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연문화유산 호르토바지 국립공원

2003년 6월 26일 목요일 맑음(여행 54일째날)

호르토바지-홀로쾨, 주행거리 176㎞, 주유량 34.80ℓ, 금액 HFT8,000-

 새벽 4시 10분. 일몰을 찍었던 평원으로 나갔다. 푸스타(초원)의 새벽기온은 생각보다 추워서 싸늘한 냉기가 발끝을 시리게 한다. 분지고 늪지대인 이곳은 낯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해 호텔의 이불도 두툼했다. 남편은 비디오 카메라를 든 손을 호호 불며 축축한 습지에 밤새 내려 깔린 검은 구름을 뚫고 일출의 조짐인 붉은 빛이 퍼지기를 기다린다. 4시 42분. 검은 구름을 밀어내며 대평원 지평선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 어제의 일몰처럼 큰 원을 그리며 다시 떠오르는 대평원의 태양. 우리에겐 낯선 대평원 자연순환의 감동이 비장하다.

 

 호르토바지 국립공원에서 매년 7월초에 열리는 승마의 날과 8월 중순에 열리는 바자르 축제 는 푸스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헝가리의 가장 유명한 축제 중의 하나로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특히 승마의 날에 푸스타의 목동들이 보여주는 승마곡예는 압권으로 축제 중 비라도 내리면 대평원엔 비를 피할 곳이 없어서 비를 흠뻑 맞으며 보는 곡예는 잊지 못 할 추억이 된다고 한다. 호르토바지 강에 걸려있는 돌다리는 강이라기보다 늪 위의 다리로 구멍이 9개가 있어서 늪의 새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준다. 다리 밑의 작은 보트에서 앳된 소년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헝가리 사람들은 영어보다 독일어를 더 잘한다. 이 잘생긴 소년은 독일어로 한시간 정도 늪을 돌아보는데 200포린트(Ft)라고 한다. 우리돈 1.400원이다. 부라보~~ 지금 시간은 아침 9시.

호르토바지의 "아홉구멍의 돌다리

키를 넘는 억세풀이 가득한 호르토바지 강

 늪을 따라 갈대숲을 헤집고 소년이 보트를 이리저리 저어간다. 햇살이 퍼지지 않은 갈대숲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조용하고 2m 넘게 자란 갈대숲에 싸인 늪엔 부지런한 물새들과 물잠자리 그리고 이름모를 곤충들이 늪에 떠있는 초록의 잎새 위에서 아침을 맞고 있다. 흰색의 꽃잎에 황색의 꽃술이 우아한 연꽃들도 막 꽃잎을 열며 기지개를 펴고 물새들은 갈대숲에서 자신들만의 언어로 지저귀고 있다. 작은 자연계의 조용한 아침. 갑자기 나타난 방해꾼에 놀라 물새들과 메추라기들이 화들짝 갈대 숲으로 숨어버린다. 소년은 갈대터널을 지나고 좁은 늪길을 쉬이~ 쉬이~ 헤치고 간다. 원시인이 된 듯 짜릿하다. 대평원 저지대에 이렇게 또다른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소년이 늪가에 보트를 댔다. 소년을 따라 올라가 보니 양치기들이 살던 집이 있다. 집이라기보다 얼기설기 나무와 갈대 등으로 만든 오두막이다. 한 오두막에 예술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양털에 물을 들여 천을 짜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의 소재는 호르토바지의 자연이다. 그녀는 자신이 찍은 호르토바지의 사진을 그림으로 재현한다. 두 아들은 부다페스트에 나가 살고 자신은 평생 살아온 호르토바지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며 살겠다고 한다. 세상엔 우직하리 만치 고집스런 사람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살맛 나고 희망이 있나 보다. 인간과 전통과 자연의 하모니가 거룩하고 아름답다.

