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고 있었다

2003년 7월 2일 수요일 맑음(여행 60일째날)

블코리츠-오슈비엥침, 주행거리 204㎞, 주유량 13.77ℓ, 금액 SK400-

 버릇대로 일찍 깼다. 산중의 싸늘한 공기가 두꺼운 이불 속까지 스며든다. 목재가 흔한 곳이라 벽도 천장도 두툼한 목재로 만든 옷장도 테이블도 든든해 보인다. 기념품가게와 큼직한 식탁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산간마을의 새벽풍경을 보려고 밖으로 나왔다. 쌀랑한 공기가 시리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높은 고지여서 둥실 떠있는 기분이 든다. 산마루에서 불어온 찬 공기가 안개 낀 마을을 휘~ 몰아쳐 지나간다. 

 

벨카 페트라 산 해발 718m의 블코리네츠

블코리네츠 전통 마을 종탑은 1770년 것이다

 해발 718m 벨카 페트라 산에 자리 잡은 산악전통가옥마을 블코리네츠. 14C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농사도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았는데 1860년대에는 345명이나 되던 주민이 지금은 고작 34명의 주민이 살고있다는 이곳은 마을입구에 1770년에 세운 나무종탑과 50여채의 목조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계곡 물을 막아 통나무 수조를 만들어 놓은 민박집 앞 초미니 수영장(?)에 밤새 고인물이 넘쳐 졸졸 흐르는 소리가 어제 저녁 우리가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꼬마 네댓 명이 수영복을 입고 통나무 수조에서 신나게 물장난을 치고 놀던 소리만큼이나 정겹다. 꼬마들의 물놀이 풍경이 이 마을이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생존하는 현재의 삶이 있는 마을임을 말하고있었다.

 

 앞 집 대문이 열리고 긴 가죽장화에 큼직한 앞치마를 입은 여인이 양 네 마리를 몰고 나와 산 중턱에 메어놓고 내려온다. 나무종탑이 있는 마을 어귀에서 목초더미를 등에 진 여인이 올라온다. 축축한 느낌의 아침공기가 다리를 휘감는다. 아랫집 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검둥이를 부른다. 아까부터 마을을 배회하는 낯선 나를 보고 짖어대던 검둥이가 산밑으로 마실 나갔나 보다.  잘생긴 콜리를 데리고 아침산책 나가는 젊은 여인의 긴 다리가 콜리의 날렵한 몸매를 닮았다. 한 남자가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고 물놀이 꼬마들이 재잘대던 나무담장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치니 습기 먹은 공기입자들이 반짝이는 알갱이가 되어 공중을 떠돈다. 산중의 아침이 느리게 깨어나고 있었다.

 

 연극 블코리네츠를 감상하는 관객이 된 듯 나는 새롭고 호기심 자극하는 연극의 한 장면, 한장면에 빠져든다. 구름에 가렸던 햇빛이 나오면 조명 밝힌 무대처럼 마을은 제 빛을 드러내고 구름사이로 태양이 숨으면 조명 낮춘 무대처럼 풍경이 가라앉는다. 마을입구에 있는 큰 은행나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는 생생한 음향효과가 된다. 작은 교회도, 생활사박물관이 된 16호, 17호도,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 옆 일자집도,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석구석 풍경들을  기웃거린다. 계곡물에 그릇을 씻고있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Japan? No, Korean. 고개를 끄덕인다. 이 마을에 대해 궁금하게 많다고 했더니 자기 집으로 오란다.

 

 아침을 먹고 그릇을 씻던 여인을 찾아갔다. 여인은 블라디슬라바에 살고있는 정신과의사였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96세 된 친정어머니를 5년 전부터 여동생이 살고있는 블코리넥으로 모셨는데 병세가 그만해서 자신도 여름 두 달은 여기서 보낸다고 했다. 이 집은 꽤 넓어서 한울타리 안에 두채의 집이 있었다. 안쪽의 큰집은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과 부부가 살고 대문 쪽 집엔 콜리를 대리고 산책하던 젊은 여인과 의사의 여동생이 살고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유럽의 여인들을 대채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비싼 가구나 유행에 따른 치장 보단 손때묻은 오래된 물건들이나 손수 만든 테이블보나 침대보를 정갈하게 손질해 놓은 정성이나, 투명하게 닦은 유리창이라든지, 누런 떡잎 하나 없이 가꾼 화분이라든지, 정리정돈이 잘된 집안을 보며 주부의 부지런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반짝거리는 새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삶에선 볼 수 없는 옛스럽고 촌스러움에 진한 향수를 느낀다. 우리도 옛날엔 저렇게 살았었는데..... 콩 한쪽도 나눠 먹으며....

