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패배한 워털루 격전지

2003년 7월 14일 월요일 맑음(여행 72일째날)

 

브뤼셀-워터루-룩셈부르크, 주행거리 320㎞, 주유량 30.28ℓ, 금액 EUR31-

 오늘은 벨기에를 떠나 룩셈부르크로 간다. 아침 6시 반부터 떠날 채비를 했는데도 어제 독일학생들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식사가 끝날 때를 기다리다 보니 우리의 출발시간도 늦어졌다. 식사시간을 기다리면서 루벤스의 고향 안트베르펜을 보고 가자는 나와 룩셈부르크로 가는 방향에 있는 나폴레옹의 격전지 워터루를 보자는 남편과 은근히 신경전을 벌렸다. 난 벨기에에서 루벤스를 꼭 보고싶었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 루벤스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있는 독일 뮨헨에서 루벤스를 만날 수도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데 사소한 일로 감정이 확 폭발했다. 남편에게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생각만 한다고 퍼부었다. 그래도 뒤틀린 감정이 가라앉질 않았다.

 

 긴 여행을 하면서 차질없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남편을 보고 기계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날의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스케줄을 점검한 후에야 자는 남편을  보고 질리곤 했다. 나는 초저녁잠이 많다. 모닝콜이 필요없을 만큼 새벽같이 일어난다. 그대신 남편은 아침잠이 많다. 남편은 사소한 일상적인 일이나 반복적인 일을 꾸준히 잘한다. 그러나 나는 반복은 딱 질색이고 변화와 다양성과 새로운 시도를 좋아한다. 남편은 미리미리 준비하고 나는 즉흥적인 짜릿함을 즐긴다. 그래서 부부싸움의 뇌관은 늘 나다. 남편의 빈틈없는 준비와 꼼꼼한 계획성 없인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를리 없는 나지만 긴 여행의 피로가 겹치다 보니 사소한 일에 뇌관이 자꾸 터진다.

 

 9시가 훨씬 넘어서 브뤼셀 남쪽 20여km떨어진 워털루를 향해 떠났는데 잔뜩 부은 감정 때문인지 길을 자꾸 놓쳐 2시간 이상을 헤맨 끝에 도착했다. 부부합작 여행에서 한쪽이 삐끗하니까 모든 게 수월치 않다. 그놈의 나폴레옹 전쟁터는 안 봐도 좋은데.... 안트베르펜에서 루벤스를 보는 것이 훨 낳을텐데.... 꼬인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격전지인 워터루

 1815년 6월 웰링턴 장군의 승리로 나폴레옹의 백일천하에 결정타를 입히고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은 격전의 현장 워터루. 5만명의 젊은이들이 순식간에 죽어 간 피비린내 나던 싸움터였던 들판은 한가로운 초원으로 바뀌었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푸른 밀이 익어가는 전원풍경이 한가롭기만 하다. 평평한 격전지 한가운데에 인공으로 만든 45m 높이의 라이언 언덕이 높다랗게 솟아있고 226계단을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나폴레옹군의 대포를 녹여만든 28톤이나 되는 검은 숫사자 상이 아득히 프랑스를 노려보고 있다. 라이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평원은 200년 전 전쟁의 함성을 상상하기엔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라이언 언덕 밑에 있는 워터루 전투 기념관인 파노라마 관은 대단했다. 1912년 프랑스 화가 뒤물랭(Dumoulin)이 그린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이 110m나 되는 천에 생생하게 재현되어있다. 둥근 화면에 원근법을 써서 인물의 돌출효과를 극대화한 사실적인 전투장면들이 격렬하다. 한 예술가의 집념의 결실에 머리 숙여진다. 남편의 기계적인 천편일률에 싫증이 났던 내가 스스로 반성한다. 한결같은 꾸준함 없이 어찌 결실을 맺으랴. 10여일 남은 여행을 위해 사사로운 감정은 지워버리자고 다시 다짐한다.

 

 워털루 전쟁터를 보고 우린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를 향해 떠났다. 국경을 통과해서 룩셈부르크로 들어오니 지금까지 봐왔던 평평한 지형과는 다른 굴곡이 심한 지형이 새롭다. 성채 밑 산기슭의 유스호스텔에 7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했다. 3층 서향 방은 불같이 덥고 신축 중인 유스호스텔 공사가 시끄러워 짐만 방에다 달랑 내려놓고 유스호스텔을 빠져 나왔다.

 룩셈부르크 구시가

 룩셈부르크의 보크 포대

 룩셈부르크시는 첫인상부터가 평원 위에 세워진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해발 400m이상의 융기준평원과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특이한 지형과 계곡 위의 성채가 도시를 깊고 장엄하게 한다. 변화무쌍한 협곡과 강, 언덕 위의 성채와 옛 건축물들이 식상한 평면화가 아닌 개성강한 설치미술을 보는 것 같아서 이채롭다. 룩셈부르크시는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구시가 왕궁 옆 광장에서 city of festival in summer가 한참이다. 맥주를 마시여 여름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레스토랑, 브라스밴드의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 꽃다발을 건네주는 아가씨의 야한 차림새에 흥은 더욱 고조된다. 불 밝힌 광장의 열기와 구시가의 중후한 멋과 브라스밴드의 웅장한 사운드가 썸머 페스티벌의 절정을 이룬다.

오늘의 주행거리 : 320km  유스호스텔 2박에 :72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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