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으로 돌아오다

200년 7월 8일 화요일 맑음(여행 66일째날)

포츠난-베를린, 주행거리 300㎞, 주유량 34.72ℓ, 금액 PZL108-

 이곳은 포츠난 외곽으로 국경에서 180km 떨어진 곳이다. 북향대문의 남향정원 집처럼 이 모텔은 북쪽입구의 썰렁함과는 달리 방에서 보이는 남향의 확 트인 자연경관이 기막히게 좋다. 넓은 호수를 끼고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룬 호숫가 갈대숲 사이엔 물오리들이 헤엄을 치고 맑은 호숫물에 무리 지어 다니는 고기들이 환히 보인다. 부지런한 동네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다. 남자는 폴란드 말로, 나는 한국말로 서로 얘기를 한다. 열댓마리 잡은 고기를 물속에 넣어놓고 그도 웃고 나도 웃으며 얘기를 한다. 오늘은 날이 활짝 개였다. 잔잔히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에 호수면이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아~헝가리 발라톤 호수의 아침처럼 청정함이여.... 파란하늘과 하늘보다 더 파란 물빛과 녹색 숲의 환상에 한점 그림처럼 낚싯대 드리운 촌부가 아름답다. 제2차 여행을 마감하며 우린 폴란드를 떠났다.

 

 국경까진 180km, 다시 베를린까지 100km를 더 가야한다. 독일로 가는 마음이 마구 설렌다. 더욱이 한국사람이 하는 민박을 예약 해놨으니 더욱 그렇다.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울에 전화를 했다. 받는 가족보다 내 목소리가 더 소프라노다. 20여일 후면 집에 간다고. 주객이 전도되어 집에 가기 위한 여정을 밟는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

 

 김치민박집에 도착했을 땐 오후 3시 20분이었다. 번화한 베를린 시내에 있는 민박집까지 오는 동안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지 행복했다. 나는 식성이 남편과 달라서 빵이나 버터, 햄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동안 버티기 작전으로 견뎌왔던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김치를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치식당을 운영하는 김영자 사장은 33년 전 서독 간호사로 왔다가 베를린에 정착했고 김치라는 한식당을 운영한지 23년이 되었다고 한다. 4년 전부터 자기 집을 민박으로 활용하고 있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자그마한 김사장은 딸이 변호사 자격의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다며 두 자녀를 키우는 보람으로 세월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김영자 사장도 강인한 한국여성이었다. 통일이 되기 전엔 이곳이 한국의 명동처럼 베를린의 번화가였는데 통독 후 동베를린 쪽으로 신흥세력들이 옮겨가서 그곳이 서울의 강남처럼 되고 이쪽은 조금 죽은 편이라고 했다. 시티투어 후 김치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브란덴부르크 문

 관광객이 많은 베를린은 매시간 시티투어가 있어서 한시간 반 동안 2층 오픈버스를 타고 시내구경을 했다. 거대한 독일에 또 다시 놀란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뻗어있는 운터 덴 린덴대로를 지날 땐 이 대로에서 히틀러가 손을 들고 군대의 행진을 열병하던 모습과 폴란드 나치수용소의 참혹함이 오버랩 되어 진저리쳐진다. 이런 섬뜩한 심정은 일본을 여행했을 때도 경험한 적이 있다. 고정관념과 편견도 작용했겠지만. 하여간 완벽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도시 분위기에 조금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시티투어를 끝내고 김치레스토랑으로 갔다.

 

 김치 레스토랑의 한식부페가 10.6유로다. 김치국, 미역국, 것절이, 김치, 물김치, 무채무침, 깍두기, 숙주나물 잡채, 전야 등 푸짐한 음식. 그 영원한 고향. 의, 식, 주 중 다른 것은 동화되거나 무늬만이라도 흉내를 내는데 음식은 아니다. 정노환을 먹으며 빵과 햄, 소시지를 소화시키던 속이 오늘은 무작스레 먹었는데도 끄떡없다. 음식은 고향이고 어머니다. 김사장은 서독에 입양된 한국아이들을 양부모가 데리고 오는데 김치를 좋아하고 잘 먹는다고 했다. 물어보면 한 살 전에 입양됐다고 한단다. 신기한 일이라며 김사장은 이 문제를 의학적으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 이 흐뭇한 나른함이여~ 솜이불처럼 푸근한 마음이여~   오늘의 주행거리 : 300km   김치민박 : 50유로

[목 차]  [다음날 2003년 7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