 자부할만했다.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인이 이 땅에 요새를 쌓고 이 도시를 토미스(Tomis)라 했었다. 시내 곳곳에도 토미스 유적이 많이 남아있었고 번성했던 로마 유적도 상당히 많았다.

콘스탄차는 루마니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의 면모를 면면히 유지하고 있어서 기품 있는 도시로 손색이 없었다.

  우린 잘 가꾼 해안가 가로수 밑에 앉아 흑해의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루마니아의 마지막 도시 콘스탄차의 이미지를 마음에 담았다. 밝고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의 루마니아사람들. 서둘 것 없는 그들의 여유가 열흘동안 루마니아를 돌아보는데 큰 배려가 됐음에 감사하면서. 남루한 차림의 집시가 아이를 네 다섯 명이나 데리고 와 구걸을 한다. 동전 몇 개를 줬다. 어딜가나 구걸하는 집시들이 빛과 그림자처럼 도시를 어둡고 칙칙하게 한다.

 우린 거리를 걸으며 이 도시의 유일한 이슬람 모스크도 보고 토미스 대주교 사원의 아름다운 벽화도 구경하고 그리스시대 주거지 유적 등을 둘러보면서 다운타운까지 왔다. 루마니아식 피자집이 있었다. 콜라와 피자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1시 45분에 그대로 떠나기가 아쉬워 해안을 따라 빙빙돌며 해안가 풍경과 그외의 콘스탄차 풍경을 비디오에 담고 국경을 향해 출발했다.

 한시간 이상을 달려 국경에 도착했을 땐 오후 3시. 30분만에 루마니아 출국과 불가리아 입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불가리아로 들어왔다. 불가리아는 세 번째 입국이다.

 

콘스탄차의 성당

  BG 번호판을 달고 그리스와 루마니아를 달릴 때와는 달리 내 집에 온 듯 온몸의 근육이 풀린다. BG 차가 BG로 돌아온 이 편안함. 발칸지역 여행을 계획하면서 편의상 불가리아를 기점으로 삼았을 뿐 다른 이유는 없는 불가리안데 마치 제집에 온 듯 마음이 놓이니 여행의 긴장이 얼마나 날 짓눌렀었는지 눈물겹다.

차를 세우고 지금 막 떠나온 루마니아 땅을 바라본다. 9박 10일간의 루마니아 여행.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던 나라였던가.  고물차인 로바를 보고 절망했던 한 달 전 일도 어제 같다. 그러나 지금은∼. 훈훈한 인심이 있고, 물가 싸고,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수도원 등 볼거리가 많고, 아름다운 자연이 무궁한 나라 루마니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루마니아여 안녕….

  나그네는 또 떠나야 한다. 흑해연안의 휴양도시 바르나(Varna)까지 약153km. 불가리아는 국민소득이 루마니아보다 조금 높다고 하나 전체적인 인상은 루마니아가 나은 것 같다. 도로사정은 말 할 것도 없고 사는 것도 그래 보인다. 다시 흥부네 아이들 누더기 옷 같은 불가리아 길을 덜컹거리며 달린다. 릴라수도원과 멜릭마을이 있는 남서쪽으로 출국해서 그리스로 갔던 우린 돌고 돌며 북쪽으로 올라가 루마니아를 돌아보고 다시 불가리아 동북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동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주류천하라는 말처럼 고물차를 몰고 발칸반도를 헤집고 다닌 우린 6월 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갈 때까지 바르나, 카잔륵을 거쳐 소피아로 갈 여정만 남았다. 제 1차 여행이 끝나간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다짐으로바르나로 가고 있다.

  흑해연안은 온난한 기후와 뛰어난 풍광으로 불가리아가 자랑하는 리조트지대다. 여기가 동유럽인가 하고 생각될 정도로 시설좋은 백아의 호텔과 별장, 방가로 등이 있는 리조트 지대의 중심도시. 그래서 '흑해의 여왕' 이라고 부르는 바르나에서 발칸지역 여행을 마감하는 기분으로 하루쯤 푹 쉬려고 한다. 까맣게 탄 마른 얼굴하며 피부가 벗겨져 희끗희끗해진 팔뚝하며 꺼칠해진 피부가 10년은 늙어 보인다. 그동안의 치열함의 흔적이리라. 거울로 얼굴을 보며 떠돌이의 설움이랄까, 연민이랄까 서러운 감정이 밀려와 콧날이 시큰해진다. 긴장이 풀어진 마음에 응석이 묻어나나 보다. 나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은 금물이라고 다잡으며 관성의 법칙처럼 오픈카의 소음 속에서 바르나를 향한다.

  이젠 눈에 익어 낯설지 않은 밀이 익어 가는 풍경은 불가리아의 풍요를 약속하는 가능성처럼 보인다. 조각보 같은 농토를 보아온 우린 지평선이 가물가물한 끝없는 평원에 그저 부러움만 커간다. 열흘만에 보는 이정표의 키릴문자는 다시 헷갈리고 바르나를 찾아가는 긴장 풀린 몸이 자꾸 꾸벅거린다. 2시간 이상을 달렸다. 구릉을 넘으니 바다가 보이고 해안가를 따라 큰 도시가 나타났다. 바르나까지 왔나보다. 바르나까지 오면서 난 멋진 상상을 했다. 해안가를 따라있는 환상의 리조트시설들을 보면서 가장 번화하고 멋진 호텔을 골라 투숙하고 제일 비싼 음식을 먹고 사우나와 마사지로 피로를 풀고 포근하고 안락한 넓은 방 창밖으로 흑해의 출렁이는 바다를 보며 일몰이나 일출을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가고 바르나 시내로 들어와 버린 우린 또 통행세를 지불하며 대도시의 혼잡 속을 헤매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 봐도 리조트 분위기는 아니다. 정확한 정보없는 상상은 언제나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휴양지를 물으니 20km를 다시 북상하란다. 찾고 헤매고에 신물이 난 우린 바르나 기차역 근처에 새로 지은 깨끗한 호텔을 발견하고 방을 정하고 근처 주유소의 식당에서 맥주와 샌드위치로 식사를 하고 흑해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꿈을 꾸길 바라며 일찍 하루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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