 

 닥터의 여동생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마루가 겹겹이 겹쳐 하늘동네에 온 것 같은 2층 아들 방의 침구가 정갈하다. 손수 구운 과자와 커피를 닥터의 여동생이 내왔고 콜리를 대리고 산책하던 새댁도 절인 양배추를 넣고 찐 빵을 대소쿠리에 담아왔다. 닥터는 한국사림을 만나서 반갑다며 2002년 서울 월드컵을 보았는데 한국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유쾌하게 웃는다. 이 마을이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 까진 계곡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며 전통생활방식 그대로 살았는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유네스코의 재정지원을 받아 수도와 수세식 화장실이 가설되었고 세금혜택 등 현실적인 지원도 받게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산아래 마을로 이사를 했고 빈집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숙소로 빌려주거나 기념품가게를 하고 몇 세대는 그대로 살고있다고 했다. 

1860년의 우물, 지금은 수돗물이 나온다

34명이 55채의 건물 중 18채에서 살고 있다

 96세의 친정어머니는 구름과 산을 바라보며 뜰 앞 의자에 정물화처럼 앉아있었다. 눈동자와 피부가 맑아 마을을 둘러싼 자연만큼이나 깨끗하다. 장수하실 거라고 했더니 큰딸이 귀엣말로 전한다. 표정없는 할머니는 여전히 구름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우린 할머니를 에워싸고 사진을 찍었다. 벌써 11시가 넘었다. 산속에 살던 블코리넥이란 전설 속 늑대 이름에서 마을이름이 유래됐다는 블코리넥 마을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좋은 인상이 블코리넥 마을에서 멋진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가족들에게 한국민예품 선물을 주고 우린 마을을 떠났다. 구름 걷힌 하늘이 푸르기만 하다.

 

 제2차 여행의 종착점 폴란드로 향하는 마음이 가볍다. 제3차 여행이 될 룩셈부르크와 벨기에와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남았지만 이 나라들은 익숙한 나라들로서 심리적 부담이 적다.  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볼거리가 될 고성이 국경 근처 다뉴브 강 언덕에 장엄하게 우뚝 서있다. 그러나 고성입장은 한시간 이상을 기다려야해서 우린 포기하고 폴란드 오슈비엥침으로 향했다.

 

 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들어왔다. 늘 그렇지만 국경만 넘으면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신기하다. 투박한 시골냄새 풍기는 폴란드 풍경이 꾸물거리는 날씨에 잿빛으로 가라앉 았다. 아침햇살이 퍼진 풍경과 지는 해가 드리운 도시의 인상은 사뭇 다르지만 저녁 무렵 유태인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로 가는 마음이 음울한데 빗방울까지 떨어지니 한기가 느껴진다. 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네의 집에서 느꼈던 아픔과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원혼들의 울부짖는 환상까지 겹쳐져 점점 더 오싹해진다.

 

오슈비엥침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막사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는 글이 남아 있다

 아우슈비츠는 7시까지 개장을 했다. 입장료도 없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으란다. 한시간의 여유가 있다. 나치의 기만적 슬로건 ‘일을 하면 자유로워진다’는 글귀가 새겨진 아취형 철문까지 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관람을 끝낸 여인의 모습이 처절하다. 수용소였던 빨간 벽돌건물 사이로 하늘 높이 자란 포플러 가로수가 으스스한 수용소에 한가닥 빛이 되어준다. 28개의 수용소 중 나치의 잔혹상을 보여주는 4, 5, 6, 7, 11동을 획 둘러보고 나왔다. 저녁 7시 30분. 휴~ 한숨이 나온다. 소름이 돋은 피부를 양손으로 감싸안았다. 수용소 한 끝에 있는 가스실과 시체소각장을 보고 서둘러 아우슈비츠를 떠났다.

 

 중앙역 근처에 호텔을 정했다. 아우슈비츠와 멀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여전히 날씨는 비를 뿌리고 시끄러운 역 주변의 소음과 기차 소리에 잠은 오지 않고 인간의 잔학상에 몸서리쳐지는 역사의 현장이 어른거려 멍한 눈길이 천정을 응시한다.

오늘의 주행거리 : 204km 호텔비 : 주차비 포함 193 즐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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