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프라하로 간다 

2003. 6. 11. 수요일, 흐림(여행 39일째날)

 

 

 볼두치-프라하, 주행거리 99㎞

  아침 10시에 방가로를 출발했다. 하룻밤 자연 속에서 푹 쉰 몸 컨디션이 거뜬해서 기분까지 짱이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시골마을 풍경을 보면서 이런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이들도 인생을 고해라고 생각할까? 사람들의 편안한 표정을 보며 모두 연극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싶어진다. 지구촌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만큼 다양하고 색다르다. 슈퍼마켓에서 물과 과일 그리고 맛좋기로 소문난 햄 프라시카슝카를 듬뿍 샀다. 우린 14C에 건축된 왕의 별장으로 사용된 카를슈타인 성으로 간다.


 프라하는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다. 카를슈타인 성으로 가는 길 시골풍경도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이 아름답다. 구릉을 이룬 푸른 초원, 밭을 둘러싼 나무숲, 아이보리색 벽과 어울린 빨간 뾰족지붕 그리고 파란하늘. 깔끔한 풍경이 투명하고 맑다.


 정동진역을 닮은 카를슈타인 기차역은 성으로 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흐렸던 날씨도 개이고 구름을 뚫고 비취는 햇살에 기념품가게에 진열된 형형색색 크리스털 인형들이 반짝인다.  크리스털 인형보다 더 예쁘게 꾸민 세련된 가게들이 나그네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적감각으로 포장한 상술이 뛰어나다. 위풍당당한 카를슈타인 성이 절벽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롤 4세가 14세기에 세운 카를슈타인 성

  

 카를슈타인 성으로 올라 가는 길

 성 밑까지 숨가쁘게 올라온 우린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숨을 돌린다. 활기 넘친 젊은이들이 지나간다. 꼬마를 무등태운 젊은 아빠도 지나간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도 지나간다. 어쩌다 동양인 단체 관광객들도 지나간다. 휠체어를 탄 노약자도 지나간다. 검은 피부의 수도사들도 지나간다. 빨개진 볼에 땀을 연신 닦으며 선생님을 따라 초등학생도 지나간다. 성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 속에 끼어 우리도 다시 걷기 시작한다.  


 영어 안내팀은 오후 1시 30분에있다. 우린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나그네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 때가 많다. 몸은 여기에, 마음은 저기에다. 프라하 입성을 앞두고 호락호락하지 않을 유스호스텔 찾아가기가 신경 쓰여 현재에 느긋하게 머물지 못한다. 올 때 깊은 산마루를 몇 개나 넘어왔기 때문에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다. 


 45분 동안 고성을 돌아보고 나왔다. 몇백 년을 버텨온 고성은 오랜 세월을 견디어온 흔적들을 간직한 채 작은 왕궁으로서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우리의 궁궐인 경복궁이나 창덕궁과는 다르게 깍아지른 절벽 등 범접하기 어려운 곳에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지은 고성. 왕권의 과시가 하늘을 찌를 듯 오만하다. 장대한 자연 속의 한 점 인간의 허망한 욕구가, 질긴 집착이, 그럴수록 뜬구름 같은 인생임을 확인하게되는 모순처럼 그렇게 고성들은 홀로 우뚝하다. 


 프라하로 출발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다 뜻밖에 프라하 37km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되돌아나가기보다 화살표 방향이 좋을 것 같아서 가는 길을 다시 스터디한 다음 노트와 확대경과 자료책과 비디오 카메라까지 무릎에 놓고 한판결전을 벌릴 태세로 프라하로 떠났다.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한 해직녘 프라하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잔뜩 긴장하고 운전하는 남편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마구 탄성을 지를 뻔했다. 숲과 강과 다리와 빨간 지붕과 아이보리색 집들과 프라하 성과 첨탑이 어우러진 프라하는 넋을 잃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시내로 진입하면서 남편과 나는 짧은 스타카토로 입을 맞춘다.

