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대평원으로 떠나다

2003년 6월 24일 화요일 맑음(여행 52일째날)

베체헤지(발라톤)-칼로차, 주행거리 275㎞,

  어딜가나 일출과 일몰을 카메라에 담는 남편이 구름 때문에 발라톤의 일몰과 일출을 찍지 못해서 실망이 크다. 호수에서 새벽 수영을 하는 사람들과 밤낚시를 한 사람들을 만났다. 15Cm정도의 납작한 고기 10마리 정도를 잡은 낚시꾼이 우릴 보고 순박하게 웃는다. 바닥이 엷은 회색 머드인 발라톤 호수는 그래서 물빛이 회색이다. 호숫가 갈대숲에 말 잠자리들이 찾아들고 이름모를 물새들이 호수 위를 낮게 날며 배회한다. 어제 저녁 비릿한 냄새 섞인 파도를 일으키던 호숫가 큰 바위들도 새벽잠에서 덜 깼는지 잠잠하다.

 

 휘뿌연 새벽을 뚫고 호수 옆 기찻길을 따라 통근기차가 지나간다. 한량을 단 기차도, 2~3량을 단 기차도, 6~7량을 단 기차도 지나간다. 역사(驛舍)도 없는 약간의 둔턱만 있는 간이역에 기차가 잠시 정차를 했다 곧 떠난다. 영화를 찍나? 아니면 심심풀이로 장난을 하나? 어제저녁도 오늘새벽도 내리고 타는 사람이 없는 간이역에 어디서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는 기차가 그렇게 지나간다. 낡아빠진 듯 허름한 객차도 지나가고 우리 지하철의 특별이벤트처럼 낙서인지 예술행위인지 알 수 없는 불규칙적인 선과 점, 곡선 등이 어지럽게 엉킨 그림을 뒤집어 쓴 객차도 지나간다. 한 칸에 한두 명이 고작인 승객이 동양인 부부를 보고 의외란 표정이다. 어제도 테라스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보고있으려니까 기차 안의 학생들이 차창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헝가리의 바다 같은 호수 발라톤

발라톤 호수 남쪽의 리조트

 헝가리 시골사람들의 어색한 듯 수줍게 다가오는 순박함이 보석 같다. 펀펀하고 드넓은 자연이 주는 영향일까? 경제발전이란 급물살 속에서 우리가 버리고, 잃어버린 순수와 순박함이 모두 다 이곳에 와 있나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 모습을 보지 못한 이래로 말이다. 이곳은 제비천지다. 우리도 잃어버린 정과 나눔을 찾으려면 이곳처럼 제비가 돌아와야 할까보다. 동틀 무렵 발라톤 호숫가 잡목덤불에서 울어대는 새소리는 또 얼마나 상큼한지. 자명종 시계소리가 아닌 자연의 새소리에 잠이 깨는 기분이 신선함이다. 가만히 새소리를 들으며 종류를 헤아려 보지만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고작 뻐꾸기 소리나 알까? 헝가리의 자연을 그대로 서울에 옮겨놓을 수는 없을까? 판타지 소설을 쓰듯 공상을 해본다.

 

 오늘도 포도나무 파고라 밑 테이블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머리와 수염이 허연 독일 할아버지 3사람은 오토바이 매니아들이다. 우리 차의 차적지가 독일(D)인 것을 보고 독일에 사는 동양인인줄 알았다는 그들도 오늘은 발라톤을 떠나려나보다. 잔디밭에 텐트를 친 부부와 4명의 자녀가 거위간 치즈를 빵에 발라 맛있게 먹는다. 여행을 하다보면 3자녀를 둔 부부를 흔히 본다. 그러나 중학생인 큰아들부터 3살박이 막내까지 4자녀를 둔부부는 처음이다. 덴마크에서 왔다는 부부가 늦잠을 잤다며 두 자녀와 같이 와선 활짝 웃는다.

