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저 대모 군중들 좀 봐!!!

2003년 6월 13일 금요일 흐림(여행 41일째날)

프라하

 날이 흐렸다. 흐린 날씨가 날 봐준다. 남편은 사진찍는 라이팅 컨디션이 엉망이라고 불평이지만 걷고, 지하철 타고, 시가전차 이용하는 프라하의 Walking Tour에서 쨍쨍한 햇빛은 나의 강적이다. 어제는 내가 지쳤었는데 오늘은 남편이 힘들어한다. 여행 41째이다. 화약탑 거리까지 왔다. 15세기에 세워진 성곽의 성문으로 한때는 화약고로 사용되었다는 화약탑 근처는 관광천국 프라하답게 벌써 관광객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명한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 광장의 장방형 골목마다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있었다. 무슨 일일까? 아침부터… 앞서가던 남편이 걸음을 멈춘다.

“아무래도 대모군중들인가 봐! 골목마다 꽉 찬 인파가 심상치 않아!”.

아침부터 프라하 시민들이 데모를 한다?! 이유가 뭘까?! 남편이 날 끌어당긴다. 걸음을 멈추고 주춤하며 살피는데 골목에서 사람들이 우루룩~ 나온다. 가이드를 따라나오는 단체 관광객들이다. 아니~ 저 많은 군중들이 모두 관광객?! 어이없어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말처럼 6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돌과 화염병 속 숫한 데모를 봐 온 우린 뜻밖의 군중을 보면 섬찢 시위군중들과 데모를 연상하게 된다. 경험과 기억의 한계 속에 갇힌 인간이여~

  

 프라하의 구 시청사 광장에 있는 틴 교회

 

 천문시계

 구시가 광장, 천문시계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제야의 타종소리를 들으려고 종로 보신각 앞에 모인 인파같다는 생각을 한다. 구시청사 건물은 14세기에 건축된 고딕양식의 건물로 30m정도의 시계탑이 있다. 시계탑의 천문시계는 매시 정각이 되면 작은 창이 열리고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 인형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이 천문시계는 시계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로 더 유명하다. 정각 12시. 종소리와 함께 시계의 창문이 열리고 12제자 인형들이 나타나 춤을 추며 빙빙 돌다 사라진다. 번갯불에 콩 꿔먹은 기분이랄까? 유명세에 비해 너무도 짧고 싱겁게 끝나 버린 천문시계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은 듯 얼떨떨한 내마음 같은가 보다. 


 구시가 광장을 돌아 박물관이 된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는 유태인 지구로 왔다. 어느 도시를 가나 예술가는 그 도시의 향기와 색깔이 된다. 그런 점이 항상 부럽다. 카프카 박물관에는 유태인이었던 그가 ‘모든 것이 좌절로 끝나버리는 카프카 문학’의 본질을 설명하듯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 예리한 눈빛으로 우릴 보면서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가 하루아침에 갈색 벌레로 변한 '변신'의 작품배경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정치적, 정신적 혼돈기였고 그는 정신적 노숙자였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작품에 흐르는 결여성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주변과의 투쟁의 기록이었다고.... 카프카에 대한 막연한 갈증이 조금은 해갈이 된 듯 개운하다. 

  

 니콜라스 교회

  

 프란츠 카프카 카폐

  카프카가 지나다녔을 유태인 지구 골목에 '카프카 카페'가 있었다. 카프카 야외카페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카프카라는 프리즘을 통해 역사와 멋의 도시 프라하가 새롭게 스며든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카프카 카페 풍경을 열심히 찍는다. 뜻밖에 모델이 된 나. 그동안 슬쩍슬쩍 찍었던 풍경 속 인물처럼 이번엔 내가 그들의 풍경 속 인물이 된다. 이래저래 카프카와 인연이 깊은가 보다. 

 카를 다리로 다시 왔다. 카를 다리엔 변함없이 들뜬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로맨틱한 선율로, 멋진 액세서리나 기념품들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이 도시의 서정적 분위기를 황홀하게 채색한다. 카를 다리 난간 중간쯤에 있는 십자가 플레이트 앞에서 두손을 모아 얹고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건강과 지혜를 달라고 소망을 간절히 빈다.

  

  바츨라프 광장

  

 국립 박물관과 성 바츨라프 기마상

  지금의 체코를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의 광화문 거리처럼 쭉 뻗은 대로 바츨라프 광장으로 왔다. 바츨라프 기마상이 있는 이 광장은 체코가 1918년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했을 때도, 1968년 8월 체코를 침입한 소련군에 대한 강력한 항의 데모가 일어났던 ‘프라하의 봄’때도, 1989년의 민주화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많은 시민과 함께 역사 속에 있어왔던 광장이다. 젊은 혈기가 도도히 흐르는 것 같은 광장에서 바츨라프 기마상과 광장에 핀 화려한 꽃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가운데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준수하다. 아무쪼록 넓은 세상 경험을 많이 하고 돌아가길 바란다. 국립박물관을 들러보고 나오니 바츨라프 광장의 활기가 나그네의 힘 빠진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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