“철길 지났지”

“응”

“다음은 아주 복잡한 인터체인지야”

“알아”

“인터체인지 지났으니 센트름 쪽으로 꺾어져야해”

”그렇지“

”이제부턴 철길 지나고 다리 건너는 거 잊지 마” 

“응”

“1번 다리 지났어”

“다시 2번 다리 지날 거구”

“건너자마자 우회전”

“다리 끝에 신호등이 있어”

“잘 세면서 가. 놓치지 말구”

“알았어”

“하나, 둘, 세번째 신호등 지났어”

“다음 네 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


입으론 열심히 남편과 입을 맞추고 눈은 아름다운 프라하를 감상한다. 거리는 퇴근하는 차들로 붐볐고 우리의 은색 포커스도 유스호스텔을 찾아 달린다.

“여기서 우회전”

“그래”

“이젠 됐어 쭉 가면 돼”

“저기 한국식당 간판이 보이네”

저 만큼에 유스호스텔 간판이 보인다. 휴~ 기적처럼 실수 없이 한번에 찾아왔다. 제2차 여행은 시작부터 행운이 따라준다. 지독한 통행세 없이 대도시에 안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호~ 성공이다.


 뒷골목에 차를 세웠다. 남편은 유스호스텔로 들어갔고 나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흥얼거리며 짐을 정리한다. 프라하 입성을 축하하는 조촐한 만찬(?)이라도 열어야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긴다. 드디어 프라하에 왔구나! 들뜬 기분으로 고색창연한 건물들을 죽 둘러본다. 저 만치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남편이 온다. 무슨 일일까?


 순전히 우리의 실수였다. 이곳은 가족실은 없고 5~6명이 같이 자는 도미토리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깜빡했다. 예약취소는 안되고 반드시 하룻밤은 자야한다고 리셉션의 키다리 남자가 내뱉듯이 말했다. 남편은 2층, 나는 3층이라고. 이 난감한 일을 어떡한담. 배낭여행 학생들이 들락거리는 유스호스텔에서 늙은 톰소여(?)들이 엉거주춤하고 있기도 민망했다. 우선 주차를 하고, 호텔을 찾아보던지 그냥 도미토리에서 자든지 결정할 일이다. 키다리 청년은 버스터미널에 가면 공영주차장이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 백조의 물밑 발놀림처럼 여행은 매일 매일이, 아니 매시간이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 더럽다.


 버스터미널 공영주차장에 3일간의 주차비를 지불하고 차를 맞긴 우린 근처에서 숙소를 찾아봤다. 53유로의 펜션이 있었다. 방을 보여달라는 말에 사무실 아가씨는 단칼에 NO다. 그리곤 사진을 내밀며 보란다. 아가씨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다급한 마음에 우린 펜션을 예약하고 세면도구만 달랑 들고 지하철로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야외카페에서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며 정연하게 들어선 건물들의 유연한 실루엣을 무감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워지길 기다리면서....


 프라하 시민들이 저녁식사 후 공원으로 산책을 나온다. 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사람들, 연인들의 포옹,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 개들의 재롱,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분수의 물줄기처럼 시원하다. 밤이되길 기다리는 우리도 프라하 시민인 듯 공원벤치에 앉아있다. 아파트에 불이 켜지고 어둠이 도시를 덮어가는 9시 반쯤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아직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은 304호실. 6개의 침대 중 내 자리는 창가였다. 죄라곤 나이 먹은 것 밖에 없는데 올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쑥스럽고 창피했다. 남학생 방을 지나 복도 끝에 있는 세면장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돌아와 얼른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갔다. 잠은 오지 않고 후덥지근한 이불 속에서 이리저리 뒤척인다. 학생들이 들어오는 소리에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하지 않았다.

오늘의 주행거리 : 99km   유스호스텔 일박 : 720코루나( 약 3만4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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