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유스호스텔을 탈출하다

2003년 6월 12일 목요일 맑음. (여행 40일째날)

프라하

 새벽에 깼다. 침대마다 학생들이 골아 떨어졌다. 이불을 둘둘 말아 다리에 끼고 자는  학생들의 발이랑 팔뚝이랑이 말이 아니다. 퉁퉁 부은 발도 그렇고 까맣게 탄 정강이와 흰 허벅지가 볼만하다. 벌개진 얼굴 위에 흩어진 긴 금발이 까칠하고 피곤에 지쳐 끙끙대며 잠꼬대까지 한다. 배낭을 메고 어디를 얼만큼이나 헤맸는지 엎어가도 모를 지경이다. 저 험한 꼴들을 하고 아침이면 또 어디론가 흩어져가겠지. 못 말리는 방랑벽들이여... 나는 얼른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래층으로 도망치듯 내려왔다. 그리고 현관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왔다. 밤새 이불 속에서 땀을 흘리며 뒤척였던 내 마음을 아는지 새벽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아~ 이 해방감이여… 들개처럼 어둑한 프라하 골목을 이리저리 쏘다닌다.


 아침 7시. 아침식사 시간이다. 빵과 쨈과 커피와 주스와 우유 그리고 약간의 햄이 전부인 식사. 학생들 속에서 천연기념물 같은 우리 내외가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한 식사를 한다. 부드러운 스크램블도 과일 한쪽도 없는 식사를 우격다짐으로 쑤셔넣고 후닥닥 일어나 식당문을 나서는데 사르르 배가 아프다. 그러면 그렇지. 결국 화장실에서 다 쏟아내고서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스호스텔을 나왔다. 대도시 진입통행세(?)를 안낸 대가로 지독한 속앓이를 한 프라하 첫 밤의 해프닝이 막을 내렸다. 어제 예약한 펜션으로 갔다, 체코에선 펜션을 아파트라 했고 6층에 있는 아파트는 깨끗했고 전망도 좋았다. 한국산 커피를 한잔 가득히 타 마시며 속을 푼다.


‘프라하의 봄’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곳. 6.25 전쟁 때 납북됐던 한국 여성이 프라하에 정착해 살면서 조각가가 되어 체코인 남편과 함께 돌아와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브론즈 조각작품전을 열었을 때의 감동. 내가 좋아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 태어나고 살았던 곳. 이런 연유로 프라하는 내마음 가까이에 있었다. 우린 프라하 성으로 가는 트램을 탔다.

  

 프라하 성의 대통령 궁 정문

 

 프라하 성안의 성 비토 교회

 14세기 블타바 강 언덕에 쌓은 고딕양식의 성벽에 둘러싸인 프라하 성. 유명한 성 비토교회와 성에서 조망하는 프라하 정경이 아름답다는 프라하 성이 우리의 첫 볼거리다. 성 정문 오른쪽 대통령 관저 앞에 수백 명의 관광객이 모여있다. 무슨 구경거리가 있나보다. 호기심에 우리도 군중 속에 묻혔다. 사열준비를 하는 군인들과 중개방송요원들, 권총을 찬 경호원들이 뙤약볕 아래서 바쁘다. 스위스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란다. 곧 사이 카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한 스위스 대통령을 궁 앞에서 기다리던 체코 대통령이 영접하고 간단한 사열식을 마친 두 나라 정상이 모여있는 관광객을 향해 손을 흔든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관광객들. 손님도, 맞이하는 주인도, 지켜보는 관중도 모두가 보통사람들의 만남처럼 수수하고 유난하지 않다. ‘진정한 강함은 부드러움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EU 국사들의 정치적 성숙을 볼 수 있는 두 정상의 만남이 인상깊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체코를 상징하는 성 비토 대성당이 보는이를 압도한다. 1344년에 시작해서 1921년에 완성되었다는 장중한 대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래스가 햇빛에 형형한 색으로 빛난다. 성안에는 성 이르지 교회, 왕궁 미술관, 옛 궁전, 보물관, 정원, 탑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 무진장 많은 볼거리 보다 더 한 볼거리는 세계각국에서 온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체코의 관광수입은 얼마나 될까? GNP의 몇%를 차지할까? 체코의 노다지는 바로 전쟁이 비껴간 오랜 역사의 도시 프라하이다. 프라하의 무궁무진한 부가가치가 부러웠다. 오백년 역사의 도시 서울. 서울은 이방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제멋대로 지어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아파트에 갇혀버린 멋 잃고, 빛 잃은 도시 서울이 안타깝다. 난개발로 마구 파헤쳐진 훼손된 자연이 눈물겹다. 그나마 경복궁이 복원되어 작은 위안이 되려나…. 

 

 프라하 성에서 가장 오래된 성 이르지 교회

 

 프라하 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성내 흐라트차니 광장의 발코니에 서니 로댕이 ‘북쪽의 로마’라고 극찬한 아름다운 프라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프라하를 내려다보며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런 옛 도시 프라하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임에 새삼 수긍이 간다. 11세기서부터 19세기까지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인류의 자랑스러운 자산인 프라하다.  

 

 프라하 성벽 안의 황금 소로

 

 황금 소로 22번지에 있는 카프카가 살던 집

프라하 성에서 황금소로로 내려왔다. 16세기 황금세공사와 성의 일꾼들이 살았다는 황금소로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프라하 시내에 이르는데 앙증맞고 아기자기한 작은 집들이 성벽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금도 16세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황금소로엔 키다리 프란츠 카프카가 허리를 굽혀 드나들었다는 22번지 작은 집이 있다. 1916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6개월간 살았다는 이 집은 여동생의 배려로 카프카가 여기서 집필을 하고 밤이면 구시가에 있는 하숙집으로 돌아가곤 했다고 한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집 앞에 주저앉아 사진을 찍는다. 나도 이해하기 어렵던 카프카의 소설 ‘城’을 떠올리며 22번지 집 앞에서 사진 한 장 짤깍.


 중세의 감옥이었던 성의 한쪽 끝은 지금은 민속박물관이 되어 중세의 생활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황금소로의 집들은 선물가게, 서점, 레코드 가게, 공방 등 개성있는 상점이 되어 찾는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황금소로는 입장료를 따로 받지만 카프카라는 인기상품이 있어서 관광객들이 꼭 찾는다. 정감 넘치는 황금소로를 돌아보며 내 인생의 황금소로엔 어떤 풍경들이 있을까? 어떤 그림들이 그려질까? 어떤 얘기가 들여올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세상을 떠돌며 머물며 본 많은 얘기들과 내가 만나는 삐딱한 청소년들의 얘기가 재잘거릴 것 같다.

  

 프라하의 보행자 다리 카롤 교

 

 카롤 교의 난간에있는 성상

  황금소로를 내려와 프라하의 명물 카를 다리까지 왔다. 다리는 자동차 통행이 금지된 보행자거리다. 여기도 어찌나 관광객들이 많은지 주차장이 된 서울의 도로같다. 1357년에 세워진 카를 다리는 중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다리로 양쪽 난간에 성서에 나오는 인물을 조각한 30체의 성상이 장식되어 있다. 블타바 강과 다리의 조각상들과 프라하 성이 어우러진 풍경이 수려하다. 프란츠 카프카 문학을 키워낸 토양 프라하는 역사의 무게 때문인지 수려함을 넘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도시다.


 프라하에서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배낭여행 온 학생들도 많이 만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이 반갑고 세상 밖으로 나온 젊은이들이 기특하다. ‘여행만큼 자신에게 확실한 투자는 없다’는 평소의 소신과 우리의 미래는 사람에 대한 투자밖에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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