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의 세계문화유산 블코리츠 마을을 찾아서

2003년 7월 1일 화요일 맑음(여행 59일째날)

브라티슬라바-반스카 스티아브니차-블코리츠, 주행거리 319㎞, 주유량 27.51ℓ, 금액 SK806-

 7월이다. 서울을 떠나지 두 달이 되었다. 7월은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달이다. 날씨도 화창하고 날아갈 듯 기분이 들뜬다. 오늘은 슬로바키아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두 곳을 돌아볼 예정이다. 첫 목적지 반스카 스티아브니차는 광산도시로 번성한 도시로 궁전과 교회와 광장과 성들이 지금도 중세 모습을 유지하고있어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특히 야금술 산업 및 광산과 관련된 중요한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많은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반스카 스티아브니차의 석주

 

반스카 스티아브니차의 시청

 우리의 여행도 이제 20여일 남았다는 들뜬 기분 탓인지 자꾸 실수를 한다. 길을 놓치거나, 잘못 갈아타서 돌아오고, 다시 또 내려갔다 올라가기를 거듭한다. 긴장이 풀렸나? 왜 이러지? 바이오리듬이 엉켰나보다. 우리는 엉뚱한 외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약 140km 떨어진 반스카 스티아브니차까지 2시간 반이면 넉넉히 도착할 수 있는 곳을 4시간을 헤매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황금같은 두 시간을 산 속에서 허비했다. 날씨는 덥고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 않고 싶다. 그러나 도시는 역시 세계문화유산다운 품위가 있었다. 긴 역사를 가진 유럽은 도시마다 그만의 색깔이 있어서 찾는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산 위에 우뚝한 푸른색 성의 수려함과 유럽을 휩쓸던 페스트의 종료를 기념하여 세웠다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중앙광장 석주, 중후한 중세 건축물들, 지도를 보며 2시간 여 동안 볼거리를 다 보고 이 도시를 떠날 땐 오후 3시 15분이었다.

 

 나그네에겐 하루해가 짧다. 3시가 넘어 4시가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갈곳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을 땐 더욱 초조해진다. 우린 블코리츠(Vlkolinec)이란 산골마을을 찾아가는데 이곳은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아주 작은 산골마을로 199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악전통가옥마을이다. 마을에 대한 정보얻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호텔에 있던 여자가 그 근처마을 출신이라며 우리 지도에 연필로 꼭 찍어주며 이쯤~될 거라고 했다.

 

 블코리츠 마을로 떠나는 시간이 예상보다 상당히 늦어졌다. 지도에 표시된 거리를 대강 계산하니 120~130Km 정도일 것 같은데 위치가 정확치 않아서 만일의 경우  슬로바키아와 폴란드 국경 근처에서 일박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떠났다. 팽팽한 긴장감에 늘어졌던 몸과 마음이 다시 꽉 조여온다. 해 떨어지기 전에 찾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얼마 달리지 않아서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고 첩첩산중에 벌목한 통나무를 싣고 힘겹게 산길을 오르는 긴 트레일러들 꽁무니를 부지하세월로 따라간다. 마음은 급한데 추월을 꿈도 못꾸고... 5시가 넘었고 6시도 지났다. 산길은 점점 더 깊어 가고 블코리츠이란 이정표는 언제쯤이나 나타날까? 불가리아 전통장수마을 실로카루카를 찾아가던 도로피 산맥을 넘을 때의 악몽같은 처절함이 떠올라 다시 몸서리쳐진다. 그땐 장대비까지 왔으니깐.... 산 속은 이미 석양빛이 깔리고 끝없는 미궁에 빠진 듯 소름이 돋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국경근처에서 자고 내일아침에 블코리츠를 찾아 되돌아와야 할 가보다.

 

 산을 넘어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국경 15Km 전쯤. 눈이 번쩍 뜨였다. 유네스코 마크와 블코리츠 3Km란 사인. 오 감사합니다! 신이여... 내려깔린 석양빛이 빛나는 황금빛으로 환해진다. 화살표를 따라 왼쪽으로 꺾어들어 산길은 달린다. 도대체 이런 산속에 무엇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3Km란 분명한 표시. 분명한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스럽다. 남편의 돌다리 두드리는 성격에 질린 난 평생 ‘대충하기’를 신조로 살고 있다. 대충하기=여유라는 배수진을 치고서. 그러나 분명하지 않은 혼미함이 얼마니 비생산적이고 에너지 낭비인지 난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앞으론 정확하게, 분명하게, 확실하게를 실천하며 살리라고 다짐 또 다짐한다.

 

 산마루 몇 개를 넘으니 사람 키만큼 자란 들풀들이 석양빛에 누렇게 물들어 바람에 흔들리고 우리나라 너와지붕처럼 나무너와를 얻은 지붕이 산너머로 보인다. 산속에 푹 파묻힌 곳.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허허로운 산마루 비탈길을 꺾어 올라 마을로 들어섰다. 세상 밖 세상처럼 다소곳하게 목조가옥들이 계곡을 따라 들어서 있었다. 별천지에 온 것 같다고나 할까? 이런 외진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경한 기분이 어리둥절하다. 석양빛과 졸졸 흐르는 계곡물과 산바람과 무채색의 목조가옥들과 고즈넉함뿐인 마을이다.

 

 인포메이션센터 문을 막 닫고 나오는 남자를 만났다. 잘곳이 있냐고 물었다. 다섯 번째 집을 가리키며 가보란 시늉을 한다. 올라가보니 문이 잠겼다. 인포메이션에 있던 남자는 퇴근을 했는지 온데간데없고 남편은 더 늦기 전에 국경근처로 가자고 한다. 한 여인을 만났다. Zimmer가 있냐고 했더니 “모멘트”하곤 전화거는 시늉을 한다. 한참만에 나온 여인은 손가락 다섯 개를 펴고 “5㎞”를 반복한다. 5㎞떨어진 곳에 방이 있다는 뜻 같아서 우린 그 여인을 태우고 그 여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다시 산을 내려왔다.

 

 무엇에 홀린 듯 동물적인 감각이 랄까, 숙명적인 끌림이랄까 막무가내로 이 마을을 찾아왔고 세상을 등진 듯 산속에 꼭꼭 숨은 마을 불코리츠 전통마을에 짐을 풀었다. 손짓발짓으로 한 그 여자의 바디랭귀지는 민박주인이 5㎞ 떨어진 곳에 살고있는데 그 집까지 가서 key를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린 고마움의 표시로 부채와 매듭 등 한국 민예품을 주었다. 여인은 신기한 듯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2층 목조가옥은 외형은 그대로 둔 채 내부는 손을 봐서 조악하지만 수세식 화장실과 욕실, 간이 부엌과 침대와 두꺼운 이불이 준비되어있었다. 방은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 썰렁했지만 목조가옥이라 그런 대로 아늑했다.

주행거리 : 319㎞  민박비 : SK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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