 

 국립공원 호르토바지 민속 박물관. 헝가리인 정착상을 보여주는 전시실에 조상이 아시아계 유목민족인 알타이인 이라고 써있다. 전통음악도 귀에 익고 갈대잎으로 지붕을 엮어 얹은 초가도 전혀 낯설지 않다. 마늘장아찌나 말린 고추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헝가리. 우리와 너무 닮은 우랄 알타이계 몽고인. 그래서 더욱 친밀감이 느껴진다. 2층 새 전시실엔 푸스타에 살고있는 희귀종 새들의 박제표본과 월별로 탐조할 수 있는 새 종류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해놓았다. 방명록에 몇자 적었다. 푸스타라는 생소한 자연환경이 경이롭고 신비스러워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썼다. 방명록엔 2002년 6월에 시어머니와 아가씨 그리고 아들과 이곳을 방문했다는 반가운 한글도 있었다. 승마의 날 축제가 열리는 대평원의 광활한 시설과 평원을 나르는 새떼를 조망하는 새조망대, 대평원에 사는 동물들이 있는 동물원 등을 보고 우린 대평원과 이별을 했다. 홀로쾨 마을로 간다.

 

 홀로쾨 마을은 헝가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13세기에 축성된 홀로쾨 성과 17~18세기에 발달했던 마을은 교회와 목조가옥들이 70여 채 남아있는데 이 가옥들을 1987년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홀로쾨 마을의 목조가옥들은 헝가리법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으며 400여명의 주민들은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옛 홀로쾨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론 어려움이 많아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은 주민의 70%가 은퇴한 노인들인데 마을의 평균연령이 50세가 넘는다고 한다.


홀로쾨 마을로 가는 길도 여전히 황금색 평원이다. 자연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헝가리를 우리는 제2차 여행에서 가장 비중을 두었었다. 이제 홀로쾨 마을과 부다페스트만 남긴 헝가리 여행이다. 기대와 부담이 되었던 대평원 일주라는 과제를 끝낸 홀가분한 기분~~ 대 평원이여 안녕~.  대도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길목에서 시원한 샘물 한모금 마시듯 작고 아름다운 마을 홀로쾨를 보고 간다. 부다페스트는 홀로쾨에서 약 100Km 떨어져 있다. 

홀로쾨의 민박집 가족들과의 한때

저녘 식사 후 산책길에서 만난 홀로쾨의 낙조

 고속도로 3번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해바라기 밭을 벗어나 산마루를 네다섯 개쯤 넘으니 홀로쾨 마을이 나타났다. 홀로쾨 마을이라는 예쁜 통나무간판이 보였고 계곡을 따라 들어선 목조가옥들은 산골마을 특유의 소박하고 조순한 모습이 반갑다. 충청북도 산지 어느 산골마을에 온 것 같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민박을 소개받았다.  

 

 마당에 포도넝쿨이 있는 민박집은 부부와 아들과 딸 4식구가 살고있는 비좁은 집에 방 한칸을 붙여지어 손님을 받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 우릴 소개하며 인사를 시킨다. 중학생 딸에게 목거리 볼펜과 태극선 부채와 복주머니 등 민예품을 주었더니 주인 여자도 거실에 메달아 두었던 꽃그림을 그린 장식용 빨간 달걀을 하나 띄어 준다.

 

 마을의 목조가옥들은 박물관이란 푯말이 고유번호와 함께 붙어있고 민박으로 사용되고 있는 집들은 검은 나무판에 침대그림과 등급을 나타내는 A, B, C라는 알파벳이 써있다. 외진 산골에 달랑 마을만 있으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통가옥을 숙소로 제공하고 있었다. 석양이 내리고 있는 마을. 목조교회 종탑 위로 떨어지는 석양이 마을을 세월의 깊이로 가라앉힌다. 우린 동네 사람들이 모인 작은 카페에서 헝가리 맥주를 마시며 홀로쾨 마을분위기에 젖어본다.  

주행거리 : 176km  민박 : 5500포린트(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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