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틱 가도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들

2003년 7월 23일 수요일 맑음(여행 81일째날)

뇌르틀링겐-딩켈스뷜-로텐부르크-프랑크푸르트, 주행거리 286㎞, 주유량 32.76ℓ, 금액 EUR36-

 뇌르틀링겐은 중세풍의 작은 도시답게 로맨틱하다. 이 도시는 아주 오랜 옛날에 운석과 충돌해서 생긴 원형의 리스분지 위에 자리잡은 도시로 14세기에 쌓은 성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가 잔 Zimmer는 바로 성문 옆이어서 어제 저녁 옥탑방 창문에서 성문 망루 위로 지는 일몰이 장구한 세월이 켜켜이 덮인 빨간 지붕들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을 보았다.

 뇌르틀링겐 구시가의 분수

 뇌르틀링겐 구시가 성벽 동쪽 성루

 아침에 슬슬 걸어서 성문 안으로 들어가니 시장도 있고, 광장도 있고, 대성당도 있고, 구시청사도 있었다. 도시의 지름이 1km밖에 안 돼 성내에 요것조것 다 모여있다. 역시 시장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곳, 부지런한 독일사람들이 아침 9시전인데도 많이 나왔다. 싱싱한 야채며, 과일이며, 갓 구운 빵이며, 노점의 책들이며 모든 게 풍성한 시장터에 작은 청동분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석에 붙는 쇠붙이 마냥 청동분수 쪽으로 끌려간다. 청동분수에 새겨진 그림을 본다. 모자를 쓴 두 농부가 마주보고 웃고있다. 옆구리에 돼지새끼를 끼고 손에는 과일바구니를 든 농부와 겨란 꾸러미와 오리를 들고 있는 농부. 그 아래 기단에 뺑 둘러 조각된 튼실한 야채들. 호박, 감자, 옥수수, 당근, 피망 토마토 등이 풍성하다. 그리고 맨 윗단에 자그마한 십자가가 소박하다. 그림 속에서 삶의 얘기가 들려온다.

 

 발칸, 중부, 동부유럽 여행에서 1000년에 걸친 중세시대가 남긴 광장과 석주와 분수를 수없이 봤다. 중세도시는 도시중심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중앙에 분수나 석주가 있다. 그리고 주위에 시청사와 성당건물이 높이 솟아있다. 거대한 분수나 석주에는 성경얘기나 성서에 나오는 성인들 얘기를 조각해 놓았다. 그러나 뇌르틀링겐 시장터의 작은 분수의 조각은 순박한 농민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마음에 와 닿는다.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 두 농부의 얼굴에서 풍년든 추수감사절의 기쁨과 감사가 절로 연상된다. 아내도 순산을 했고, 가축들도 늘고, 농사도 잘되어 모든 게 감사한 농부. 내년에도 올해처럼 집집이 무탈하고 날씨도 좋아 풍년이 들기를 바라면서 그 동안의 소식을 주고받는 환한 농부들의 얼굴에 삶의 환희가 배어있다. 아마도 농부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교회로 가는 길 아니었을까? 삶이 곧 종교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분수의 조각들. 광장에 있는 분수 중에서 이 분수처럼 삶을 리얼하게 표현한 동상은 처음이다. 담담하고 소박한 삶의 이야기에 가슴이 찡해진다. 소박해서 오히려 감동적인 동상. 일상의 소중함이 고개를 내민다.

 

 마르크트 광장으로 나왔다. 라트하우스 옆 ⓘ 센터 게시판에 3테너 음악회 포스터가 붙어있다. 테너가수 중 한 사람이 한국사람 이인학씨다. 독일에서 당당히 이름을 걸고 활동하고 있는 내 핏줄이 대견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성공하길 빈다. 작은 도신데도 다니엘 교회탑, 구시청사 등 흥미로운 곳이 많아서 돌아보는데 3시간을 소비했다. 우린 어린이축제로 유명한 딩켈스뷜로 떠났다.  딩켈스뷜은 여기서 45km 북쪽에 있다. 로만틱 가도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다. 아침에 맑던 날씨가 흐려지더니 가랑비가 내린다. 로만틱 가도의 전원풍경이 소박하다.

