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부르크의 교훈

2003년 7월 21일 월요일 맑음, 비, 구름(여행 79일째날)

짤츠부르크-인스부르크-퓌센, 주행거리 339㎞, 주유량 38.90ℓ, 금액 EUR35-

 가족실이 있는 짤츠부르크 유스호스텔은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많아서 불편없이 잘 지냈다. 오늘은 다시 독일로 들어가 퓌센까지 갈 예정이다. 로맨틱가도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게 되면 90일 여행의 막을 내리게 된다. 생각만 해도 감개무량하다.  A1 링로드를 타고 다시 뮌헨가는 방향의 도로를 타고 독일로 넘어왔다. 남부독일의 아침풍경이 말 할 수 없이 아름답다. 햇살이 퍼지기 전 고즈넉한 농촌풍경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비디오 카메라를 계속 돌린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여유 때문인지 마음이 가볍다.

 

 땅 넓은 독일은 문화도 자연도 무궁무진하다. 호수에서 잠시 쉰 우린 인스부르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까지 평화로운 전원풍경과는 다른 거친 알프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너무 달라서 서정성 짙은 영화와 서사성 짙은 영화 두 편을 동시에 보는 것 같다. 변화무쌍한 알프스 산은 멀리서보면 뿌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은데 회갈색 바위뿐인 정상과 푸른색을 띠는 중간부분의 투톤이 산을 그렇게 보이게 한다.  여행을 시작할 때 불가리아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본 닿을 듯 가깝게 보이던 알프스 산들의 희뿌연 색이 눈이기도하지만 회갈색 바위였음을 알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무궁무진한 모습. 내가 알고있는 것의 보잘것없음이여.... 먼지같은 일부분인데 왜 그리 고집을 부리며 살고있을까....

 

 점점 산 깊은 곳으로 가고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날씨의 변화이다. 구름이 끼었다, 흐렸다, 진눈깨비가 날렸다, 바람이 불다, 다시 개이기를 반복한다. 날씨 변덕 못지않게 자연의 변화도 만만치 않다. 금방 내 앞으로 쏟아질 듯 가로막던 위압적인 회갈색 바위산이 슬쩍 비껴서며 다소곳해지고 완만한 푸른 산등성이의 빨간 지붕의 집들의 하늘아래 정겹다. 직선거리 없는 도로는 꺾어지고, 돌아가고, 휘어지며 오르락내리락이 심해 지루할 겨를이 없다. 아득히 산꼭대기에 스키 점프대가 보인다. 두 번씩이나 동계올림픽이 열린 인스부르크여서 스키어들이랑 알피니스트들이 사시사철 붐비는 겨울스포츠의 도시다. 오전 11시 짤츠부르크 유스호스텔을 출발하여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다시 오스트리아로 국경을 넘나들며 3시간만에 180km 떨어진 인스부르크에 도착했다.

황금 타일 지붕이 있는 3층 발코니

인스부르크의 왕궁

 알프스 산자락 도시 인스부르크는 여름휴가의 절정을 이룬 듯 관광객들이 넘친다. 15세기경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서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 올드 타운은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중심으로 여전히 중세의 멋과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고 성 안나 기념탑과 개선문, 왕궁 교회, 황제 막스밀리언 1세의 결혼식 때 만든 황금의 작은 지붕이라는 고딕양식의 발코니, 시계탑, 성 야곱 교회, 티롤 박물관, 알프스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하펠레카 등 볼거리가 풍부했다. 가게마다 여름세일이 한참이고 소방울, 꽃무늬 앞치마, 깃털을 꽃은 티롤모자 등 알프스라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말하는 민예품들이 관광상품이 되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볼거리에 빠지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여기서 20km만 가면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고향인 휴양지 제필드가 있지만 오후 2시가 넘었고 하늘도 점점 구름을 모으고 있어서 우린 퓌센으로 출발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도심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탈 때까지는 늘 긴장한다. 이곳은 산악지대여서 오르락내리락이 심한 도로에서 길을 놓칠까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차가 흔들린다 싶더니 결국 비가 쏟아진다. 독일 퓌센으로 가는 A12번을 타야한다. A13번과 A12번 이정표가 계속 같이 나오는 산길은 비바람에 하이빔을 켰는데도 사인이 잘 안 보인다. 흩날린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차창에 달라붙어 시야를 가린다. A12번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감이 이상하다. 이정표에 나오는 도시이름이 아무래도 낯설다. 차를 세우고 지도를 보니 퓌센 방향이 아닌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Exit으로 빠져 나왔다. 계곡 밑 낭떠러지가 아득하다. Toll Gate에서 2유로를 냈다. 징수원은 JGR란 이정표를 따라가면 인스부르크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길은 더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U턴이나 P턴을 해서 북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탈 수 있을거라는 예상은 천만의 말씀이었다. 한없이 올라가는 산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 같았다. 몸이 꽁꽁 굳었다. 비바람이 더 심해지고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머리 위를 짓누르더니 주먹만한 우박이 쏟아진다. 차 천장에 떨어지는 우박소리가 따발총 터지는 소리처럼 따따따따 요란하다. 우린 산길에 차를 세웠다. 이쯤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애씀이 얼마나 가소로운지... 따지고 계산하는 몸짓이 얼마나 헛된지.... 백기든 병사처럼 차라리 마음이 편해진다. 기다리자. 그래도 안되면 차 속에서 자자. 혹시라도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도움을 청하자. 알프스가 이렇게 무지막지한 변덕을 부릴 줄 상상이나 했겠나?

