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향기 짙은 도시 브라티슬라바

2003년 6월 30일 월요일 맑음(여행 58일째날)

브라티슬라바, 주행거리 37㎞

 브라티슬라바에서 하루만 머물려던 계획을 바꿔 하루 더 묶기로 했다. 도시와 호텔이 마음에 들어서다. 어제 저녁 무렵의 센트름 풍경과 깔끔한 호텔에서 묘한 끌림이 있었다. 우린 첫 볼거리로 도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데빈(Davin) 성을 보기로 했다. 브라티슬라바는 빈과 부다페스트와 함께 도나우 강을 젖줄로 번영해온 도시로 오랫동안 헝가리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15세기 전반에 도나우 강을 따라 성을 쌓은 이래로 슬로바키아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데빈 성은 모라비아 제국의 요새였다

 

데빈 성은 블라티슬라바 서쪽 12㎞에 있다

 도심에서 12㎞ 떨어진 데빈 성은 도나우 강과 모라바 강이 만나는 절벽 위에 있는 성으로 모라비아 제국의 군사요새였는데 1809년 나폴레옹군에게 함락되어 파괴되었다. 데빈 마을과 데빈 성은 1945년 이후 국가지정 문화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오랜 역사가 서린 성내엔 로마시대의 주거유적도 있고 절벽 위의 망루와 터만 남을 유적의 복원공사를 하고 있었다. 도나우 강의 도도한 물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경이 장관인 데빈 성의 슬픈 역사는 최근세사까지 이어지는데 공산치하시절 강 건너 오스트리아 땅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300명 이상 사살했다고 한다. 강건너 오스트리아 땅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있다. 찾는이 아무도 없는 성에서 학교 때 배운 세계사와 내 발로 찾아다니며 본 세계 곳곳의 문화와 역사를 한 줄에 꿰어 보며 자연조건과 역사의 역동성을 생각해본다. 한 권의 세계사 책을 읽는 기분이다.

 

도나우 강의 노비 다리에서 본 블라티스라바 성

 

낡은 건물 창문의 그림들

 오후 5가 넘어 트램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브라티슬라바 성과 성벽,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도나우 강 위의 긴 다리와 도시 정경, 브라티슬라바의 심볼인 15세기 건축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미하엘 문과 시계 박물관, 흐루반 광장 주변의 거리풍경과 좁은 골목길, 성 마르틴 교회와 구시청사 건물 등, 아담한 구시가를 돌아보는 재미가 아기자기하다. 이 도시의 매력은 옛날과 현대가 어울린 신선한 발상의 예술감각이다. 

 

 구시가지 골목을 꺾어드는데 ‘맨홀 맨’이란 브론즈 조각상이 눈에 띈다. 하수구를 청소하고 맨홀 밖으로 얼굴을 내민 맨홀 맨의 검둥이가 된 얼굴과 환한 미소가 꼭 실물 같아서 깜짝 놀랐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맨홀 맨의 얼굴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조각품이 이렇게 우리삶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구나.... 발상이 신선하다. 사람들로 붐비는 코너 레스토랑의 커다란 관엽수 옆 ‘몰래 카메라’란 제목의 브론즈 조각상. 코너의 관엽수에 몸을 숨긴 채 카메라로 몰래 사진을 찍고 있는 파파라치의 모습이 해학적이다. 재밌는 조각상에 기분이 고조된다. 구시청사 광장 벤치 등받이에 턱을 괴고 광장의 모습을 즐기고 있는 나폴레옹 조각상. 그가 누리지 못했던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그에겐 감동이었나 보다. 현대조각들이 가라앉은 옛 거리를 생기넘치게 한다.

 

 더욱 파격적인 발상인 마르틴 교회의 낡은 3층 부속건물 앞에서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낡아빠져 허물어질 듯한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모두 빼버리고 창문마다 모사한 명화나 거리와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넣어서 벽면 전체를 커다란 전시장처럼 해놓았다. 얼마나 창의적인 의식의 전환인가!!! 수십 개의 그림들이 서로 어울린 낡은 벽면이 멋지고 경이롭다. 미술대학 학생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냥 스쳐갈 곳이었는데 좋은 이미지에 끌려 하루를 더 할애했는데 역시 놓치면 아쉬울 뻔했다. 소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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