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대전의 불씨 사냥광 페르디난트 황태자

2003년 6월 14일 토요일 구름(여행 42일째날)

프라하-브르노, 주행거리 286㎞, 주유량 34.76ℓ, 금액 CZK862-

 오늘은 프라하를 떠나 브르노로 간다. 브르노로 가는 길에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살던 코노피슈티에 성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젤레나 호라의 순례교회를 보고 갈 예정이다. 역사와 깊은 멋의 도시 프라하와의 안녕이 아쉽다. 노르웨이의 베르겐과 트롬쇠, 안델센의 고향 덴마크 오덴세 등도 아름다운 도시다. 러시아 페테르부르그도 우수가 깔린 멋진 도시다. 그러나 프라하의 중후한 멋은 아주 특별했다. 밤마다 열리는 각종 콘서트, 골목마다 배어있는 중세의 향기, 사람들의 검소한 듯 소박한 삶, 크리스털같은 아이들의 푸른 눈동자, 프라하의 품격있는 관광문화까지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펜션이나 환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무뚝뚝한 태도는 아직도 사회주의 때를 못 벗은 듯 흠이 되었다.

 

페르디난트 공이 살았던 코노피슈티에 성

 

코노피슈테에 성에는 동상

 펜션을 떠나 47Km쯤 달려 코노피슈티에 성에 도착했다. 성으로 올라가는 3칸 짜리 꼬마 기차에 성에서 올리는 결혼식에 가는 손님들이 탔다. 내 앞에 부모님과 같이 탄 정장차림의 젊은이가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 꼬마기차가 재밌다며 즐거워한다. 우릴보고 담배를 피워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눈빛이 선한 젊은이들. 발칸 3나라도 그렇고 체코에서도 지하철이나 트램에서 노인이 타면 젊은이들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순진해 보인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인성교육을 하는 대안교실 교사다. 폭력 등 일탈행위로 징계받은 중고등 학생들을 2주 내지 4주 동안 인성교육을 하여 학교로 보낸다. 결손가정의 상처와 피해의식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으로 사고와 감정과 행동이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니 어딜가나 청소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나라들의 때묻지 않은 청소년들을 보며 가정이, 사회가 아직은 우리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걸 느끼곤 한다. 자본주의화의 지연이 가져다 준 보너스가 귀해 보인다.   


 코노피슈티에 성에선 몇쌍의 신랑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동구의 결혼풍속은 가족과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성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은 시내 레스토랑에서 하는가보다. 인생의 첫 테이프를 역사 깊은 고성에서 끊는 신랑신부. 공장같은 예식장에서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우리나라 결혼식보다 한결 보기 좋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와 가족들이 웅장한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페르디난트 공이 사냥한 동물의 박제들

 

 

  페르디난트 공이 사냥한 사슴의 뿔들

  막강했던 제국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살던 코노피슈티에 성. 사냥광이었던 황태자가 평생 사냥한 동물들 대부분이 박제가 되어 성 내부를 빽빽이 장식하고 있다. 인도, 네팔, 중국까지 가서 잡은 호랑이들이 수천 개의 동물 속에서 섬뜩한 눈빛은 번득이며 관광객들은 노려보고 있다. 그는 평생 무려 30만 마리의 동물을 사냥했다니 하루 15마리 정도를 잡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퍼레이드 중에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암살되었다. 킬러였던 그는 결국 킬러의 손에 죽었다. 성은 그가 살던 당시의 가구와 집기류, 실내장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황태자 가족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엿 볼 수 있었다.


 황태자의 집무실과 접견실, 서재, 침실, 욕실 등 내부의 많은 방들을 돌아보던 관광객들이 화려한 황태자의 파티가 열리던 다이닝룸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경쾌한 모차르트 음악이 연주된다. 어리둥절하는 관광객들. 다이닝룸 한편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검은 연미복 차림의 악사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광객들. 깜짝 이벤트에 관광객들은 황홀해지고 막 시작된 황태자의 파티에 초대받은 귀족이 된 듯 기분이 Up된다. 역시 관광천국 체코의 발상은 참신하다. 수많은 동물박제들을 보며 으스스했던 기분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코노피슈티에 성을 나왔다.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색다른 감흥을 주는지.... 역시 체코의 관광문화는 고품격이다.


 다음 일정인 젤레나 호라( Zelena Hora)로 떠났다. 오후 한시 반이다. 젤레나 호라의 순례교회는 성 요한 네포무크( Jan Nepomucky )를 기려 1719년-1722년에 지은 교회로 1994년에 유네스코가 세계종교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체코는 작은 나라여서 조금만 돌아가면 될 것 같아서 보기로 했지만 큰길에서 벗어난 인적없는 외진 길을 달리는 기분은 언제나 길 잃은 아이처럼 처량하고 불안하다. 좁은 길 양옆 가로수 빨간 나뭇가지들이 차창에 부딪힐 듯 척척 늘어졌다. 자세히 보니 흐드러지게 달린 체리가 아닌가. 세상에 이런 가로수 길도 있다니! 차를 세우고 비닐봉지에 체리를 가득히 따 담았다. 달콤한 체리 즙이 긴장하고 있는 목을 적셔준다. 한참을 달려도 여전히 빨간 체리나무 가로수뿐이어서 이곳에 사람이 살고있을까?  체리 오솔길을 벗어나 한시간 정도 달리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외출하는 할머니 3분을 만났다. 자로 잰 듯 작은 키에 천진한 표정의 할머니 3분이 합창하듯 말한다.

“언덕으로 올라가다 우회전해서 쭉 올라가요.”

뽀얗고 고우시던 시어머님을 꼭 닮은 노인들이다.             

 

 젤레나 호라의 순례교회

 

 

 1994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낮은 언덕 위에 있는 순례교회는 바로크-고딕 양식의 5각형 별 모양의 교회로 Jan Nepomucky의 시신 위에 다섯개의 별이 나타났다는 전설에 의해 그의 무덤 위에 교회를 지었고 별 모양의 교회내부엔 다섯 천사의 조각이 부조되어있다. 교회를 뺑 둘러싸고 있는 10각형의 회랑에는 순례자를 위한 타원형과 삼각형의 예배소가 있고 마당엔 무덤들이 교회를 향하여 둘러서 있다. 담처럼 둘러 싼 회랑 동서남북 어디서 봐도 똑같은 별 모양이다. 특이한 구조와 모양이 생소하고 낯설다. 몇 쌍의 부부와 큰 배낭을 맨 여학생 두 명이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와서 돌아보고 떠난다. 무덤주위에 핀 제라늄 꽃을 보고 이곳도 사람의 발길이 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덩그렇게 큰 교회가 어딘지 빈 듯한 느낌. 우린 갈 길이 바빴다. 예약한 브르노 펜션을 향해 젤레나 호라를 떠났다.

오늘의 주행거리 : 286km    코노피슈티에 성 입장료 : 300코루나(만오천원 정도) 

팔라키YH : 630코루나(약 삼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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