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두콩과 멘델의 법칙

2003년 6월 15일 비. 흐림, 맑음 일요일(여행 43일째날)

브르노, 주행거리 20㎞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5시다. 이곳은 시내에서 떨어진 숲 속이어서 빗소리가 적막한 산중에서 듣는 것 같이 고즈넉하다. 넓은 방을 둘러보며 비가 그치지 않으면 일요일인 오늘은 시내 구경을 그만두고 푹 쉴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제 느지막이 펜션에 도착했을 때 우린 조금 의아했다. 브르노 서북쪽인 이곳은 서울의 불광동이나 응암동쯤 될거라고 어림잡으며 찾아왔는데 대학생들이 많아서 잘못 온 게 아닌가 했다. 그러나 예약한 펜션이 맞았다. 브르노 공과대학의 기숙사 일부를 펜션으로 쓰고 있었다. 예약부스에 있던 통나무같이 뚱뚱한 아줌마가 공중목욕탕 입욕료 받는 창구멍같은 쪼그만 유리문을 열며 뭐라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체코말로... 한국에서 온 아무갠데 예약한 가족실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영어를 모르는 아줌마는 우리가 내민 패스포드를 보고 종이에다 1890이라 써 내민다. 돈부터 내라는 듯 눈을 부릅뜬다. 주객이 전도된다더니.... 이곳에서 3일 밤을 자야하는 우린 프라하 유스호스텔의 악몽을 떠올리며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우물쭈물하는 우리 앞에서 작은 창문을 ‘꽝’ 닫아버렸다. 빌어먹을…. 내 돈 내고 홀대받다니…. 프라하의 펜션에서 똑같은 경우를 당했던 우린 모험하는 심정으로 3일치 숙박비를 냈다. 호령하듯 난리치는 덩치 큰 아줌마가 은근히 무서웠다. 그나마 방을 안 준다면 어쩌랴 싶어서다.      

 

 .브르노의 성 토마스 교회

 

  멀리 보이는 성 페테르 파올 교회

아줌마가 던져준 201호실 키를 들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란 약에 쓸래도 없는 이들을 탓하기엔 우리에겐 하룻밤 잠자리가 너무나 절박했다. 2층 복도 끝에 있는 201호실 문을 열었다. 와~ 이렇게 좋을 수가... 넓고 깨끗한 호텔같은 방. 큰 책상과 책장, 침대와 옷장, 코너 테이블과 안락한 의자가...  대형 스크린 같은 창문으로 아카시아 숲과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꽃, 꽃, 꽃.... 창문을 여니 아카시아꽃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완벽했다. 아마도 이곳은 공산당 시절 당 간부들의 수련장소로 사용됐던 곳이 아니었나 싶다. 널찍널찍하고 번듯한 시설. 언짢았던 아줌마의 불호령이 눈 녹듯 녹았다. 체제가 달랐던 사회기준의 갭이 이렇게 상충하고 있었다.


 뽀송뽀송한 시트의 촉감이 기분좋은 이불 속에서 어제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비가 그치는지 아카시아 숲에서 새들이 지저귄다. 아주 먼 옛날의 풍경이 새소리에 실려온다. 내방 앞에 있는 감나무에서 새벽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곤 하던 학생 시절. 머리맡에 읽다 둔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다시 끌어다 읽으며 단발머리 중학생 때부터 꿈꾸던 세상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주체못하고 언젠가는 나도 꼭 세상을 돌아보리라 다짐하던 옛날이 슬며시 다가온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고 그동안 수없이 세상을 떠돌며 체코 브르노 까지 흘러들어 온 나. 꿈은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있는 나는 옛날을 생각하며 더 잘까 일어날까 꾸무럭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서울서 온 전화다. 지금 어디에 있냐고, 몸은 괜찮냐고, 힘들지 않냐고 묻는 반가운 동생의 목소리. 서울도 지금 비가 온다고 했다. 그리곤 독일 베를린에서 열 개인전이 사정으로 한달 연기됐다는 말을 한다. 동생의 베를린 개인전에 맞추어 짰던 우리의 여행일정을 다시 수정해야겠다.


 달콤한 게으름에 빠졌던 우린 11시가 넘어 시내로 나갔다. 브르노는 공업도시로 체코 제2의 도시다. 체코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서로 다른 세 개의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라하를 중심으로 한 서부의 보헤미안, 브르노를 중심으로 한 중부의 모라비아, 브라티슬라바를 중심으로 한 동부의 슬로바키아였는데 1989년 민주화 이후 슬로바키아는 독립을 했고 브르노는 체코에 남아 공업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자유광장에서 바라본 성 야곱 교회

 

 13세기에 건립된 스필베르크 성

 일요일의 거리는 한산했고 크리스천은 많으나 교회에 나오는 신자는 별로 없다는 말이 무색한 만큼 교회도 성당도 신자들로 꽉 찼다. 우린 성 페테르 파울 교회, 성 야곱 교회, 자유 광장 등 12군데 브르노 볼거리를 찾아 걷기도 하고 차로 이동하면서 브르노의 문화와 풍물을 호흡한다. 지하 감옥으로 쓰였던 슈필베르그 성 지하실을 돌아보며 인간은 잔인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인권을 절대 존중되어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가치란 생각을 하며 우린 멘델 수도원으로 갔다.

 

 브르노의 멘델 수도원

 

 멘델 수도원에는 그의 동상

 멘델이 사제로 있었던 성 토마스 수도원은 멘델 광장 코너에 있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은 1847년 사제가 되었고 수도원 사제관 앞 손바닥만한 뜰에서 11년(1854~1865)간 완두콩 실험을 통해 생물의 유전현상을 연구했다. 아담한 수도원에는 그의 동상과 그가 기거했던 빨간 벽돌 2층 방이 그대로 있었고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자료관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자료관 앞 작은 뜰엔 ‘멘델이 완두콩을 심어 연구한 뜰’이란 팻말이 꽂혀있다. 이 쪼그만 텃밭이 근대유전학의 시작인 우열의 법칙, 분리의 법칙, 독립의 법칙의 산실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치밀한 계획성과 정확한 실험, 탁월한 자료처리 그리고 명쾌한 논리에 의한 연구로 생물학 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의 하나로 평가되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의 집념에 감명받은 난 자료관 방명록에 글을 남기며 새로운 가능성은 노력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마음의 텃밭엔 어떤 가능성의 씨앗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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