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자존심 크라코프

2003년 7월 4일 금요일 맑음(여행 62일째날)

비엘이치카-크라코프-비엘리치카, 주행거리 31㎞.

 뻐꾸기 소리는 어디나 똑같다. 비엘리치카 모텔에서도 귀에 익은 뻐꾸기 소리에 잠이 깼다. 밤새 비가 오더니 4시 반쯤 벌겋게 일출이 시작됐다. 잔뜩 낀 안개구름을 뚫고 햇살이 퍼진다 다시 구름이 몰려와 일출을 덮어버린다. 흐려진 날씨가 9시가 되서야 갠다. 오늘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폴란드 관광1번지 크라코프를 보기로 했다.

 

옛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코프의 바벨성

 

바벨 성은 국립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11~16C 말까지 500여 년 간 폴란드 수도였던 크라코프는 기적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아서 중세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구시청사 건물, 폴로리안 성문과 성벽을 이용한 야외 갤러리, 시민들의 공간인 중앙광장과 그 한가운데 있는 시장광장, 민족시인 아담 미키에비츠 동상, 성 마리아 교회와 보이체프 교회, 역대 왕들이 살았던 바벨 성, 지동설은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다니고 가르쳤던 야겔론 대학 등 폴란드의 뿌리 깊은 학문적, 문화적 자존심이 곳곳에 서려있다. 또한 폴란드의 자긍심 요한 바오로 2세가 태어나고 배우고 추기경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주말인 금요일 오후의 화창한 날씨가 중세유럽의 광장 중에서 가장 크다는 정사각형의 중앙광장을 화려하고, 활기차고 생동감있는 광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광장 여기저기에서 공연하는 다양한 퍼포먼스, 광장 중앙에 있는 직물회관을 가득 메운 기념품과 토산품들, 구시가를 돌아보는 꼬마 관광기차의 분주함, 이동 빵 가게 장수, 솜사탕 장수 등 호기심과 색다름과 볼거리로 가득한 광장은 그 자체가 거대한 공연장이었다. 무엇보다도 모여든 각양각색의 인파를 보는 재미가 대단했다.

바벨 성의 고딕식 회랑은 71개의 방을 연결한다

크라코프 중앙광장에 있는 성 마리아 교회

 단체여행 온 폴란드 초등학생들서부터 검은 피부에 검은 수도복 차림의 수도사들까지, 머리에 모두 스카프를 맨 4명의 자녀와 똑같은 스카프를 맨 엄마, 쌍둥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부, 짧은 스커트가 배꼽 밑에서 15cm정도 될까?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와는 머리를 빡빡 민 여자의 데이트, 흑인 남편과 백인 부인, 동양여자와 서양 남편, 오토바이 매니아들의 검은 옷, 웃통 벗은 남자, 치렁치렁 겹겹이 옷을 껴입은 아가씨, 챙 넓은 모자에 우아한 차림의 여인, 동양인에게 접근하여 유혹하는 삐끼들, 경쾌한 걸음의 배꼽티 아가씨들. 생기발랄한 젊은이들. 제각각의 사람들이 역사의 때가 묻은 우중충한 무거운 돌의 무게를 살아 숨쉬는 도시의 멋으로 바꿔놓는다. 여러 인생이 교차하는 중앙광장의 역동적 피돌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크라코프 구시가 성벽을 이용한 화랑

코페르니쿠스가 공부한 야기에오 대학

 구시가의 폴로리안 성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동설은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다녔던 1364년에 창립된 야기에오 대학, 교회의 성단이 폴란드 국보인 성모교회, 16세기에 지은 역대 왕들이 살던 바벨성, 중앙광장 주변의 교회와 공원 등을 보고 크라코프의 명소인 폴로리안 성벽 야외 갤러리로 갔다. 폴란드여행에서 꼭 보고싶던 곳이었다. 다른 도시에도 야외갤러리는 있지만 크라코프의 야외 갤러리는 옛 성벽과 옛 거리, 포석이 깔린 좁은 길, 성벽을 따라 전시해 논 풍경화들, 그림을 그리는 노화가의 모습 등이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역사와 인생과 삶의 의미가 시간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어울림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역사를 낳은 오래된 거리에서 묻어나는 야릇한 냄새를 맡으며 성벽에 걸린 그림들을 둘러본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모두 예술적 여행의 동반자들 같다. 모두가 하나 되는 폴로리안 성벽 야외 걸러리는 그래서 또다른 광장이다. 우리도 대학로 어디쯤에, 경복궁 담 모퉁이에, 그도 아니면 서울역 광장에 이런 야외갤러리 하나쯤 만들면 좋겠다. 산소처럼, 물처럼 모여서 하나 되는 어울림이 있는 그런 야외 갤러리를... 크라코프의 옛 거리도 어느새 하루를 접을 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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