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여행이 끝나는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밤

2003년 7월 7일 월요일 흐림(여행 65일째날)

바르샤바-토룬뤁-포츠난, 주행거리 485㎞, 주유량 33.05ℓ, 금액 PZL110.39-

 많은 걸 생각하게 했던 어제다. 그러나 오늘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날. 500km이상을 달려 국경근처 포츠난까지 가야한다. 아침 7시전에 출발하려고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Good Morning!”  먼저 와 있던 어제의 그 남자가 인사를 한다. “Good Morning!” 우리도 인사를 했다. 콧수염을 기른 체격이 좋은 남자는 터키사람이다.

 

 어제 아침식사시간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다가와 일본사람이냐고 물었다. 언제나 100% “제팬?” 한다. 자동응답기 처럼 “노! 코리안”했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더니 자신은 은퇴한 교사로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데 베이징은 물론 동양의 여러 나라들을 가봤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이라며 한국에 대해 궁금하게 많다고 한다. 첫째 잘 사는 나라라는 건 아는데 왜 학생들이 그렇게 경찰과 싸우는지 모르겠고 어딜 가나 일본사람들은 박물관 등 볼거리를 차근차근 자세히 보는데 한국사람들은 휙 보고 가는 게 이상하단다. 터키 남자의 한국관심은 고마운데 자꾸 대답이 궁색해진다. 우리의 90일간 렌트카 여행 스케줄을 얘기해주며 당신이 우리 같은 한국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뿐 한국도 깊은 문화를 지닌 나라여서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많은 얘기와 질문으로 아침식사시간이 길어졌던 어제였는데 그 터키 남자를 다시 만났다. 오늘 우린 토룬을 거쳐 내일은 독일로 간다고 했더니 "Have a nice trip" 한다.

 

 오늘이 여행 65일 째다. 그 동안 큰 도시에선 한국 단체 여행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대도시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선 한국사람은 없었고 일본 여행객들은 언제나 있었다. 우리의 여행 패턴은 아직도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고 일본사람들은 우리처럼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터키 남자가 말했듯이 일본사람들은 비교적 관람을 할 때도 조용히 질서 정연하게 무리져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유롭게, 성급하게, 이동하기 바쁜 경향이 있긴 하다. 하나라도 더 봐야하니깐 말이다. 어딜가나 제팬? 했고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노! 코리안 했었다. 10여년 전 캐나다 부쳐스가든을 돌아볼 때도 서양사람이 한국관광객을 보고하던 말은 지나가다 들은 일이 생각난다.

“저 사람들 이상한(crazy란 단어를 썼다)사람들이다. 이 아름다운 정원을 뛰어다니면서 본다”고 했던 말.

우리나라 여행문화도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젤라조바 볼라에 있는 프레데릭 쇼팽의 생가

쇼팽이 탄생한 집. "Big Man,Small House"

 우린 180여km 떨어진 코페르니쿠스의 고향 토룬으로 가는 길에 쇼팽의 생가 젤라조바 볼라를 보기로 했다. 바르샤바에서 54km떨어져있다. 아침 7시. 일찍 출발해서 포플러 가로수 길 양옆으로 누렇게 익은 밀밭이 넘실대는 들판을 달려 생가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농촌의 아침이 깨어나지 않은 듯 고즈넉했다. 숲과 공원으로 조성된 박물관이 된 생가는 월요일이어서 휴관이었고 쇼팽 음악제에 맞춰 정원공사가 한참이었다. 정원 안에 하얀 일자집이 있었다. 꽃을 심고 나무가지치기 작업을 하고있는 사람들에게 쇼팽의 집이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Big Man, Small House" 한다.

 

 북유럽 여행 때 노르웨이 베르겐 그리그의 집 앞 음악당에 있는 그리그의 실물크기 동상. 대 음악가의 이승에서의 모습은 조그맣고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그리그를 만든 것은 노르웨이의 자연과 친구들이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그리그 집에서의 감동이 다시 전해온다. ‘자연은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다’를 실감했던 북유럽 렌트카 여행은 두고두고 큰 교훈이 되었다. 쇼팽 생가를 찾아오는 길은 누렇게 밀이 익어 바람에 나부끼는 평화로운 농촌풍경이 이어졌다. 건강한 심신을 뿌리내리게 해주는 자연을 우린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가끔 강원도 고성엘 간다. 거진항에도 가고  더 북쪽에 있는 대진항에도 간다. 설악산은 또 얼마나 푸근한지. 그러나 강원도까지 가는 길가의 꼴불견 풍경들. 자연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텔, 모텔, 가든 등 제멋대로 지은 건축물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다. 북유럽 여행 때는 물론 이번 발칸, 동부, 중부 여행에서도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인위적인 시설물들이 차라리 정겨웠다. 젤라조바 볼라까지 오면서 누런 밀밭을 감싸고 있는 포플러나무와 자작나무와 드문드문 나타나는 소박한 민가가 있는 저 자연이 쇼팽을 만든 뿌리가 되었구나 하는 Big Man, Small House가 마음에 와 닿는다.  강원도 고성가는 길가 풍경이 떠올라 속상하고 화가난다. 긴 안목이 너나 나나 없는 우리. 60이 넘은 나이에 이렇게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신선한 공기, 무한한 자연, 남을 배려하는 마음, 순박한 인심 등이 있어서이다. 우리가 모두 잃어버린 것,  잊고있는 것의 소중함을 쇼팽의 생가가 일깨워준다.

