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슈반슈타인 성

2003년 7월 22일 화요일 맑음(여행 80일째날)

퓌센-뇌르들린겐, 주행거리 200㎞

 거의 잠을 못 잤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쾌하다. 밤새 잤다 깼다를 계속한 것은 순전히 노이슈반슈타인 성 때문이다. 해발 800m 알프스 산기슭, 산과 호수에 둘러싸인 경관좋은 슈반가우 숲 산 정상에 독일의 대표적인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다. 백조처럼 우아한 성의 아름다움 뒤엔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2세의 고독하고 기구한 운명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성이다. 어제 저녁 퓌센에 도착해서 호텔을 정하고 관광객이 빠져나간 조용한 호텔주변을 산책하면서 본 성은 마법의 성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의 손이 아니고선 어떻게 인간이 저런 성을 지을 수 있을까?

 

 늦은 시간 석양 무렵의 성은 녹색 숲을 배경으로 석양빛에 불그스레 물들어 가는 모습이 수려하고 우아했다. 몇 년 전 스웨덴을 여행하면서 본 스코네 지방의 고성들은 기름진 평원의 윤택함과 아름다운 정원이 어울려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달랐다. 저녁 10시가 지나자 성을 비추는 조명등이 켜지고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성은 경외롭고 신비했다. 환상적인 성의 모습에 내 잠재의식이 켰다, 꺼졌다, 자동반응을 보인다. 자정 무렵쯤 됐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눈빛 같은 흰색으로 홀로 빛나는 성은 숨막히게 고고했다. 자다 다시 깼다. 조명등도 꺼지고 성의 흰빛이 어둠 속에 묻혔다. 어둠이 전경이 되고 흰빛이 배경으로 물러난 성은 안개꽃같은 어울림의 미학으로 다소곳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땐 어둠이 걷히는 미명 속에서 흰빛 성의 시루엣이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시적 풍경으로 서서히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이 성을 모델로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 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정문

 아침 6시, 성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자작나무, 전나무, 이름을 알 수 없는 활엽수들이 울창한 수림 사이의 길을 따라 미니버스나 마차가 올라 다니는 길을 40여분 걸어서 올라갔다. 산아래 넓은 알프 호수는 깊은 계곡물을 담아 짙은 녹색으로 고요하고 계곡아래 전통가옥들이 아름답다. 산새들이 시끄럽게 아침을 열고있는 성은 외관 일부를 보수하고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장엄했다. 이 성을 건축가도 아닌 루드비히 2세가 직접 설계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미치광이로 몰려 41세에 비운의 생을 마친 왕의 심미적 감각이 살아있는 성. 슬픈 사연과 함께 후세사람들에게 많은 얘깃거리를 들려주는 성이다. ‘삶은 어딘가에 미쳐서 살다 죽을 때 제정신으로 죽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그래! 맞다’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 같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명작을 남길 수 있을까!!! 찌르르 감전의 전기가 통한다.

 

 성 입구에는 사계절 운치와 어울린 성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전시해놓았는데 사진마다 4-7 유로의 값이 붙어있다. 성이 구름 위로 솟아오른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밑에 7 유로라고 써있다.  한 장 한 장이 다 명화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있는 루드비히 2세가 어릴 때 살았던 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지은 호엔슈반가우 성을 보면서 성을 내려왔다.

아침 9시 30분쯤 호텔 옆 성 입장권을 파는 티켓박스에 사람들로 곽 찼다. 다섯 곳의 판매대 앞에 지그재그 줄이 끝이 없다. 호텔 할인티켓으로 26유로에 입장권을 샀는데 호엔슈반가우 성은 10시 20분,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2시 20분 입장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하루종일 북적대는 퓌센 고성이다.