 딩켄스뷜 구시가

어린들의 공로를 기념하는 동상

 딩켈스뷜 센트름에 도착했다. 축제기간이어선지 거리엔 부모와 함께 가는 어린이들이 많다.  17세기 30년 전쟁 때 마을 어린이들이 스웨덴 군에게 탄원하여 도시의 파괴를 면하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7월 중순에 어린이 축제가 열리는 곳. 또한 딩켈스뷜은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도 도시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서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큰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의 첫인상이 차분하고 예쁘다. 마르크르트 광장에 있는 ⓘ 센터에서 지도를 얻어 골목길을 걸으며 아기자기한 딩켈스뷜의 옛스러움을 감상하는데 우박이 쏟아진다. 게오르규 성당 쪽문에 피해 서서 우박이 걷히기를 기다린다.

 

 우박도 비도 그치니 다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온다. 게오르규 성당 앞에 퍼레이드를 볼 수 있는 스탠드가 설치되어있고 깃발과 포스터가 붙어있다. 독일의 작은 도시들이 중세의 모습을 보존하고 도시의 역사를 미화시키고 상품화해서 도시를 알리는 축제로 활성화시키는 전술이 놀랍다. 자기만의 빛깔과 소리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로맨틱가도의 마을들. 예쁜 도시는 사나운 날씨까지도 반짝 이벤트로 바꾸어 놓는다.

 로텐부르크는 로만티크 가도 관광의 진수이다

 로텐부르크 구시가 성벽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 로텐부르크에 5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아침부터 세 도시를 보고, 느끼고, 돌아다니는 것이 무리였나 힘들고 지쳐서 중세를 복원한 도시 중 으뜸이라는 매력적인 도시의 볼거리들에 좀처럼 감흥이 일지 않는다. 큰 도시인 이 곳은 마르크트 광장도, 시대가 다른 세 가지 건축양식이 조화된 구시청사도, 야콥교회도, 타우버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경관도, 17 세기초에 세워졌다는 요새 슈피탈 성문도, 도시를 둘러싼  성곽도,  상점들의 진열품들도 모두가 시큰둥하다. 그러나 남편은 ⓘ 센터에서 지도 구하고, 볼거리 체크하고, 안내서 읽고, 찾아가서 설명해주고, 비디오 찍고, 운전하고, 거의  목숨건(?) 중노동 수준인 일에 한결같다. 모든 낯섬을 익숙함으로 소화해야하는 에너지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타고난 떠돌이 기질을 누가 말린담. 초인적 열정에 기를 받아 다시 성을 따라 걷는다.

 

야콥 교회에서 한국 단체관광객을 만났다. 아주 대중적인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만난 동포가 반갑다. 여행을 하다보면 일본인과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을 만나는데 멀리서 봐도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사람들보다 크고 활달하다. 일본사람들은 주로 남녀 모두 모자를 쓰고 있고 안내인의 설명을 들을 때도 둥그렇게 모여있고 소곤소곤 말하고 살포시 웃는다. 사진을 찍을 때도 배시시 웃으며 같이 찍고 이동할 때도 안내인을 따라 조용히 움직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여있다기보다 흩어져 자유롭다. 같이 온 사람들이란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리고 먼저 버스로 가거나 일행을 찾거나 기념품가게에서 나오거나 하여튼 흩어진 느낌이다. 표정도 딱딱하거나 무표정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거나 부르는 소리가 멀리 크게 들린다. 안내인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섞여있다. 그래서 멀리서 봐도 한국인, 일본인을 금새 알 수 있다. 민족성의 차인가 보다. 일본영화 철도원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곧 일본인의 정서인가보다. 하여튼 반가운 우리말과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로만틱 가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략적으로 개발한 것이라지만 원래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가는 통상로 였다고 한다. 이 가도를 따라서 고딕풍의 성당과 통나무집 등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중세풍의 모습이 남아 있는 소도시들이 잇닿아 있어서 여행자에게 유럽풍의 정취와 서정적인 독일의 인상을 심어준다. 메르헨 가도의 마을들도, 로만틱 가도의 마을들도 모두 우리의 정지용의 시 향수처럼 그립고 아련한 고향을 느끼게 한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 길을 걸으며 이젠 여기서 여행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 몇 곳을 둘러봤지만 모두 만원이다. 프랑크푸르트가 지척인데 다시 또 호텔을 찾아 다른 도시를 헤매고 싶지 않았다. 우린 순식간에 결정을 한다. 집으로 가자. 프랑크푸르트로 가자 2시간이면 되는 거리다. 로텐부르크에서 자고 내일 로만틱 가도 마을의 절정인 뷔루츠부르그로 갈 예정을 바꿨다. 킴호텔에 전화를 했다. 늦게 도착할테니 밥 좀 달라고. 밥과 국이 눈물겹게 그립다.

오늘의 주행거리 : 28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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