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대평원 호르토바지의 감동

2003년 6월 25일 수요일 맑음(여행 53일째날)

칼로차-세게드-호르토바지. 주행거리 447㎞, 주유량26.73ℓ, 금액 HFT6,118-

 간밤에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렸다. 해바라기 밭에서 묻은 진흙이 말끔히 씻겨져 차가 깨끗해졌다. 새벽 5시에 일출을 찍으려 어제 토끼를 보았던 콩밭이 있는 평원까지 갔으나 역시 포기하고 돌아왔다. 칼로자 자수, 일몰, 일출까지 모두 실패한 칼로차가 못내 섭섭하다. 그러나 칼로차 자수박물관에서 섬세하고 정교한 화려한 칼로차 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된 민속의상과 앞치마는 화려한 헝가리 자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명성에 걸맞게 호화스러움의 극치였다. 자수박물관과 파프리카 박물관이 헝가리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여행의 피로가 쌓이면서 남편과 자꾸 부딪힌다. 시비를 거는 쪽은 난데 잠자리가 불편해서, 볼거리 취향이 달라서, 계획대로 안돼서, 식사 때문에, 더위에 지쳐서, 가자거니, 보자거니 티격태격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힘든 일은 숙소문제다. 물론 별 3~4짜리 호텔에 묶을 수 있다면 여행이 훨씬 수월하겠지만 긴 여행에 그럴 수는 없는 일, 캠핑사이트나 게스트하우스 또는 Zimmer을 찾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호텔이 없는 곳에서 자야할 때도 있다. 상황이 좋을 때보다는 나쁠 경우가 더 많아서 여행 50일이 지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남편과 실랑이를 벌인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은 호르토바지로 가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500Km 이상을 달려야 하는 힘든 코슨데 칼로차처럼 또 실망을 할까봐서다. 그러나 내는 가자고 우겼다. 남편은 운전하랴, 비디오 찍으랴, 지도 보랴, 잠시도 쉬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은 대평원 깊숙이 있는 호르토바지로 간다. 헝가리 대평원은 티사(Tisza)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쪽은 도나우 강, 남쪽은 유고, 동쪽은 루마니아까지 펼쳐져 있다. 현재도 양과 소와 말의 방목지로밖에 쓸 수 없는 황무지 푸스타(Puszta 초원)가 여지저기 있는 대평원. 푸스타의 대표적인 곳이 호르토바지다. 말과 소가 한가하게 풀을 뜯고 예나 변함없이 살고있는 목동들. 이 주변 일대의 습지대는 다양한 종류의 물새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유네스코는 생태계 보존을 위해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우린 세게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북상하여 데브레첸을 거쳐 호르토바지로 간다.

 

 유고와 루마니아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대평원은 정말 장관이다. 구름이 끼었다 걷혔다하던 하늘이 구름 한점없는 파란 하늘을 드러낼 때면 대평원은 누렇게 익은 밀밭과 황금빛 해바라기 밭과 녹색의 옥수수 밭이 아득한 지평선까지 이어져 황금빛 바다를 보는 것 같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대평원 마을들도 대평원 끝없음에 한 점 자연이고 두엄과 건초더미는 가물가물 뻗어있는 직선도로의 지루함에 짧은 스타카토가 된다. 저 한없는 대평원 한 뙈기만 때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조각보같은 우리 땅이 자꾸 어른거린다. 가끔씩 민가의 굴뚝이나 전봇대 꼭대기, 밭 한가운데 있는 장대 위에 둥지를 틀고 사는 황새가족을 만나면 반가워 하나, 둘, 셋, 넷 둥지를 세며간다. 지름이 1m는 될듯한 황새의 대저택(?)에서 2마리의 세끼와 황새부부가 일광욕을 하고 있다. 어미황새의 커다란 날갯짓을 따라 새끼도 작은 날개를 펴 따라한다. 둥지에서 떨어질까 봐 아슬아슬하다. 그 흔한 관광버스 한 대 지나가지 않는 해바라기 천지의 대평원 길에서 마차를 만나면 절로 손이 흔들어지고 포도밭이 보이면 마을이 곧 나타날 것 같아서 괜한 기대를 한다. 대평원에서 함께 숨쉬고 있는 모든 생명들은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다. 우주 같은 평원에서 인간들의 몸짓이, 떠도는 나그네의 계산된 몸짓이 덧없어 한송이 해바라기가 된다. 아옹다옹했던 마음도 해바라기를 닮아 황금빛으로 바뀌는 아~~ 대평원이여....

