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쾨 마을과 페렌츠 할아버지

2003년 6월 27일 금요일 맑음(여행 55일째날)

홀로쾨-부다페스트, 주행거리 93㎞

 늦잠을 잤다. 아침햇살이 퍼진 홀로쾨 마을은 어제의 숨죽인 모습이 아닌 생기 넘치는 얼굴로 우릴 맞는다. 헝가리 전통문화와 현재의 삶이 공존하는 열려있는 공간 보존가옥들은 대부분 뮤지움이거나 민박집이 되어있었고 그 외는 주민들이 사는 집으로 채소를 심은 텃밭에 물을 주고있는 아주머니나, 베틀에 앉아 천을 짜고 있는 할머니나, 파프리카를 가꾼 텃밭 의자에 앉아 조각천으로 해바라기꽃이나 인형을 만들고 있는 여인이나, 낯선이를 보고도 짓지 않는 검둥이나, 모두 우리의 50년대 시골마을 풍경 그대로다. 민속의상, 전통자수, 민예품, 공예품 등 소소한 아이템을 주제로한 작은 박물관들은 전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만들고, 짜고, 수놓고, 물들이는 과정을 모두 옛 방식인 수작업으로 하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13세기에 세워진 홀로쾨의 목조 교회

목 조각가 Kelemen Ferenc씨와 함께

 꽃들이 화사하게 핀 집 마당에 나무 조각상이 특이해서 열린 대문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한분이 나무조각을 하고 계셨는데 새, 나무, 꽃 등 소품서부터 제법 큰 작품까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자그마한 키에 얼굴 가득 주름 지으며 웃는 모습이 하회탈을 닮았다. 할아버지께 홍삼차와 홍삼사탕을 드리며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자신을 소개한 잡지를 보여주며 이태리 나폴리 호텔의 룸 넘버를 자신이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었다며 N24라고 세긴 깔끔한 샘플을 보여주신다. 페렌츠 할아버지의 집은 목공예 박물관이다.

 

 신선같이 고요한 인상의 할아버지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할아버지가 손바닥을 펴고 내게 보여준 것은 자신과 꼭 닮을 작은 하회 양반탈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보는 하회탈. 난 페렌츠 할아버지를 꼭 끌어않았다. 한 손엔 하회탈을, 한 손엔 태극선 부채를 든 할아버지를.... 그와의 포옹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포옹처럼 따스하고 끈끈했다. 할아버지는 조그만 나무조각에 자신의 이니셜과 오늘 날자를 새겨 기념으로 주신다. 홀로쾨 마을과 페렌츠 할아버지. 오늘도, 내일도 삶은 만남에서 시작되고, 만남에서 꽃피어가고, 만남에서 삶의 의미를 알아간다는 시가 떠오른다.

 

홀로쾨 70채의 전통 가옥중 베틀 집에서

13세기에 축성된 홀로쾨의 산성

 홀로쾨 성까지 올라가면서 할아버지의 선물이 소중해서 자꾸 만지작거린다. 우리나라도 너와지붕이 있고 물레방아 도는 강원도 순박한 어느 마을에 한국의 홀로쾨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세상사람들은 물론 우리도 그 마을에서 전통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곳에 가면 무공해 청정지역 같은 푸근한 인심이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홍삼사탕 한봉지에 환한 함박웃음을 선물로 주던 그 정스러운 페렌츠 할아버지는 우리 강원도 산골에도 있을테니깐 말이다.

 

 홀로쾨 마을을 떠나는 마음이 꼭 전쟁터로 가는 기분이다. 과장하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여드레 전, 헝가리에 입국했을 때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부다페스트 지도를 보고 질려서 그만 접어두었는데 다시 꺼내보니 역시 아찔했다. 부다페스트는 장난이 아니게 복잡하고 큰 도시다. 우린 무작정 센트름을 찾아가기로 했다. 배짱으로 대도시에 도전하기로 했다. 확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며 헝가리=대평원=해바라기란 공식은 대도시 부다페스트 근교까지 변함이 없다. 교통량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이정표는 부다페스트 시내임을 알리고 있었다.

 

 중부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부다페스트. ‘도나우의 진주’라는 부다페스트. 번화한 광장과 중후한 건물들과 호쾌한 동상들이 즐비한 거리에 차를 세우고 여기가 어디냐고 아들과 걷고있는 아버지에게 물으니 센트름은 한참을 더 가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번화한 곳이 센트름이 아니라는 말에 다시 한번 질린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Are you Chines?" 한다.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반갑습니다 “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한다. 홍콩에서 살다가 12년만에 귀국했다는 아버지는 한국에 갈 기회가 많았다며 자기도 귀국한지 얼마 안돼서 우리가 원하는 정보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을 아는 부자를 만난 반가움에 우린 무조건 이 근처에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별4개 호텔이 112유로다. 우린 다시 거리로 나왔다. 쭉쭉 뻗은 널찍한 대로, 넘치는 사람들, 웅장한 건물들, 곳곳의 동상들, 질주하는 자동차들, 대도시의 모습이 우릴 압도한다. 대평원과 해바라기 밭과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다르면서도 너무도 비슷했다. 가름할 길 없는 그 한없음이.... 다시 걷는다. 저 만치 무궁화 꽃이 활짝 폈다. 흰빛, 보라빛 무궁화 꽃은 꽃잎이 홑겹인 우리나라 무궁화 꽃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무궁화꽃잎은 만지작거리다보니 담장 안 집은 별3짜리 작은 호텔이었다. 호텔로 들어갔다. 오늘 하룻밤은 OK, 내일은 Full이란다. 내일은 어떻게 되든 무궁화 꽃이 피어 있는 호텔에 묶기로 했다. 하루 숙박료는 65유로다.

 

 부다와 페스트가 어울린 구시가를 보러 호텔을 나섰다. 도나우 강의 현수교와 겔레르트 언덕의 왕궁과 마챠시 교회와 어부의 요새가 어우러진 부다페스트 풍경이 집시악단이 연주하는 헝가리무곡 선율에 따라 현란하게 흔들린다. 격정과 애수가 긷든 춤곡이 관광객의 들뜬 마음을 파고든다. 

“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

“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여~”

 

 헝가리무곡 제5번의 애절하고 현란한 선율을 타고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빛과 그림자처럼 떠오른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의 유일한 초등학교 밴드부였던 우리는 악기라야 아코디언과 하모니카와 풍금이 고작이었는데 방과후에 헝가리무곡 제 5번과 쿠쿠 왈츠 등을 연습했었다. 모두들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시절이어서 5, 6학년 여학생으로 구성된 밴드부는 꽤 인기가 있어서 여러 곳에서 초청을 받았다. 특히 인천 앞바다에 있던 미 7함대를 방문하여 헝가리무곡 제5번 연주를 끝내고 선상에서 처음 먹어본 아이스크림의 그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란!....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에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찍은 사진이 Korea란 영어잡지에 소개된 일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헝가리무곡 제5번 클라이맥스 선율이 한여름 소낙비처럼 강렬하게 귓가를 때린다. 우리의 여정도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고 범11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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