 호엔슈반가우 성 내의 백조 분수

루드비히 2세가 몸을 던진 호수

 루드비히 2세가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환상의 세계를 꿈꾸었다는 남성적 네오 고딕 양식의 호엔슈반가우 성 내부는 로엔그린 벽화와 동양 미술품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그러나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를 쏙 빼 닮은 루드비히 2세의 사진이었다. 당당하고 남성적인 카리스마 넘치는 막시밀리안 2세와는 달리 연약한 감성적 이미지의 왕비. 엄마와 아들은 붕어빵이었다. 성장하면서부터는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 등 예술분야에 심취했고 일찍이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루드비히 2세. 그는 천성적으로 정치가가 될 수 없는 예술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왕과 바그너가 함께 쳤다는 피아노가 있는 방을 돌아 나오면서 루드비히 2세의 슬프고도 아픈 삶에 마음이 짠해진다.

 중세의 기사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루드비히 2세가 설계했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내부는 온통 벽화로 덮여있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모든 벽화들은 바그너의 주요 오페라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배경인 회화들인데 바그너에 매료되어 평생 그의 후원자가 된 왕이 직접 설계한 성은 마치 바그너를 위한, 아니, 바그너만을 위하여 지어진 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생전에 바그너는 이 성에는 단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17년간 성을 짓는데 혼신을 다한 왕은 성이 완성된 후 3개월만에 미치광이로 몰려 정적에게 납치 당해 요양소에 감금당했다가 3일만에 호수에서 변시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동물을 사랑하고 백조를 좋아했던 심약하고 감성적인 루드비히 2세의 기구한 짧은 인생. 그러나 내면의 강한 집념으로 완성된 성은 수려하고 유구했다. 성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노이슈반슈타인 성 뒤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퓌센을 출발점으로 로만틱 가도 여행이 시작됐다. 퓌센을 떠나 남부 독일의 아름다운 전원풍경과 중세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로만틱 가도의 작은 마을들을 돌아보면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간다. 오늘은 모차르트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았고 디젤의 출생지기도 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잘 예정이다. 오후 3시가 넘어 출발했다. 우리는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벅참과 집이 그리운 간절함과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로만틱 가도라는 말 보다 프랑크푸르트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 달린다. 그러나 자연의 풍만함에서 기를 받아 다시 의지를 세운다.

 

 한시간 반 이상을 달려 아우크스부르크로에 도착했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으나 워낙 큰 도시여서 호락호락치 않았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줄줄이 늘어선 2000년 역사의 고도는 시가 전체가 올드 타운 같이 고풍스럽다. 한시간 이상 시내를 빙빙 돌면서 시청사, 막시밀리안 거리, 대성당, 푸거라이, 붉은 문 등을 흩어봤다. 퇴근시간의 거리가 복잡하기도 했지만 만만찮은 도시의 도도함에 그만 기가 꺾여 아우크스부르크를 빠져 나왔다. 모차르트 아버지의 생가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숨을 죽인다. 이미 6시가 넘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로만틱 가도의 다음 도시로 가보기로 했다. 도로변 언덕에 웅장한 고성이 보인다. 고성 밑 마을엔 예쁘고 작은 호텔들이 있어서 찾아갔는데 세 곳 모두 Full이다. 고성에 가보란다. 고성은 오스트리아 세가우 고성으로 족했다. 다시 돌아 나와서 다음 도시로 갔으나 이곳엔 호텔이 없단다. 슬슬 신경이 곤두선다. 다음 도시 뇌르틀링겐으로 빠졌다. 짐머가 있는 레스토랑에 딱 하나 옥탑방이 남아있었다. 40유로다. 시간이 늦으면 이렇게 잠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옥탑방이라도 독일은 기본이 잘되어있고 다만 샤워실을 같이 쓰는 불편함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중성을 어쪄랴. 습관이 될 법도 한데 낯선 잠자리가 지겨워 밤만 되면 집에 가고싶어 안달이다. 밤만되면 엄마 찾는 아이처럼.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은 잃은 내가 말이다.

오늘의 주행거리 : 200km  zimmer : 4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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