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루벤스를 만나다

2003년 7월 18일 금요일 맑음(여행 76일째날)

 뮌헨

 호텔의 아침식사가 너무 좋아서 돈 값이 이렇게 다르구나를 실감한다. 특히 복숭아 요구르트는 일품이다.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고 우산까지 챙겨 나왔다. 그러나 날씨는 변덕을 멈추고 햇빛이 쨍쨍 난다. 루벤스를 보기 위해 루벤스의 컬렉션으로 유명한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으로 갔다. 루벤스와 렘브란트를 비교해 보고싶어서다. 부와 명성을 모두 누린 역사상 가장 혜택받은 화가라는 루벤스. 그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세속적인 성공과 행복을 다 누린 루벤스의 예술에서는 어떤 감동과 영감을 얻을까? 영화 ‘퐁네프의 다리’에서 여주인공이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에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싶다며 애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루벤스의 그림을 더듬듯이 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루벤스와는 대조적으로 만년에 모든 불행과 싸우면서 인간내면을 깊이 통찰한 그림을 그린 루벤스와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렘브란트. 나는 렘브란트를 7년 전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에서 만났다. 그의 대표작 ‘야경’보다 ‘노인의 초상’이라는 소품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그림이 어찌나 절절하고 애달픈지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렘브란트를 ‘혼의 화가’ ‘명암의 화가’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그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었다.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17세기 바로크회화의 대표자로서 다채롭고 충실한 생활로 높은 명성과 부를 얻었고 많은 제자에게 둘러싸여 루벤스 특유의 장대한 예술을 전개하며 역사화, 종교화 등 모든 장르에 걸친 다채로운 예술활동을 하였던 그는 외교관으로도 활동하였다. 온화하며 여유있는 인품과 예술로 유럽 각국의 왕실로부터 큰 존경과 애호를 받은 그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사망하였다.

 

 렘브란트( 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1669)는 네덜란드 화가로 명암의 대조가 분명한 그의 작품처럼 그의 삶도 부와 명성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렸던 전반기와 모든 것을 잃고 그림 그리기에 전념했던 후반기의 대비가 너무나 뚜렷한 화가다. 높은 종교적 정감과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한 그의 작품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스며 있다. 명문 출신의 부인과 결혼하여 많은 제자를 양성한 10년 동안이 그의 명성과 생활의 절정기였고 그 이후는 당시 유행인 기념촬영적인 단체 초상화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적인 깊이와 인간성을 중요시하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그는 그의 예술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점 명성을 잃어갔다. 파산선고와 아내와의 사별, 외아들의 죽음 등 꼬리를 문 불행 속에서도 렘브란트의 예술은 더욱 깊어갔다. 렘브란트는 1669년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유대인 지역의 초라한 집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죽은 지 100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위대한 예술성이 입증되었고 그의 예술은 시대를 초월한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유럽 회화를 대표하는 최대의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알테 피나코테크의 루벤스의 컬렉션

 뮌헨 카를 광장의 분수

 관람객이 별로 없는 이른 시간이어서 나는 루벤스 관으로 먼저 갔다.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으려고 프레임에 손을 대는 순간 ‘삐웅 삐웅’ 요란하게 경보음이 울린다. 깜짝 놀라 얼른 프레임에서 손을 떼었는데도 ‘삐웅 삐웅’ 경보음이 계속 울린다. 박물관 직원들이 우루루 몰려왔고 벌서는 학생처럼 한 손을 들고 푼수처럼 웃고 서있는 나를 보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같이 웃는다. 도둑이 아님을 서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황당해서 쩔쩔매고 있는 남편의 손에 여전히 사진기가 들려있었다. 난 숨을 내쉬었다. 가끔 신문에서 그림을 도둑맞았다는 기사를 보는데 이렇게 철저한 보안경비속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놀란 가슴이 겨우 진정된다.

 

 루벤스 관에는 역사화, 종교화 등 대작들이 많았다. 현란한 그의 작품들이 350여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폭발하는 힘과 넘치는 생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화려하고 장대한 루벤스의 작품을 궁정적(宮庭的) 바로크회화의 집대성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렘브란트와는 다른 그의 작품경향도 이해할 수 있었다. 루벤스에게 질투(?)를 느낀 내가 루벤스관을 나오면서 그래도 인간미 넘치는 렘브란트의 그림이 더 영혼을 울린다고 중얼거린다. 그래서 그를 시민적 바로크회화의 최고 거장이라고 하나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반 다이크 등 세기의 화가들이 총 집합되어있는 미술관을 대충 들러보고 나왔다.

