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를 향하여

2003년 7월 5일 토요일 맑음(여행 63일째날)

크라코프-바르샤바, 주행거리 319㎞,주유량 34.90ℓ, 금액 PZL107.87-

 오늘은 바르샤바로 간다. 큰 도시라는 부담과 바람 불고 비오는 날씨에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할 것 같아서 서둘러 아침 7시 30분에 출발했다. 동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바르샤바. 쇼팽과 퀴리 부인, 바웬사와 교황의 나라. 바르샤바에 가면 감동적인 영화의 라스트 신 같은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대로 조금 설레기도 하다. 한가한 전원 풍경을 보면서 12시 넘어 바르샤바에 도착했고 구시가까지 왔다.

 

 바르샤바의 첫 인상은 조금 우중충했고 평원도시의 널찍한 거리와 큼직한 건물들이 사회주의 냄새를 풍기는 듯 했다. 그러나 구시가 쪽으로 오니 다양한 얼굴의 역사 깊은 도시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지구의를 든 코페르니쿠스 동상 근처에서 호텔을 정했고 주말 서비스라며 2박에 하루치 320즐로티를 받는다. 호텔 분위기가 고급스러워 다소 황송한 기분. 대 만족이다. 바르샤바가 희망과 기대로 찾아온 우리 마음을 읽었나보다. 부라보~ 우린 바르샤바 거리로 나왔다.

바르샤바의 궁성

15, 16세기에 축조된 바르바르칸 성벽

 기세좋게 거리로 나왔지만 변덕스런 날씨는 지금이 여름인지, 늦가을인지 분간 못하게 스산하다. 거리의 사람들은 털코트에 털모자까지 썼고 비바람에 가로수 잎이 흩날린다. 여름옷을 겹겹이 껴입었지만 으스스 춥다. 그러나 기분좋은 것은 우리 호텔이 있는 이 거리가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로 볼거리가 줄지어 있는 ‘크라코프 교외거리’라는 것. 옛 귀족들의 대저택들과 코페르니쿠스 동상, 과학 아카데미본부와 바르샤바 대학, 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 십자가 교회와 쇼팽이 살던 집 예술 아카데미, 대통령 궁과 성 안나 교회, 아담 미츠키에비치 동상과 타데우시 코슈스코 동상, 잠코비 광장과 왕궁 등 올드시티의 모든 볼거리를 걸어서 다 볼 수 있는 거리였다. 행운이여....

 

 비가 그쳤다. 우린  잠코비 광장까지 왔다. 주말 오후의 잠코비 광장엔 바르샤바 시민들도 많지만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관광객들도 상당히 많다. 폴란드 수도를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로 옮긴 지그문트 3세 동상이 높이 솟아있는 광장엔 중세의 귀족들처럼 관광객을 실은 금빛마차가 포석 깔린 좁은 길은 달리고 관광기차도 땡!땡!땡! 종을 치며 출발한다. 자전거 Sightseeing을 하려고 줄선 젊은이들, 유럽의 광장문화는 도시마다 비슷하면서도 달라 흥미롭다.

 

 비스와 강을 끼고 있는 바르바칸 성벽으로 이어지는 자그마한 광장과 골목은 우리나라 인사동처럼 문화예술의 향기가 짙다. 빈자리 없는 광장 야외 카페에서 여름 한철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에 흥겨워하는 관중들이, 노 음악가의 바이올린 연주를 진지하게 듣고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조각가들이 만들고 있는 목공예품들이,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들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꽃가게들이, 젊은이들의 깜짝 이벤트에 폭소가 터지는 골목이나 볼거리들이, 먹거리가 있는 풍경들이 나그네를 절로 신명나게 한다.

대통령궁과 요셉포니아토프스키 왕자의 동상

와지엔키 공원에 있는 프리데릭 쇼팽 동상

 그러나 나그네를 정말로 신명나게 하는 것은 부럽기까지 한 이들의 시민의식과 질서의식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인데도 눈살 찌푸릴 일이 전혀 없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젊은이들도 엉킴 속의 질서라고 할까? 실례를 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다. 휴지 조각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도 쓰레기 통 인줄 모를 만큼 세련됐다. 아무렇게나 버려서 쓰레기로 넘쳐 나는 흉물스러운 우리나라 유원지나 공원의 꼴불견 쓰레기통이 안타깝다. 기분 좋은 표정과 선한 눈빛과 남을 배려하는 열린 마음으로 다같이 즐기고 신명 나는 유럽의 광장문화가 한없이 부럽다. 우리도 언제나 이런 문화를 가지게 될까? 월드컵 때의 ‘오~ 필승 코리아’의 질서의식이 자연스레 삶에 스며들 때는 언제쯤일까.... 시각을 바꾼 순간 모든 게 달라지는데....

 

 돌아오는 길에 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 십자가 교회 앞 야외카페에서 식사를 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뮤지션들의 수준이 상당하다. 뒤에 앉은 젊은 연인들이 분위기에 겨워 연신 키스를 한다. 그들의 모습이 하두 예뻐서 태극선 부채와 신랑신부 인형을 주었다. 한국을 잘 안다며 웃는 그들. 까바라지지 않은 부끄러운 듯 조신한 모습이 귀해 보인다.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아 아직 순수함을 잃지 동구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결핍이 아닌 풍요를 느낀다.

 

 목이 뜨끔거린다. 찬바람에 몸이 웅둥그러진다. 가로등 불빛이 미친 듯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비친다. 편안한 내 집과 가족이 보고싶다. 종종걸음을 걸으며 돌아갈 날을 세어본다. 

오늘의 주행거리 : 319㎞   호텔 비 : 320즐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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