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고성에서 하룻밤 중세 영주가 되다

2003년 6월 17일 화요일 맑음(여행 45일째날)

브르노-레드니체-발티체-세까우, 주행거리 399㎞, 주유량 21.46ℓ&34.82ℓ, 금액 CZK500-&EUR32-

 최고의 잠자리였던 브르노 펜션을 떠나 오늘은 오스트리아로 간다. 모든 걸 툴툴 털고 떠난 여행인데 매일 숙소때문에 왜 그리 웃고 우는지, 여행의 피로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체코 국경근처의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레드니체-발티체 지역의 궁전과 정원을 보고 오스트리아로 갈 예정이다. 낯선 길 찾기의 탁월한 방향더듬이를 가진 남편은 큰 도시가 아닌 시골을 찾아가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은행나무와 능소화 핀 집들이 예쁘다. 고창 선운사 가는 길같은 422번 시골길은 달려 한시간만에 레드니체까지 왔다. 


 

 1222년에 요새로 세워졌던 레드니체 성

 

 레드니체 성의 넓은 정원

 

 13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식을 거쳐 오늘에 이른 남부 모라비아 낭만주의 시대의 건축물인 궁전과 정원은 보수공사가 한참이다. 두툼한 안내책자를 샀다. 보수증인 궁전은 볼 수 없었고 평원이 많은 중부 유럽의 정원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왔다. 세계문화유산이 될 만큼 보존가치가 있는 중세 정원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동양인인 우릴 보고 수근거린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어디나 똑같다. 2~3층 높이의 숲벽이 담을 이룬 궁전 뜰과 색색의 꽃들이 핀 꽃길과 곳곳에 조각상과 분수가 있는 중세유럽 장원인 레드니체 정원이다.

 

 발티체의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왕실 저택

 

 발티체에서 레드니체에 이르는 문화경관

 여기서 6km쯤 떨어진 발티체 왕궁으로 갔다. 왕의 가족궁전이었던 웅장한 규모의 왕궁도 체코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린 체코 돈을 톡톡 털어서 궁전에서 파는 포도주를 샀다. 그리고 국경을 넘기 위해 떠났다. 14km쯤 떨어진 Mikulo에서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들어왔다.


 국경을 넘으면 분위기도 다르고 마음도 새롭다. 오후 1시. 고속도로 통행세 스티커를 사서 붙이고, 기름도 넣고, 지도사고, 식사하고 그리고 심기일전해서 떠난다. 2시 30분 비엔나를 향해 출발했다. 알프스 자락의 작은 마을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있고 집집에 걸어놓은 화분도 정성스럽다. 오늘은 비엔나를 통과해서 국경근처에서 자고 내일 은 슬로베니아 수도 류불랴냐에서 크로아티아로 가기로 했다. 동생의 베를린개인전 연기로 우리의 일정도 바꿨다.   

          

 비엔나를 바이패스해서 A23번 도로를 타고 그라츠(Graz)로 향한다. 비엔나의 교통체증이 장난이 아니다. 거북이 걸음인 차 속에서 멀리 슈테판 성당의 첨탑과 푸른 숲을 끼고 흐르는 다뉴브강을 본다. 20년 전 첫 세계여행길에서 어설프게 춤을 추던 슈트라우스 홀 장면이 떠오른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물며 풋풋한 젊은 시절의 추억이야.... 


 A23번 도로에서 A2번 도로로 갈아타고 그라츠 방향으로 달린다. 점점 산이 깊어진다. 깊은 계곡과 계곡사이를 긴 다리로 이어놓은 고속도로의 경관이 멋지고 장쾌하다. 쉼없이 4시간을 달려 국경근처까지 왔다. 시간은 벌써 5시 40분. 슬슬 숙소를 찾을 시간이다. Exit 124번으로 빠져 나와 캠핑사이트 사인을 찾아 마을 외곽을 돌아 산밑 호숫가까지 왔다. 그러나 캠핑사이트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산비탈에 Zimmer라고 쓴 나무간판이 패랭이꽃 화분 사이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벨을 누르니 할머니가 나오신다. 여긴 방이 없고 다른 곳을 알아봐 주겠다며 들어간 할머니는 다른 곳도 모두 full이니 저 산꼭대기에 있는 고성의 게스트 하우스에 가보라고 한다.

 

라이브니츠 언덕에 있는 세까우 성

 

세까우 성은 Styria 지방 주교의 여름 궁이다

 산 정상에 있는 성까지 올라왔다. 우린 성으로 들어와 중정을 가로질러 리셉션으로 갔다. 리셉션 여인은 신관인 게스트하우스는 세미나 팀들이 와서 Full이고 고성은 비어 있는데 한사람당 일박에 32유로란다. 캠핑사이트를 찾다가 뜻밖에 고성까지 왔고 64유로에 성에서 자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여인에게서 영주의 집무실이었던 2호실 키를 건네받은 우린 분수가 있는 넓은 중정을 지나고 언덕 위 우람한 아치형 돌문을 지나서 정원 속에 숨죽인 3층 석조건물 앞에 섰다. 고성 절벽 아래론 저녁 빛에 물든 진록색 호숫물이 아득히 깊어 보인다.