 

 우린 2박3일 예정으로 헝가리 대평원으로 간다. 베체헤지를 출발하여 발라톤 호수 남단을 돌아 칼로차로, 다시 남쪽의 세게드까지 갔다가 거기서 다시 북상하여 데브레첸을 거쳐 대평원 황무지 푸스타 호르토바지까지 가는 대평원 대탐방이다.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한 일정. 오늘은 발라톤 호수를 돌아 약 200Km를 달려 칼로차까지 간다. 헝가리 전통자수의 본고장, 꽃무늬의 화려함이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칼로차 자수. 루마니아 메라 마을에서 본 현란하고 황홀한 꽃무늬 헝가리 전통의상의 고향인 칼로차. 꽃보다 더 아름다운자연 속에서의 삶이 있는 칼로차로 우린 떠났다.

발라톤 호수에서 남쪽으로 헝가리 대평원 일주를 시작하자 만난 끝을 알수 없는 해바리기 밭

 발라톤 호숫가 마을 풍경이 낯설지 않다. 길가 대문 옆에 도르래 달린 우물도, 마늘이나 붉은 고추를 매달아 놓은 집도, 옹기전문 기념품점도, 능소화 소담스럽게 핀 담도 우리와 너무나 닮았다. 그러나 변화없는 발라톤 호수를 끼고 가는 71번과 7번 도로변 풍경에 늘어지고 졸려워 하품이 난다. 2시간 30분만에 대평원으로 가는 61번 도로로 빠져 나왔다. 발라톤 호수는 멀어지고 대평원으로 향하는 길은 온통 해바라기 밭이다. 루마니아 몰다비아 지방을 여행할 때 꼭 어린 담배잎 같던 해바라기가 40여일이 지난 지금은 꽃이 피기 시작했다. 밀밭은 누렇게 밀이 익어가고 옥수수 밭도 무한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누더기 같던 대평원의 황토색은 밀을 수확한 밭이었고, 누런색은 밀밭이었고, 초록색은 옥수수와 해바라기 밭이었다.

헝가리 자수의 고장 칼로차의 민속건물

 270여Km를 달려 칼로차 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20분이다. 도시중심에 차를 세웠다. 느낌이 이상하다. 화려한 수를 놓은 일이 이곳 여성들의 일상이라고 유혹하던 정보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작은 도시여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고 황당했다. 겨우 얻은 정보로 힘들게 코로나 투어를 찾아갔으나 칼로차 자수에 대한 신통한 정보는 없고 여기서 5Km 더 가면 관광식당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수를 놓는 여인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맥이 빠진다. 관광식당을 찾아갔으나 작고 뚱뚱한 할머니 4분이 민속의상을 입고 텅 빈 식당에 앉아있었다. 헛물 킨 기분이 씁쓸했다. 정보의 허상이여...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여...  5시간을 달려온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다. 아무래도 발라톤 호수가 너무 좋아서 신기루에 홀렸나?

 식당을 겸한 2층 Zimme에 맥빠진 몸과 마음을 내려놓았다. 좁은 방에 달랑 미소짓는 얼굴 우리 LG에어콘이 있다. 에어콘을 보니 반가움인지 서러움인지 찔끔 눈물이 난다. 이런 외진 곳까지 우리의 손길이 닿았었구나! 우리기업이 기특했다. 우린 대평원의 일몰을 찍으려고 10Km 이상을 달려 평원으로 나갔다. 그러나 잔뜩 낀 구름은 대평원의 일몰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넒은 콩밭을 뛰어 다니는 들토끼 한 마리를 보았을 뿐이다. 헝가리 대평원의 끝없고 한없음 위에 우리의 조각보 같은 땅이 조각조각 무늬가 된다.

 

 돌아오는 길. 자동차 불빛들이 흐릿하게 대평원에 번지고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 불빛이 불꺼진 농가들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비친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마을은 잠이든 게 아니라 길가에 나와 앉아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는 마을사람들의 또다른 시간이었다. 칼로차의 실망은 또다른 희망의 예고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그네는 골목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소곤거림을 들으며 고단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오늘의 주행거리 : 27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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