13세기에 세워진 토룬의 구시청사

토룬은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가 탄생한 도시

 폴란드는 동부유럽에서 도로사정이 제일 뒤지는 것 같다. 불가리아보다는 낫고 루마니아보다 못한 것 같다. 평균 시속 60km정도여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굳은 날씨에 부부가 다 감기기운이 있어서 오늘은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떠돌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오버하게 된다. 3시간이나 달려서 오후 한시쯤에 코페르니쿠스의 고향 토룬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토룬의 첫인상이 참 품위있는 도시다 라는 느낌이다. 스쳤으면 후회할 뻔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1473~1543) 동상을 중심으로 올드시티는 광장과 중세건축물들과 장엄한 성당과 정연한 거리 등 현대인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예스러운 중세분위기가 관광객을 즐겁게 한다. 광장엔 관광객을 기다리는 삼륜차들이 죽 늘어서 있다. 비쩍 마른 키 큰 남자가 어금니가 빠져 앞니만 남은 잇속을 드러내고 선하게 웃음지으며 3륜자전거에 기대 서있다. 20 질로티(우리돈 6600원)에 30분 동안 구시가를 돌아보는 3륜자전거. 앞 칸에 손님을 태우고 뒤에서 운전수가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지극히 원시적인 수단이다. 좁은 골목길은 다녀야 했던 중세마차를 떠올리게 하는 3륜자전거다. 3륜자전거는 골목을 누비며 구시가를 안내한다. 발음이 세는 영어로 설명도 하면서 비수아 강이 보이는 언덕 위 성터까지 열심히 페달은 밟던 남자가 더운지 언더자켓을 벗어 자전거 뒷편에 질러넣는다. 미안해서 쩔쩔매는 우리. 두사람의 체중이 비쩍 마른 그 남자에겐 너무 벅찰 것 같아서다. 바람불고 추운 날씨에 우린 두겹, 세겹 옷을 껴입었는데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린다. 그만 끝냈으면 하는 심정이다. 팁으로 10즐로티를 주었더니 Thank You!를 연발한다. 비쩍 마른 남자의 순진무구한 웃음이 보양식 한그릇 잘 먹은 것 같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생가

토룬 구 시가의 주택지 골목길

 우린 올드시티에서 생크림과 과일과 여러 가지 토픽을 얹어 설탕을 뿌려주는 와플도 사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옛도시의 멋과 맛을 즐긴다. 광장 뒷골목에 있는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집으로 다시 왔다. 10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신부인 외삼촌 밑에서 자란 그가 1400년간 지속된 천동설을 부인하고 지동설을 주창한 것은 성직자로서의 70평생 삶의 응집이었으리라. 천동설이 지배하는 16세기의 절대 신권 앞에서 상식을 깨는 ‘과학혁명’의 시발점인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천지개벽이었으리라. 빨간 벽돌 2층집에서 태어난 핏덩어리의 울음이 엄청난 천지개벽으로 이어질 줄이야.... 2층 창문을 쳐다보고 앉은 동양인 부부는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우리여행에서 토룬을 포함시킨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서로를 칭찬하면서 3시 30분쯤 국경도시 포츠넨으로 떠났다. 가는 길목에 유적 하나를 더 보기로 했다. 2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Swiecko란 교회는 13세기에 지은 벽돌건물로 종탑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교회 뒷마당에서 발굴작업을 하던 학생들이 사람뼈가 발견된 곳을 붓으로 정리며 기록하던 일을 끝내고 돌아갈 차비를 한다. ‘폭풍의 언덕’이 생각 날 만큼 불어대는 바람과 비 뿌리는 날씨가 어찌나 사나운지 서둘러 포츠넨으로 떠났다. 국경도시 포츠넨으로 가는 길은 상습정체 구간인지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차가 서기만 하면 남자아이들이 달려와 진흙 튄 앞유리를 닦아주고 1유로를 달란다. 조금 움직이면 또 다가와 닦고 돈을 요구한다. 잔돈도 없는데 쉴새없이 반복한다. 특히 D자를 단 독일차는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부자나라 독일이 떨어뜨리는 떡고물을 먹고사는 가난한 폴란드 시골마을 어린이들의 얼굴에서 그래도 희망을 본다. 도로변에 모텔 사인이 있어서 메인도로를 빠져나와 나무숲 터널을 4km나 달려 들어왔다. 바르샤바를 떠난 지 12시간만이다.

오늘의 주행거리 : 485km  모텔 비 : 120 즐로티. 제2차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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