 

 마리엔 광장으로 오려고 3번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유모차를 끌고 오던 동양여인이 “어머! 한국분이시네요!“ 한다. 내가 태극선 부채를 들고 있어서 금새 알아본다. ”한국분이군요“ 나도 반가웠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연구실에 있는 민수진 박사였다. 같이 대학에 근무히는 독일인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있는데 둘째딸 클라라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우리내외를 보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만난 것 같다며 반긴다. 작은 체구에 지극히 한국적 미이지의 민박사. 그녀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내 딸처럼 기특하고 뿌듯하고 이뻤다. 그녀가 마리엔 광장에 아주 오래된 바바리안 전통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이 있으니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민수진 박사와 2시간이 넘도록 점심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10월에 한국에 잠깐 나가는데 서울서 다시 만나자며 헤어질 때 17개월 됐다는 클라라가 ”함이~~ 아녕~~“ 한다. 피는 물보다 진했다.

 

 비테르스바흐 궁전 안에 있는 레지덴츠 박물관과 보물전 박물관에선 한국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이들 중에서 민수진 박사 같은 자랑스런 한국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들은 우리의 희망이니깐. 뮌헨의 30여 개가 넘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욕심을 이쯤해서 접고 독일에서 가장 화려한 궁정문화를 꽃피었던 바이에른 왕국의 아름다운 궁전으로 뮌헨이 자랑하는 님펜부르크 성으로 가기 위해 19번 트램을 탔다. 뮌헨 시민들의 표정에서 안정된 사회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1664-1748년에 건축된 님펜부르크 성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극장

 님펜부르크 궁전은 정말 대단했다. 200ha에 달하는 땅에 넉넉히 자리잡은 궁전은 1664-1748년에 건축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호수와 분수, 연못, 정원 등이 완성되어 아름다운 궁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호수의 물새들과 백조무리들, 아름다운 정원, 숲속 에는 작은 궁전들. 특히 벽과 천장이 흰색과 은색의 거울로 장식한 아말리엔부르크 궁은  화려함의 극치였고 왕가의 마차를 전시해놓은 마치박물관도 볼만했다. 넓은 정원과 새와 호수와 궁전의 어우러짐이 멋지고 자연스럽다. 샛강에서 물새들이 노는 모습을 그리는 화가도, 벤치에서 얘기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도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이자어 강과 막시밀리아네움 궁전을 보면서 종이인형 작가 김영희의 체취가 느껴진다. 강인한 민들레처럼 뮌헨에 뿌리내려 한국과 독일의 문화를 아우르는 그녀가 이자어 강에 걸린 다리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일이면 떠날 뮌헨인데 전혜린과 슈바빙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 슈바빙을 찾아갔다. 어제와는 다른 활기가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막연한 기대는 허탈감으로 채워지고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엉거주춤 앉아있는 우리가 스스로도 어색해서 미련을 접고 일어났다.

 

 뮌헨의 유명한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 해마다 9월말이면 세계 최대의 맥주축제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 광장이 우리가 묶은 호텔 바로 옆이다. 두 달 후에 열릴 축제준비는 이미 시작되었고 골조공사가 한창이다. 16일 동안 펼쳐지는 축제에서 춤을 추며 마시는 맥주가 520만L 이상이 된다는 옥토버페스트. 이 기간 중에 축제에 모이는 사람이 무려 700만 명이나 된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 넓은 공터다. 황량한 한 공터가 두 달 후엔 열광의 도가니로 변하는 상상은 아직 낯설지만 벨기에 그랑 플라스 광장의 열기를 생각하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도 이와 비슷한 붉은 악마의 열기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살맛 나고, 들뜨고, 힘이 솟구치던 그 신바람을.... 10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온 우린 또다른 내일을 위해 짐을 주섬주섬 쌌다.

[목 차]  [전날 2003년 7월 17일]  [다음날 2003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