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계곡 카잔륵을 향해가다.

2003. 6. 5 목요일. 맑음(여행 33일째날)

바르나-카잔룩, 주행거리 323㎞, 주유량 32.81ℓ, 금액 LEV42.00-

아침에 흑해의 일출을 보려고 5시30분에 깼다. 그러나 안개가 잔뜩 껴서 일출보기를 포기하고 며칠 후 독일에서 시작되는 중부, 동부 유럽 한 달간의 제2차 여행계획표를 보면서 아침식사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항구에 면한 기차역은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없이 잠잠하고 한산한 역사위로 갈매기들이 날아올라 꽥꽥 거리며 날고 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연기를 뿜으며 움직일 채비를 하고 우린 해변 가에서 쉬기로 했던 계획이 어긋난 오늘은 일찍 바르나를 떠나 카잔륵으로 가기로 했다. 먼길 갈 하루여서 뷔페식 아침식사를 잔뜩 먹었다. 동면을 준비하는 곰처럼. 그리고 서울로 전화를 해서 그간의 소식을 전하고 또 서울 소식을 듣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바르나는 불가리아 제3의 도시로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인이 이주하면서 도시가 형성된 곳으로 그 후 로마인에 의해 요새, 극장, 목욕탕 등이 건설되었는데 지금도 그 일부가 남아있다. 현재는 무역항인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시내 중심가로 나왔다.

바르나의 성당, 건너 편은 공원이다.

 

성당과 시계탑과 로마시대의 목욕탕 유적 등을 겉에서만 봤다. 비슷비슷한 유적들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이젠 식상이 났다. 그러나 중앙광장근처의 바르나의 아침풍경이 자유분방해서 개방적인 도시 분위기가 활력처럼 느껴진다. 출근하는 젊은이들의 차림새가 세련됐고 숲이 많은 도시의 작은 공원엔 아침인데도 연인들이 속삭인다. 선글라스 노점상들이 각가지 선글라스를 진열해 놓고 팔고 꽃을 들고 가는 아가씨들이 걸음걸이가 경쾌하다. 도시의 흐름도 여유롭다. 루마니아보다 위도가 낮아선지 날씨가 많이 덥다.

10시가 넘었다. 지금부터 부르가스를 경유해 카잔륵까지 300km 이상을 가야한다. 불가리아 도로사정으로 봐서 하루종일 걸릴 것 같다.

 흑해연안 남부 리조트의 중심도시며 불가리아 제일의 무역항인 부르가스를 향해 E773번, 불가리아 9번 도로를 타고 달린다. 6월 초순의 연하고 부드러운 초록물결은 한없이 푸근하고 싱그러워 해풍과 햇빛에 반짝이며 살랑인다. 푸른 밀밭은 지평선에 닿아있고 포도밭은 아득히 산밑까지 끝이 없다. 불가리아 포도주의 산뜻한 맛과 향은 비옥한 평야와 풍부한 햇빛과 좋은 물이 빗어낸 작품임을 이젠 알 수 있다. 맛이 뛰어난 불가리아산 포도주를 우리 나라도 수입을 하고 있다. 이렇게 기름진 땅에선 무언들 잘 자라지 않을까. 농약냄새가 아닌 풋풋한 풀내음이 좋다. 눈도 마음도 시원한 불가리아 평원을 우리는 줄기차게 달린다.

  부르가스로 가는 흑해연안의 도로변 풍치좋은 곳엔 리조트 시설과 호텔이 들어서고 있었다. 때묻지 않은 자연과 좋은 기후 등 서유럽 못지 않은 천혜의 조건을 가진 흑해연안이 불가리아가 사회주의의 옷을 벗은지 10여 년만에 EU국가 가입을 앞두고 변화하고 있었다. 서유럽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곳으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꼽힌다. 깊은 문화적 향기와 자연조건과 싼 물가 등이 이들 나라의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옛날에 잊어버린 훈훈한 인간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편안하고 정답게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불가리아 최대의 볼거리다.

 프리모 마을 모래사장에 차를 세웠다. 이곳도 방가로를 짓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수영하는 사람보다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흑해와의 이별이 아쉬워 고운 모래도 밟아보고 흑해바다에 발도 담그며 어제 의 깨진 리조트 환상의 실망과 섭섭함을 달랜다. 나도 옷을 벗고 모래사장에 벌렁 드러누웠다. 독일서 왔다는 가족이 일본사람이냐고 묻는다. 코리안이라고 말했다. 바닷물을 퍼가던 공사장 할머니가 내가 벗어 논 빨간색 랩 스커트를 보고 뭐라고 한다. 표정으로 봐서 색깔이 곱다는 뜻인가 보다. 아까 차를 세울 때도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었다.

 

프리모 마을의 흑해 변

   빠진 앞니를 드러내고 순박하게 웃는 할머니에게 누릉지 사탕 한 봉지를 드리며 나도 할머니를 닮은 웃음을 웃었다. 기념으로 가져가려고 흑해의 흰모래를 필림통에 조금 담았다. 그리고 우린 흑해와 안녕∼을 했다.

  부르가스를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도심으로 진입을 했다. 기대했던 것 보다 도시는 멋도 없고 활기도 없고 획일적인 구조가 지루했다. 이리저리 시내를 돌아서 소피아 방향인 6번 도로를 타고 다시 빠져 나왔다. 이젠 장미계곡인 카잔륵까지 오직 달리는 일만 남았다. 3시간은 걸릴 것이다. 카진륵은 6월 첫 주에 열리는 장미축제가 유명하고 불가리아 독립영웅 바잘 레프스키의 고향이기도 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카잔륵으로 가는 길은 평원이 끝나고 산지로 들어서면서 점점 내륙으로 들어간다. 그리스여행을 마치고 불가리아로 들어와 벨리코타르노보로 갈 때 카잔륵을 지났었다. 그때 산을 넘던 일을 떠올리며 주행의 지루함을 달랜다. 문맹이 따로 없다. 카잔륵이란 키릴문자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메모지에 써 놓고 이정표를 확인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아침 10에 바르나를 떠나서 오후 4시쯤에 카잔륵에 도착했다. 카잔륵 호텔에 투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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