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상품이 된 베를린장벽 조각들

2003년 7월 9일 수요일 비,맑음(여행 67일째날)

베를린

 늦잠을 잤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사장이 손수 끊여준 김치찌개와 뒤뜰에서 따온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먹는 아침밥이 꿀맛이다. 이 행복감이란.... 김사장은 모처럼 조국에서 온 동년배를 만나 지나온 얘기, 자녀들 얘기, 한국 얘기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출근을 했다. 식탁에 있는 한국신문을 집어들었다.

 

 궁금하던 한국소식을 허겁지겁 김치찌개 먹 듯 들여다본다. 그러나 여전히 어지럽고 답답한 기사들로 꽉 찬 신문을 보며 속상하고 안타까워 울고 싶어진다. 발칸유럽과 중,동부유럽을 여행하면서 거대한 대륙에 인접해있는 국가간의 가시적인 국경개념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개방적인 환경과 자유로운 소통이 현대사회의 흐름이다. 그러나 나라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다름이 느껴져 이것이 진정한 국경임을 알게 된다. 그 다름. 말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고, 도로사정이 다르고, 거리의 분위기가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사람들의 인상이 다르고, 냄새와 공기가 다르다. 그 다름은 무엇일까? 그 다름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한참을 떠돌다가 그 나라를 떠날 때쯤 되면 와 닿는 게 있다.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의식 수준이랄까? 비가시적인 전통이랄까?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랄까? 이런 다름이 그들의 분위기가 되고, 힘이 되고, 경쟁력이 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어떤가. 분열과 가르기 기사로 꽉 찬 신문을 보면서 우물안 개구리 같은 우리 꼴이 한심해서 화가 난다.

 베를린 의사당 지붕 위의 유리 돔

 독일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점심식사 후 비오는 거리로 나왔다. 빗속에서도 투어버스가 바쁘다. 깨끗한 거리, 곳곳에 푸른 공원이 있는 도시, 베를린 장벽, 소련군복 차림의 소년 병사와 미군복 차림의 미군병사가 마주 보고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 헐린 베를린 장벽을 표시하는 두줄의 돌 라인, 동베를린 쪽에 남겨둔 썰렁하고 삭막한 감시건물의 일부, 그 뒤로 통일 후 새로 지은 우뚝한 현대식 건물들과 명품 shop들, 활기찬 거리분위기와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시민, 옛 소련을 추억하는 물건들이 즐비한 기념품 가게, 메달, 훈장, 방독마스크, 모자, 투박한 망원경, 무너진 베를린 장벽조각들, 군화, 장갑 등..... 몇km남겨둔 장벽엔 관광객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인솔로 현장학습 온 학생들도 많다. 장벽엔 생생한 사진들이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150여명이 장벽을 넘다 사살된 현장엔 무덤들이 남아 말없이 그때를 증언하고 있었다.

 베르린 세계문화의 전당

 1873년에 왼공된 전승기념탑

 동베를린이었던 어느 거리에서 나부끼고 있는 북한 인공기와 김일성 사진이 내 걸린 북한 대사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닫힌 대문 안에서 놀고 있는 대여섯명의 아이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찡함에 몸이 뻣뻣해진다. 흥미롭고 인기있는 관광상품이 된 역사 속으로 살아진 이념의 대결현장에서 아직도 이념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면하는 마음이 섬뜩하다. 조선인민주의 민주공화국 팻말과 인공기. 동백림 사건 등 치열한 이념대결의 중심에 있었던 베를린은 역시 정치적 이미지로 강하게 다가온다. 아픈 기억으로, 아직도 풀지 못한 우리현실의 상처로 다가온다.

[목 차]  [전날 2003년 7월 8일]  [다음날 2003년 7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