 

 30분이 지났는데도 하늘은 여전히 우박을 퍼붓는다. 쌓인 우박이 허옇다.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쉽진 않았지만 곧 날이 좋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아침에 유스호스텔을 떠날 때 좋았던 예감을 생명줄 처럼 잡고 버틴다. 노르웨이 골든 루트에서도 오늘 같은 위기가 있었지만 잘 넘기지 않았던가? 여행 중 위기를 넘긴 경험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40분이 지났다. 우박이 멈췄다. 비는 여전한데 바람이 잦아든다. 하늘이 조금 환해졌다. 휴~ 살았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고 내려가며 JGR란 사인을 따라 외길을 달린다. 하늘이 점점 더 벗겨진다. 밝은 빛에 주위를 보니 이곳이 인스부르크 근교의 휴양지인가보다. 너무나 예쁜 집들과 포석깔린 골목길이 마을을 가꾸며 정성을 드린 흔적이 역력하다.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야...”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사네....”

“작은 마을이 그림 같아....”

“알프스 산자락과 어쩌면 이렇게 잘 어울릴까?....”

죽어라 핸들을 잡고 좁은 길을 달리는 긴장한 남편의 얼굴을 훔쳐보며 끝없이 수다를 떤다. 화창한 날씨에 이 마을은 보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지 상상이 갔다. 인스부르크 9km. 몇 개의 산마루를 넘어 평평한 평지로 나왔다. 거리는 돌풍에 꺾어진 나무가지들과 비에 젖은 낙엽들이 엉켜있다. 오후 4시다. 2시간을 헤맨 끝에 원점인 인수부르크로 다시 돌아왔다. 주유소에서 기름도 물도 사고 심기일전해서 독일 퓌센으로 출발했다. 하늘이 활짝 개였다.

 퓌센까지 알프스 산자락을 끼고 달린다. 언제 그랬더냐 싶게 날씨는 맑고 푸르게 개였고 비 갠 후의 청량함이 어찌나 산뜻한지 알프스의 속살까지 훤히 드려다 보인다. 알프스의 산악미는 감탄으로도 모자라고 몇 시간동안 인생을 경험한 것 같이 악천후 속에서 헤맨 오늘은 평범한 일상과 삶의 위기, 극복 후의 깨달음, 그리고 편안함, 겸손과 감사로 자유로워짐을 알려주듯 했다.

 

 3시간을 달려 7시쯤 퓌센에 도착했다. 오늘은 독일 국경을 두 번씩이나 넘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 들어가 물으니 방이 있단다. 전망좋은 방을 달랬더니 성과 마주보고있는 방을 준다. 왠 행운? 인스부르크에서 퓌센까지 오면서 본 알프스 경치도 경이로운데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마주보며 자게 될 줄이야.... 오늘처럼 극적인 날이 또 있을까? 감사한 마음이 강물이 된다.

오늘의 주행거리 : 339km  호텔 일박 : 

[목 차]  [전날 2003년 7월 20일]  [다음날 2003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