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의 고향마을을 찾아서

2003년 7월 11일 금요일 맑음(여행 69일째날)

 

괴팅겐-알스펠트-린들라, 주행거리 345㎞, 주유량 36.27ℓ, 금액 EUR39.50-

 유스호스텔 3층 작은 방. 떠날 채비를 한다. 대학도시여서 이곳은 유난히 젊은이들이 많이 투숙했다. 뽀송뽀송한 시트와 시설이 얼마나 깔끔한지. 복도엔 휴지 하나 떨어진 게 없고 샤워실도 방금 샤워를 하고 나갔는데 막 청소를 끝낸 샤워실 같다. 머리카락 한올도 떨어진게 없이 바닥에 물 몇 방울이 고작이다. 식당도 식사 후엔 빵부스러기를 깨끗이 치우고 행주로 테이블을 싹싹 닦고 나간다. 쨈을 덜어먹는 그릇도 아이스크림 담는 과자 같아서 다 먹고 나간다. 철저하고 합리적인 의식. 언제쯤 우린 이들의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여름 휴가철, 쓰레기장이 된 피서지의 일그러진 우리자화상이 떠올라 씁쓸하다. 언젠가 TV에서 소프라노 신영옥씨가 독창회를 위해 고등학생 후배를 동행하고 지방 호텔에 머물면서 며칠을 보내는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그녀 역시 이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는걸까.... 어제 만난 젊은 아빠와 어린 아들에게서 신한국인상을 그려본다.

 

 카셀을 지나 메르헨 가도의 조용하고 아담한 작은 마을 홈베르그로 들어갔다. 마을 중심에 있는 오래된 성으로 올라갔다. 한눈에 들어오는 평화로운 전원풍경. 독일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이렇게 작고 평화로운 그림이 있다니.... 욕심인지, 부러움인지 이 마을이 독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편의 동화가 저절로 써질 것 같은 풍경이, 200여 년 전에 그림형제가 민담들은 채집하고 머물고 다녔을 골목이 바람빠진 공처럼 무뎌진 내 여행의지에 불을 지피는 부싯돌이 된다. 더듬이를 세상 밖으로 내밀고 열심히 세상을 경험해야지 다짐한다.

 1512년에 세워진 알스펠트 시청사

 알스펠트는 동화 "붉은 두건"의 무대이다

 마르브르크를 지나 동화 ‘붉은 두건’의 무대가 된 알스펠트로 들어왔다. 옛날 그대로의 모양을 간직하고 있는 목조가옥들. 예술적이기까지 한 대들보나 문짝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르웨이의 북극권도시 트롬쇠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빠졌던 이후 다시 경험하는 아름다움의 충격. 이 감흥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도대체 지금이 몇 세기지? 아니 몇 세기, 몇 세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원이고 실재이고 현실인 동화의 도시 알스펠트가 나그네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엄지공주와 개구리왕자와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이야기가 탄생한 고향마을 풍경들이 감동을 준다. 이런 곳에서 그들이 태어났구나. 우리와는 너무 다른 자연이 그들의 고향이었구나 하는 머리 끄덕임이 목가적 풍경을 보며 끝일 줄 모른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또보고 또보고 뒤돌아보며 알스펠트를 떠났다.

 

 오랜 여행을 하다보면 본능적으로 영감이나 예감, 직감이 예민해진다. 그날의 운세(?)를 점치게 되는데 그게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린들라 유스호스텔을 찾아가면서 자꾸 고개가 갸웃둥해진다. 힘들게 찾아온 숙소는 초등학생들이 많아서 시끄러웠고 42유로나 하는 방값은 카드는 안되고 현찰만 된다고 한다. 여행 끝무렵의 지친 난 잠자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온통 밀밭뿐인 언덕 위에 식당을 겸한 호텔을 찾을 때까지 산 넘고 물 건너 지뢰밭을 헤쳐온 기분이다. 휴~ 하루하루가 숙소 때문에 이렇게 치열할 수가 있을까? 일박에 56유로다. 등골에 진땀이 나던 마음이 안정을 찾는다. 집을 떠난 지 69일 째다.

오늘의 주행거리 : 345km   호텔비 : 56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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