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민박집을 떠나며

2003년 7월 10일 목요일 흐림(여행 68일째날)

베를린-괴팅겐, 주행거리 358㎞, 33.83ℓ, 금액 EUR33.83-

 김치 민박집을 떠났다. 제3차 여행이 시작됐다. 약 20일 간의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잘츠부르크 여행이다. 98일 예정이었던 우리여행이 동생의 베를린 전시회가 연기되는 바람에 일주일 정도 앞당겨졌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각오로 떠나지만 아차하면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귀국하면 된다는 여유가 심리적 부담을 줄여준다. 지긋지긋한 숙소 잡기 전쟁에 지친 우린 여행의 참 맛 불감증에 걸린 지 오래다. “서울서 자나 여기서 자나, 서울서 사나 여기서 사나”라고 억지를 부려보지만 집이 그립고 가족이 그리운 원초적 본능을 어쪄랴....

 

 115번 고속도로를 타는데 두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들어셨다. 이 정도쯤이야.... 호기를 부려본다. 우린 메르헨 가도의 첫 도시 괴팅겐으로 간다. 독일의 민속학자이며 설화문학의 창시자 그림(Grimm)형제. 형 야곱(1785-1863년)과 동생 빌헤름1786-1859년)은 전해오는 민요와 민담을 채집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가정과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백설공주, 엄지공주, 늑대와 7마리 아기염소, 황금거위, 피리부는 사나이,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브레멘 음악대, 개구리 왕자 등이 동화. 그림형제의 동화 무대가 된 메르헨 가도는 그림형제가 태어난 하나우(Hanau)에서 브레멘(Bremen)까지 이어지는 600여 km의 목가적인 도로이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해주는 거울이다’라고 말한 그림형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어주던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동화 속 주인공들이 태어난 고향 메르헨 가도의 시골마을을 구경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 끝마무리를 장식하려고 한다.

 

 과연 독일이다. 끝내주는 고속도로 컨디션과 푸른 숲과 깔끔한 도로변 자연, 합리적 사고가 바탕인 정연한 분위기의 독일을 도로에서도 느낄 수 있다. 김치 민박집에서는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독일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어서 또 얼마나 놀랐는지... 웬만하면 불을 켜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만 불을 켠다. 복도엔 으레 촛불을 켜놓았고 싱크대에도 물을 받아놓고 그릇을 담가두었다가 한꺼번에 씻는다. 그릇을 담가두는 물도 고양이 오줌만큼 옹색해서 ‘물쓰듯한다’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식사를 하고 그릇을 씻을까 말까 망설였고 시원스레 수돗물을 틀어놓고 하는 설거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전기세, 물세의 누진세가 엄청나서 아껴 쓰는 것이 독일사회의 상식이라고 했다. 김사장은 한국학생들이 오면 물과 전기를 아끼지 않아서 잔소리를 한다고. 철저히 지키고, 철저히 요구하는 사회다.

 괴팅겐의 오리 소녀 분수

 괴팅겐은 독일의 유명한 대학도시이다

 3시간을 달려 괴팅겐에 도착했다. 괴팅겐은 제 2차 대전 중 폭격을 받지않는 대학도시로 30명 이상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대학 괴팅겐 대학이 있는 곳이다. 센트름 주차하우스에 주차를 하고 올드 시티 보행자거리를 찾아갔다. 오후 2신데 거리는 활기차다.

“아빠!”

남자아이의 목소리.

환청인가? 아니 꿈을 꾸나?

“아빠! 다 됐어!”

아~ 달콤한 우리말

모자를 벗고 주위를 둘러본다.

 

 젊은 아빠와 5살쯤 된 아들이 자전거 보관대에서 자전거를 빼고 있었다. 청년 아빠와 유치원생 아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다. 그들의 모습에선 언제나 희망이라는 단어가 후광처럼 빛나는 것 같아서다.

"한국분이시군요."

내가 먼저 여행중이라고 인사를 했다. 괴팅겐 공대에 다닌다는 젊은 아빠는 괴팅겐 대학엔 한국유학생들이 꽤 많은데 자신은 학위를 따려면 몇 년 더 걸릴거라고 했다. 유학생이 많다는 듣기좋은 말. 허리띠 졸라매고 보릿고개를 넘으면서도 자식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산 우리 부모님들. 그 자식의 자식들이 이젠 지구촌에 퍼져 있다. 철저한 독일정신과 접목된 신 보릿고개 정신이 우리의 미래 희망으로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젊은 아빠와 구시가를 돌아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리악사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귀에 익고 광장 중앙에 있는 오리아가씨 동상이 앙증맞다. 한 손엔 오리를, 또한 손엔 물주전자를 든 아가씨는 세상에서 키스를 제일 많이 받은 아가씨라고 한다. 괴팅겐대학 학생들이 시험에 패스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 거위아가씨에게 키스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행복한 아가씨인가! 그림형제 동화에도 등장하는 오리아가씨 동상주위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휴일같은 도시 괴팅겐을 돌아보고 우린 괴팅겐 유스호스텔을 찾아 떠났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백미러로 보며 그들의 어깨에서 든든한 한국의 미래를 본다. 

오늘의 주행거리 : 358km  유스 호스텔 : 4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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