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 슈테판 성당의 미사

2003년 6월 19일 목요일 맑음(여행 47일째날)

자르레브

 비가 그쳤다. 서양관광객들이 빠져나갔고 우린 햇빛이 잘 드는 욕실 딸린 방으로 옮겼다.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의 역사는 8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쾌나 역사 깊은 도시이다. 30여 곳이 넘는 박물관과 미술관, 콘서트 홀, 극장 등이 있는 문화도시이며 출판의 도시기도 한 자그레브. 구시가의 중심인 어퍼 타운을 중심으로 울창한 숲과 공원, 세련된 조각상과 정연한 느낌의 건물들이 있는 이 도시가 유럽문화권임을 알 수 있었다. 공휴일인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땀을 흘린 날이라고 하는데 카톨릭 신자가 아닌 우린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어퍼 타운 중심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으로 가보기로 했다.

 자그레브 관광의 시작이 되는 반 젤라식 광장

 총독 반 젤라식의 기마상

 10시 미사를 막 끝낸 사람들이 눈물을 닦으며 나오기도 하고 충혈 된 눈으로 성호를 그으며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특별한 미사임을 그들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11시 미사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우리도 대성당 안에 앉아있었다. 종교인이 아닌 우린 장중한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의 관객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숙연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신앙의 신비여….

 슈테판 성당 정문 앞의 마리아 석주

 슈테판 성당의 첨탑

 우리 옆에 앉았던 중년남자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을 알았다며 저녁 7시에 큰 행사가 있으니 꼭 보라고 한다. 그와 헤어져 자그레브의 중심인 공화국 광장으로 왔다. 구시가를 돌아보는 꼬마 기차를 타고 올드타운을 돌아본다. 포석깔린 중세 분위기의 골목에서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과 돌계단을 쉬엄쉬엄 올라가는 할머니 걸음에서 우리와 다름없는 삶의 숨소리를 듣는다. 시끌벅적한 우리정서와는 달리 차분하게 공휴일 나들이를 즐기는 풍경이 퍽 깍듯해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2시간 이상을 앉아있었다. 손님이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어서 그냥 돌아가고 또다시 들어왔다가 돌아간다. 우리 같으면 주인 눈치 보여서 앉아있기 민망할 텐데 모두들 그러려니 한다. 여윤가 보다.


 성 마르코 성당을 찾아가는 길에 한국사람을 만나서 반갑다는 다정다감한 여의사를 만났다. 보건소 일이 바빠서 평소엔 두 아이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데 오늘은 시간이 있어 저녁을 해주려고 장을 봤다며 자기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여의사의 친절에 우린 한국민예품을 선물로 주면서 사양했다. 낯선 문화와 정서를 교류하면서 보낼 시간과 에너지가 우리에겐 없었다. 그리고 7시엔 슈테판 대성당으로 다시 가야했다.

자그레브의 성 마르크 교회

 슈테판 성당의 야외 미사 장면

 성마르코 교회는 14~15세기에 건축된 교회로 지붕의 타일 모자이크가 아름다운 교회다. 갈색, 청색, 흰색의 타일로 오른쪽은 자그레브, 왼쪽은 크로아티아 심볼을 디자인 한 루프타일이 이색적이다. 중세모습 그대로인 거리가 잠시 시간을 잊게 하는 성 마르코스 교회 앞 푹 패인 포석 위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세월을 잊는다. 옛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불편 없이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삶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툭하면 부수고 새로 짓고 그래서 어울림과 조화를 잃어가는 서울을 생각한다. 앞만 보고 마구 뛰는 우리가 왠지 위태로워 보인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화사한 신랑신부가 옛거리를 환하게 빛낸다. 개까지 데리고 온 하객들이 신부에게 축하키스를 한다. 신부의 드레스에 희망이 걸려있었다. 우린 17세기에 그린 성모 마리아 그림이 있는 스톤 게이트의 삼각지붕 밑 예배당을 구경하고 슈테판 대성당을 향해 언덕을 내려왔다.


 슈테판 대성당 광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광장중앙의 꽃제단이 화려하다. 7시가 되자 성당 첨탑의 수십개의 크고 작은 종들이 일제히 울린다. 화음을 이룬 종소리가 유장하게 퍼진다. 젊은 신부님, 나이 드신 신부님, 수녀님들이 성당으로 들어가고. 검은 복장의 합창단원과 흰 드레스를 입은 화동들도 꽃바구니를 들고 들어간다. 많은 수사들과 신자들까지.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미사는 장엄한 성가와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추기경의 육성이 어우러져 거룩하고 성스럽다.


 종소리와 파이프오르간 음악이 장중하게 퍼지면서 성당의 문이 열리고 성채를 든 추기경이 광장으로 나온다. 그 뒤를 따라 긴 행렬이 성당 밖으로 나오고 밖에 있던 남자들이 그 뒤를 따르고 여자들이 다시 뒤를 잇는다. 성채를 든 추기경을 따라 성가를 부르며 성당을 한바퀴 돈 수 백 명의 행렬이 다시 슈테판 성당 뒷뜰에서 오랫동안 의식을 치른다. 그리곤 꽃장식 제단 위에 예수님 성채를 올려놓는다. 종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추기경이 4방을 향해 예수님 성상을 들어올린다. 광장에 모임 모든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끊고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한다. 장엄한 광경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경건한 의식이 2시간이상이나 계속된다. 다시 예수님 성상을 성당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고 슈테판 성당 2개의 첨탑에 불이 밝혀지고 어둠이 깔린 자그레브시를 향해 종소리가 딩딩 울린다. 성스러운 미사는 계속되고.... 광장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흩어질 줄 모른다. 나 같은 비종교인도 알 수 없는 신비에 자리를 뜨지 못한다. 어둠이 깔린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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