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그네가 되어 제2차 여행 시작하다

2003년 6월 10일 맑음(여행 38일째날)

 

 

 프랑크푸르트-볼두히, 주행거리 548㎞, 주유량 32.71ℓ, 금액 EUR35-

 새벽 5신데 날이 훤하게 밝았다. 오늘부터 50여일간 다시 중?동부유럽 여행이 시작된다. 46일간의 발칸여행이 너무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이불 속에서 언뜻 했다. 관광이 아닌 긴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치열한 현실이다. 어제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은빛 포커스를 렌트하여 호텔까지 올 때 길을 놓쳐 얼마나 헤맸었나. 무엇보다도 매일 밤 숙소를 찾아 헤매는 일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와 삶의 에너지가 된 여행의 부가가치는 파도파도 고갈되지 않은 노다지 광산이 아닌가. 노다지 유전이 아닌가. 그래서 늙은 톰소여는 끝없이 가출과 도전과 모험을 시도한다. 우린 어제 짐을 정리해서 김사장에게 맡겼고 가져 갈 짐은 모두 차에 실어놓았다. 제 2차 여행도 무사하길 기도한다. 


 아침식사를 본능적으로 많이 먹는다. 한 달 후에나 맛볼 김치와 된장국 아닌가. 몸조심하라는 김사장 내외분의 배웅을 받으며 체코 프라하를 향해 출발했다. 프랑크푸르트의 6월은 구름 한 점 없이 산뜻한 초여름 날씨다. 녹음 짙고, 도로사정 좋고, 승차감 좋은 은빛 포드 포커스. 에어컨바람 시원한 황송하리만치 안락한 차. 귀족이 된 듯하다. 어제 공항에서 헛츠 직원이 제규어를 권했는데 융단까지 깔린 제규어를 빌렸다면 황제가 된 기분이었겠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를 달리던 폐차직전의 똥차 로바의 구차함이 구름처럼 흩어진다. 무제한 질주의 아우토반을 세계 유수의 명차들이 잘 빠진 몸매를 자랑하듯 140km이상으로 달린다. 어제까지 눈에 익었던 발칸반도의 손댄 흔적 없는 자연이 아닌 잘 정리된 깔끔한 풍경들이 이곳은 다른 세상임을 말하고 있다. 독일은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이다.


 하이델베르크 56km. 이정표가 산뜻하다. 20년 전 9월, 첫 세계여행 때 왔던 하이델베르크.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 세월이지만 그때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최첨단 독일 아우토반 6번 도로를 따라 프라하 방향으로 기분좋게 질주한지 어느새 5시간. 출발할 때의 사기 충천했던 기분은 시들해지고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루마니아나 불가리아의 도로는 사람 사는 풍경과 사람냄새가 늘 가까이 있어서 마차나 가축들 때문에 길을 비껴주기도 하고 덩더쿵 쿵더쿵 널뛰듯 하는 오픈카 로바의 흔들림 속에서 저렇게들 살고 있구나 하는 끄덕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 아우토반은 도로변에 녹색 커튼이 짙게 드리워져있고 저 멀리로 푸른 경작지나 빨간 뾰족지붕만이 보이는 그저 바라볼 뿐인 감동없는 풍경이 지루했다. 담 높은 부잣집에 초대받은 기분이랄까? 정이 안가는 덩그렇게 크기만 한 집 같다고나 할까? 삶의 호기심이 발동하던 발칸의 나라들이 벌써 그리워진다.


 체코 국경 10km전까지 왔다. 발칸여행에서 동양인이라 불이익을 당한 일이 떠올라 무의식  중에 경계심이 발동한다. 그러나 두 나라 체크포인트의 출입국관리요원이 패스포드를 보고 ‘코리아 OK’ 통과사인을 한 시간은 채 1분도 안됐다. 정말 이젠 지구촌이다. 오후 3시 36분. 6시간 반만에 체코에 도착했다. 기분이 새롭다. 5유로에 고속도로 통행스티커를 사서 붙이고 플젠 방향으로 향했다. 국경엔 체코에서 독일로 입국하려는 화물차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물동량이 엄청난 EU국가간의 활발한 경제교류에 놀란다.


 국경근처 주유소에서 200불을 환전했다. 무뚝뚝한 두 젊은이가 부지하세월로 시간을 끈다. 달러에 대한 민감증으로 기계에 넣고 확인하고 육안으로 확인하고 그리고도 미심쩍은지 또 살핀다. 최종적으로 우리 패스포드를 요리조리보고 기록한 후에야 체코 돈을 내준다. 빌어먹을… 서울서 몽땅 유로로 바꿔왔으면 좋왔을걸… 어딜가나 유로 선호여서 달러 쓰기가 불편한데 환율까지 자꾸 떨어지니… 정보가 돈인데… 주유소 한쪽 편의점에서 빵과 소시지를 사고 마스터스 소스를 바르는데 어이없게도 소스 값을 따로 내란다. 아직도 무늬만 자본주인가?!


 오늘은 여유있게 캠핑사이트를 찾아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시골길은 10km쯤 가니 숲속에 캠핑사이트가 있었다. 여기선 캠핑사이트를 방가로라고 한다. 방가로에 있던 여학생들이 영어를 못하는 리셉션의 할머니를 대신해서 통역도 해주고 숙박부에 기록도 해준다. 학생들이 패스포드를 보고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할머니는 그런 나라는 잘 모르는데 하여튼 우리 방가로에 처음 온 손님이라고 한다. 캠핑사이트의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한국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온 우리 여행 얘기를 듣고 놀라워한다. 체코 시골 청소년들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동양인인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른다. 저 나이 때의 호기심을 누가 말린담....


 여기는 프라하 67km 전 Volduchy라는 곳이다. 16호실 오두막 집. 구름은 쭉쭉 뻗은 전나무 위에 걸려있고 너른 마당에선 남학생들이 족구를 한다. 우린 자르르 기름이 흐르게 지은 쌀밥과 천하일품이라는 체코 Gambrinus 맥주를 마시며 제2차 여행첫날의 안착을 자축했다.  우린 나무 밑 테이블에 앉아서 일기를 쓴다. 체코에서의 첫 밤이 숲 사이로 조용히 찾아오고 있었다.

오늘의 주행거리 : 548km  총 주행거리 : 6347km  방가로 일박비 : 35유로

[목 차]  [다음날 2003년 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