 

 세게드는 유고와 루마니아와 가까이 있는 도시여서 이정표에 베오그라드와 부쿠레슈티 표시가 나온다. 도시 중심에 있는 장중한 교회나 건축물들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나 느끼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고 숲이 우거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달리는 트램도 한낯의 더위에 축 늘어져 있다. 그러나 숲 속 벤치에서 키스하고 있는 연인들의 가슴만이 한낯 더위보다 더 뜨겁다. 유럽도시의 중세분위기와 건축물들에 대해 식상이 난 우린 이젠 대충 돌아보고 나온다.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걸음이었는데 좀더 마음으로 봐야지 하는 것은 정말 마음뿐이고 피곤함 몸은 그늘을 찾아 바삐 돌아선다.

 

 세게드에서 데브레첸까진 222Km다. 다시 하염없는 대평원 달림이다. 하늘과 구름과 해바라기 꽃뿐인 대평원에 연두빛 옥수수 밭이나 누런 밀밭이 유일한 변화다. 마주오던 자동차가 깜박이 등을 켠다. 평원 가로수 밑에서 속도측정을 하고있는 단속경찰을 보며 이곳도 삶이 있구나 하는 현실에 꿈을 깬다. 농기구를 싣고 가는 낡은 트럭 뒤를 따라가다 추월하지고 했더니 남편이 하염없음 잊었냐고 핀잔이다. 하염없음에 질린 나는 도로표지석을 큰 소리로 읽는다. 211Km, 210Km, 209Km.... 몸에 쥐가 나려 한다. 빽밀러를 보니 청색 KIA 리오가 우리 뒤를 따라온다. 아~ 반가운 우리 차다. 끝이 안 보이는 길과 하늘과 닿은 지평선과 해바라기 밭뿐인 대평원을 벌써 8시간 이상 달리고 있다. 언제 따라붙었는지 빨간 현대 엑센트가 리오 뒤를 따라온다. 동구라파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문화의 도시 데브레첸에 도착했을 땐 저녁 6시. 호르토바지까지 33Km남았다. 호르토바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3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황량한 습지에 무수한 새떼들이 저녁하늘은 비상하고 있었고 삶의 흔적이라곤 없는 윈시자연 푸스타에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스산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황무지에 내팽개쳐진 기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것은 이 스산함.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호르토바지 공원

호르토바지 대평원의 낙조

 길가 인포메이션 센터의 남자가 7Km쯤 가면 호텔이 있다는 말에 굳었던 몸이 녹는다. 호텔은 푸스타 호텔답게 납작한 건물이었고 호인형의 리셉션 할아버지는 1층 1호실 키를 준다. 잠잘 곳을 정했다는 안심. 우린 일몰을 찍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가 있는 대평원 습지로 나갔다. 늪지에 사는 누런 들개 한 마리가 다가와 배회한다. 검불은 잔뜩 묻힌 거친 털에 무표정한 누런 눈동자가 척박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강인함을 말하는 것 같다. 빵조각을 던져주니 검불더미 속으로 들어가 뜯어먹는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해나가는 끈질긴 생명력이여.....

 

 망망대해 같은 습지 대평원.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시작됐다. 지름이 1m나 될 듯 커다란 저녁해가 푸른빛 물기 머금은 지평선으로 서서히 저물어 간다. 장엄한 일몰을 배경으로 새떼들이 나르고 황량한 대습지 푸스타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또 콧날이 시큰해진다. 목숨건 도전의 희열일까? 아니면 나도 그대로 하나의 자연이 된 감동일까? 형언할 수는 없는 목메임이 파문이 된다. 그동안 본 사하라사막의 낙조, 이집트 광야의 낙조, 시베리아 벌판의 낙조, 인도 타르사막의 낙조, 에게 해의 낙조와는 너무나 다른 헝가리 대평원의 웅대한 낙조는 장엄함과 성스러움의 절정이다. 끝없는 지평선, 하염없는 지평선에 작은 한 점으로 사라지는 태양. 황량한 습지에 일몰이 남긴 여운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의 주행거리 : 447km  총 주행거리 : 857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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