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다

2003. 6. 9 월요일. 맑음(여행 37일째날)

소피아-프랑크푸르트

  불가리아를 떠나는 섭섭함과 독일로 돌아간다는 흥분이 새벽잠 없는 나를 꼭두새벽에 일어나게 했다. 아침 9시 30분 출발하는 비행긴데 6시전에 떠날 준비를 끝냈다. 한달 전 소피아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나갔던 대로변으로 나갔다. 여전히 월요일 아침의 분주함이 시작되고 있었다. 꽃집도, 가두 책방도, 신문좌판도, 간이 빵집도, 복권판매대 주인도 노점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검둥이를 비롯한 4마리의 떠돌이 개들도 변함없이 거리를 지키고 있고 시내로 향하는 버스나 트램은 사람들로 만원이고 낡을대로 낡은 택시는 승객을 싣고 잘도 달린다. 정류장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도 일터를 향해 곧 사라지고 하릴없이 배회하는 노인 옆으로 섹시하고 매력적인 아가씨가 탄력있게 걸어간다. 한달 전 낯설던 거리 풍경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 한 달을 떠돌며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나도 동화되어 버렸다.

  공항에 도착하니 7시 40분. 지코투어(www.jikotour.com) 민사장의 수고에 감사하며 우린 서울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발칸에어 체크인이 시작됐다. 여직원이 우리 짐이 오버됐다며 트집을 잡는다. hand carry하는 것까지 다 달아야한다고 한다. 결국 150불 오버차지를 했다. 발칸에어도 동양인을 차별했다. 자기들도 백인이라고…. 호텔에서 받던 차별대우를 공항에서 흠뻑 당하고 말았다. 세관 통과 때도 또 시비가 붙었다. 23년째 여행 때 갖고 다니는 5cm도 안 되는 작은 가위를 빼앗겼다. 프랑크푸르트 비행장에서 돌려줘야 하는데 꿀컥한다. 비행기안의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만 덩그러니 맨 뒷좌석에 앉았다. 가운데 좌석은 텅 비었는데도. 우리가 젊은이였다면 끝까지 차별에 항의했을 거다. 그러나 이 나이에…. 기분좋은 여행의 뒷맛이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이야. 유종의 미와 호사다마란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어쩌랴. 큰마음으로 하늘을 봐야지….

  2시간 후 프랑크푸르트 마임공항에 도착했다. 한시간 시차니 여기는 아침 10시 30분. 공항 허츠 사무실로 갔다. 서울서 예약을 했음에도 컴팩트형 차를 인수하는데 2시간 가깝게 걸렸다. 소위 단골손님인 골드카드회원이 아니어서 우리가 원하는 차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에어컨이 있는 은색 Ford focus는 5000km 뛴 차다. 차를 인수하고 우린 공항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내가 차고에서 짐 정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청사 밖으로 나가 차가 빠지는 방향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공항에서 Kim호텔까지 찾아가는 일이 우선 남편이 할 일이다. 복잡한 프랑크푸르트 지도를 보고 Kim호텔 위치를 확인하고 머리 속에 타고 갈 도로번호와 명칭, 빠져나갈 Exit명 등 지도를 그린 후 공항을 출발했다. 오후 3시였다. 김사장은 공항에서 호텔까지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5번 카셀 방향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빠져나오는 길은 놓쳐 661도로로 진입해서 돌아오고 다시 빠지고 하며 한시간 반을 헤맨 끝에 Kim호텔에 도착했다. 한달 만에 우릴 본 김사장은 남편보고 "이발하시겠습니까"였다.

  저녁상이 환상이다. 육개장에 총각김치, 겉절이, 콩나물, 상추와 오이무침, 김치적, 오징어 젓갈. 먹어두 먹어두 끝이 없다. 36일 만에 먹는 한식이 꿀맛이다. 육개장 국물에 익사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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