 손잡이가 닿은 곳이 까맣게 패인 육중한 나무대문을 밀었다. 삐익~ 문이 열렸다. 달아서 반들거리는 널찍한 돌계단과 높은 천정, 사람의 온기가 없어 썰렁한 실내, 낯설고 생소한 분위기에 괜히 위축된다. 계단을 올라가 2층 두번째 방앞에 섰다. 무겁고 커다란 열쇠를 꽂는 소리가 ‘철컥’ 복도를 울린다. 아파트 1, 2층을 튼 것 보다 더 높은 천정과 운동장처럼 넓은 방. 선뜻 들어서지지 않는다. 타일벽난로 옆 바로크 스타일의 낡은 올리브색 소파, 창가엔 투박한 테이블과 의자와 책장, 높다랗게 매달린 백열등 불빛이 삐걱거릴 것 같은 고르지 못한 마루바닥의 나무결을 힘없이 비취고 있다. 벽에 붙여놓은 정갈한 흰 시트의 더블베드와 싱글베드만 없다면 방금이라도 영주가 집무실로 들어설 것은 예스러움이다. 나무로 된 2중창 너머로 산밑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마을 중심에 있는 교회가 보인다. 이 창으로 백성들의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들여다봤을 영주. 2m가 넘는 성벽의 두께만큼이나 백성들과 멀리 있었을 영주를 상상해본다.   


 우린 이번 여행에서 고성에서 자는 계획도 했었다. 그러나 뜻밖에 일찍 찾아온 기회는 무늬만이라도 영주가 돼보기엔 달랑 우리뿐인 이른 시즌이 너무 썰렁했다. 실내의 적막함이 너무 싫어서 우린 저녁거리를 싸들고 정원으로 나왔다. 피크닉벤치에서 산아래 마을도 보고, 교회도 보고, 산자락에 앉긴 호수도 보고, 산등성이로 떨어지는 석양이 하늘과 숲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보면서 체코 발티스 궁전에서 산 노을 빛 포도주를 마신다. 이곳은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근처 Leibnitz라는 마을 세까우(Seggau) 성이다. 꿈을 믿으면 현실이 된다는 체험이 술잔에서 찰랑인다.       

 

세까우 성에서 동호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민속의상을 입은 어린이 들의 모습

 9시가 넘은 시간,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음악회가 있다고 리셉션의 여인이 말했었다. 우린 레스토랑 쪽으로 내려갔다. 민속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술렁이는 분위기가 음악회가 막 시작된 듯 했다. 발코니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7남매의 아이들이 입고 있던 의상과 똑 같은 민속의상을 입은 백 여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스트리아 포크송 동아리들의 신나는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동네민박과 게스트하우스가 모두 Full이었나 보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부르는 농익은 무반주 화음에 박수가 터지고 동아리마다 준비한 노래는 프로 수준이다. 멜로디가 빠르지 않고 따뜻해 절로 흥이 나는 포크송에 이어 민속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부부가. 연인끼리, 노부부가, 꼬마와 엄마가, 아이와 함께 부부가. 여자들끼리, 꼬마들은 저희들끼리, 젊은 카풀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트랍 대령과 마리아가 파티장을 벗어나 후원에서 춤을 추듯 무리에서 빠져나와 잔디밭에서 춤을 춘다. 모두들 아름다운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6살쯤 된 소녀는 아빠와 춤을 추는데 어찌나 잘 추는지 커서 무용수가 되려나 보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색 주름스커트, 꽃수를 놓은 검은색 비로드조끼와 흰 스타킹과 검은색 가죽 신.


 흥겨운 물결에 구경꾼인 나도 들썩인다. 아름다운 장면을 찍느라고 인파 속에 파묻힌 남편이 보이질 않고 흥에 취한 나는 제멋에 겨워 빙글빙글 돈다. 루마니아 어느 시골에서 신부의 아버지와 춤을 췄던 결혼 피로연 파티가 어른거린다. 이 밤 오스트리아 고성 후원에서 나는 떠돌이 나그네임을 잊고 글로벌 시민이 되어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리듬에 몸을 내맡긴다.   

오늘의 주행거리 : 399km  총 주행거리 : 7394km   세까우 성 일박 숙식료  : 64유로

[목 차]  [전날 2003년 6월 16일]  [다음날 2003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