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슈바빙 거리에서

2003년 7월 17일 목요일 맑음,비(여행 75일째날)

 뮌헨

 시티투어를 했다. 인구 130만의 독일 제3의 도시 뮌헨의 첫인상은 남부 독일의 중심도시답게 큰 도시라는 것, 예술의 도시, 맥주의 도시답게 화려한 건축물들과 레스토랑도 많다는 것이다. 시립 미술관과 푸라우엔 교회, 국립박물관 등을 투어버스는 한시간 반정도 뮌헨 분위기를 보여준다.

 뮌헨의 시청사와 마리엔 광장의 관광객들

 1972년 뮌헨 올립픽 경기장

 시티투어를 끝낸 우린 뮌헨의 중심 마리엔 광장으로 갔다. 네오 고딕 양식의 시청사 종루에 시계 글로켄슈필 앞에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여러 번 본 시계탑의 종소리와 인형들의 춤이 새로울 것 없는 난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더 생생한 자극을 받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정의 밧데리가 떨어져 가는 난 광장의 열기에서 다시 에너지를 충전한다. 잔뜩 흐렸던 날씨가 결국 비를 쏟아 붓는다. 호텔로 돌아와 우산과 덧옷을 챙겨 입고 오후 4시가 넘어서 다시 시내로 나갔지만 뮤지움은 모두 문을 닫아,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 공원으로 갔다.

 

 항해하는 배처럼 와이어를 엮어 만든 메인 스타디움과 부대시설물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련미에 흠이 없다. 테러로 이스라엘의 아까운 젊은 선수들이 희생되었던 아픈 기억의 뮌헨 올림픽. 지금도 계속되는 이스라엘과 팔에스타인의 피의 테러가 9.11사건으로 확대된 오늘이 아프다. 시내를 배회하던 우린 전혜린이 그렇게 예찬한 슈바빙을 찾아가기로 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억세게 내리는 비를 맞고 서있는 거리는 노천카페의 둥둥 걷어올린 텐트가 을씨년스러울뿐 썰렁한 거리는 꽁지 빠진 수탉처럼 볼품이 없었다. 뮌헨 예술과 유행의 중심지로 예술가와 학생, 멋쟁이 젊은이들이 거리를 누비고 화랑과 소극장, 카페, 바, 레코드가게는 물론 재즈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가 화끈한 거리라고 전혜린이 그렇게 예찬했던 슈바빙은 이 슈바빙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러면 그 슈바빙은 어딜까? 우산에 빗방울이 튀는 소리만 요란하다.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물었더니 내가 묻는 슈바빙은 자기도 모르겠다며 이 길은 따라 2~3km 더 가보란다. 토마스만, 릴케, 칸단스키 등이 즐겨 찾았던 거리에 황혼이 물들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낭만은 흔적도 없고 비에 흠뻑 젖은 바지가 종다리에 자꾸 감겨 철떡거린다. 대학로 거리보다 더 썰렁한 거리를 걷다가 다시 돌아섰다. 내가 기대하고 찾던 뮌헨도 슈바빙도 빗속에선 그 참모습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날씨라고 투덜대기엔 날씨가 너무 춥고 사나워 그만 호텔로 돌아왔다. 일박에 69유로인 종갓집 종부의 손길 같은 호텔이 날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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