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는 Full에에요. 크로아티아나 이태리 쪽으로 가보세요.

2003년 6월21일 토요일 맑음(여행 49일째날)

제르자브카-류불랴나-이졸라, 주행거리176㎞,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식사가 푸짐하다. 정성스런 테이블 세팅과 갓 구운 말랑말랑한 빵, 쨈, 치즈, 버터, 요플레, 햄, 소시지, 주스, 우유, 샐러드, 과일 등 종류도 다양한 아침식사가 화려해서 그냥 먹기 아깝다. 한 장 찰깍. 이곳은 류블랴나에서 30Km쯤 떨어진 농가다. 밭이랑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밭엔 가지,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가 탐스럽고 닭장의 닭들이 주인이 온 줄 알고 꼬꼬 거리며 모여든다.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을 보고 세퍼트 한 마리가 시끄럽게 짖어댄다. 개 짖는 소리에 나온 앞니가 다 빠진 할머니가 날보고 피식 웃는다. 태극선 부채와 신랑신부 인형 등 민예품과 홍삼사탕을 드리니 현관 앞 나무의자에 앉으란다. 손짓발짓으로 할머니와 대화가 시작됐다.

 

류블랴나 근교 제르자브카의 가정 집

  

류블랴나의 상징인 용의 다리

 할아버지와 단 두 식구가 사는 일자형 집은 안방에 성모마리아의 이콘 성화가 걸려있고 자식들의 사진을 걸어 논 손바닥만한 거실 겸 식당과 부엌이 전부인 옹색한 집이다. 할머니는 구기자 비슷한 말린 열매와 풀은 신문지에다 싸 주며 뭐라고 말하는데 라벤다향 같은 마른풀 냄새가 좋다. 할머니의 몸짓으로 봐서 몸에 좋다는 뜻인가 보다. 할머니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린다라고 되풀이한다. 조금 있으니 구형 빨간 자동차가 할머니 집 앞에 멈추고 한 여인이 내린다. 이 여인이 린다였다. 허리가 아파 읍내에 있는 미용실까지 갈 수 없는 할머니를 위해 미용사 린다가 파마를 해드리려고 왔다는 것이다. 큰아들은 류불랴나에서 회사에 다니고 작은아들은 아프리카에 있다는 얘기까지 린다는 할머니 사정을 좌악~ 얘기한다. 할머니와의 긴 바디랭귀지가 시원하게 해독됐다. 잘가라고 손을 흔드는 주름이 죽죽 진 할머니의 마른 피부가 힘없이 출렁인다. 노인의 외로움도 같이 출렁인다.

 

류블랴나 성의 주차장의 결혼식 차량들

류블랴나 성에서는 시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류블랴나로 돌아왔다. 역사 깊은 이 도시는 12세기에 건축되어 17세기에 재건된 류불랴나 성과 류블랴니차 강을 중심으로 광장과 옛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구시가를 돌아보는데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시민들이 사랑하는 류블랴나 성엔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들이 와서 사진도 찍고 피로연도 한다. 10여대의 차들이 신랑신부 차를 따라 경적을 울리며 따라온다. 토요일 오후의 성은 신랑신부들로 온통 하얗다. 신랑신부가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성을 한바퀴 도는 신랑신부를 따라 하객들도 따라 돈다. 그리고 신랑신부가 성밖으로 나오면 부자되고 자손번성하라고 하객들이 쌀은 뿌린다. 계단에 허옇게 뿌려진 낱알들을 비둘기들이 쪼아먹고 성밖 넓은 뜰에선 술과 음식을 먹으며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옛날엔 하루종일 잔치를 하던 결혼풍습이 있었는데...

 

류블랴니차 강 옆 광장의 무대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류블랴나 시청 앞 광장

 성에서 내려다보니 류블랴니차 강 야외 무대에서 열린 여름음악제가 뜨겁다. 공연장으로 내려왔다. 계단식 객석에서, 골목 카페에서, 나무 밑 벤치에서, 거리 바닥에 주저앉아, 건물창문에서, 다리난간에서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다. 시장 봐오던 아주머니 자전거 바구니엔 상추, 감자, 캬베츠, 토마토가 싱싱하고, 여행객은 배낭을 맨체, 어깨동무를 한 연인,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팔짱을 낀 중년부부, 술병을 든 사람까지 제각각의 몸짓으로 음악을 듣는다. 각 장르별 음악이 다 연주되는데 단원이 20~30여명이 넘는 브라스밴드도 있고 싸롱음악처럼 몇명이 연주하는 그룹도 있다. 리드 싱어의 노래실력도 대단한 언더그라운드 매니아들의 수준이 놀랍다. 아~슬로베니아... 이 멋진 도시와 여름음악제를 어떻게 잊으랴.

 

 어느새 오후 5시 30분이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우린 음악제의 들뜬 분위기에 취해 모험을 하기로 했다. 이태리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국경인 남단 아드리아해 연안 리조트 이졸라까지 가기로 했다. 130Km 거리니까 넉넉잡고 3시간이면 될 것 같고, 안전하고 도로사정도 좋아서 시도해볼만했다.

  

아드리아해의 낙조

아드리아 해와 이졸라 시

 2시간 30분 이상을 달려 이졸라까지 왔다.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벽 위 숲에 둘러싸인 고급 호텔 이졸라. 그러나 이곳도 모두 Full이란다. 리셉션 아가씨는 근처의 호텔도 모두 찼으니 크로아티아나 이태리 쪽으로 가보라고... 기가 막혔다. 슬로베니아는 하루도 편안하게 우릴 품어주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기분이 이럴까? 홀대받고 돌아서는 마음에 돌뿌리라도 차고 싶은데 찰 돌이 없는 완벽한 시설이 더 기막혔다. 저녁 8시다. 나그네 신세는 급하면 언제나 Zimmer를 찾는다. 투 베드룸은 다 찼고 큰방만 남았다는 민박주인의 말에 무조건이다.


 늦은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가니 마을 주민들의 주말댄스파티가 벌어졌다. 춤을 추고 맥주를 마시며 느린 템포의 노래를 손뼉치며 부른다. 왁자지껄함도 없는 조용한 파티. 그러나 즐거운 표정의 보통사람들의 주말의 휴식이 건강해 보인다. 아드리아해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이다,

오늘의 주행거리 : 176km  총 주행거리 : 7570km Zimmer : 40유로(상당히 비싼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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